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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의미, 매사에 긍정적이어야 하는 이유

작성자공감교육연구소|작성시간22.04.04|조회수277 목록 댓글 0

  긍정의 의미, 매사에 긍정적이어야 하는 이유

  사실 우리 내부는 외부의 모든 상황에 반응하면서 언제나 치밀하게 움직인다.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내부의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무의식, 잠자는 의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긍정적인 생각, 마음이다. 이 생각은 인간의 내부 바탕, 정신을 의미한다. 누구라도 자신의 정신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일을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때 나의 내부 바탕의 상태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그 바탕이 얼마나 긍정적이냐에 따라서 상황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할려고 할 때 나의 무의식이 긍정적이라면 그 일이 저절로 익혀져서 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내부의 활동이 정신인데 정신이 움직이므로 어려운 일도 쉽게 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가끔 겪는 일인데 책을 읽는데 책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 책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아! 지금 내가 공부가 하기 싫구나'를 감지한다. 그러면 그 이유를 분석해서 마음을 바꾸어주어야 학습이 된다. 학습이 안 되면 책 내용도 파악을 하지 못하지만, 책 내용을 읽고 필자의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의  내부가 원활하게 움직이는데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가 질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한다.

 

  인간의 자아는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언제나 상 속에 있다. 상은 본질이 아니라 무엇을 통해서 본질이 비춰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에서 사고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상을 보고 한다고 봐야 한다. 여담으로 사고를 통해서 본질을 보고자 노력한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경우 -그토록 원했지만- 인간이 사고를 통해서 본질을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사실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볼수가 있다. 

 

  요컨대 자아가 상 속에 있다라는 말은 본질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를 다른 방향으로 보면 현실을 자아도 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본질이란 정신과학적 요소를 의미한다. 광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인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광물의 본질은 광물을 조직한 힘이다. 식물은 에테르체를 가진 존재이고 동물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가졌다. 마지막 인간은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를 가진 존재이다. 정신은 이러한 힘들에 의해서 움직인다. 본질 자아는 이와 같이 파악할 것이다. 즉 각 정신과학요소에 따라서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존재도 그렇다는 의미이다.

 

  상으로 받아들이는 내가 그 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한 의미에 따라서 내가 사고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이 상을 통해서 사고하지만, 본질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삶을 살아가지만 나의 본질, 정신과학적 요소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나의 정신과학적요소가 움직이는가가 질문이다.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속성을 파악해서 활용한다면 가능하나,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아서 인간이 파악하지 못하므로 이 또한 어렵다. 

 

  그래서 상 속의 자아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할때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할 경우, 이 경우 상속의 자아도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진짜로 내게 필요해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여기가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만약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할 경우, 영혼이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알아도 재미없다는 생각을 바꾸기는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아스트랄체가 재미없다는 감정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아스트랄체가 보이지 않으므로 재미있다는 감정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바꾸는 노력이 수행이다. 재미없지만 그 일을 의식적으로 반복하거나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면 의지가 길러져서 정신을 활용할 수는 있다. 

 

  긍정적인 생각이 정신을 움직이는 이유이다. 인간은 영혼이 하는 일을 육체를 통해서 감지한다. 우리가 하는 사고, 의지, 감정은 영혼이 육체를 통해서 드러내는 활동이다. 인간의 자아는 현실 삶에서는 상 속에서 존재하므로 우리가 하는 사고는 상 속 자아이다. 본질 자아에 연결되지 못한다. 의지는 잠자는 의식에 내재한다. 잠자는 의식은 무의식으로 깨어있는 현실 삶 속의 인간은 의지를 감지하지 못한다. 본질 자아에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 감정은 나의 본질 자아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흐릿한 상태로 꿈꾸듯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드시 체험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감정을 체험해야 본질자아에게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정리하면 감정을 체험하면 본질자아와 연결된다. 연결되어야 본질자아의 힘을 빌리므로 아주 중요하다. 

 

  본질 자아는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통하여 우주에 연결되어 있다. 현 인류의 -시대- 조류로 인하여 믿기 어렵겠지만, 슈타이너의 주장으로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파악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정신작용이란 우주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작용이 이루어질려면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작동해야 한다. 즉 우주 정보는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파악되는 것이다. 현실 삶에서 본질 자아에 연결되면 우주 에너지(정보이기도 하다)를 쓸 수가 있고, 이는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고 인간 영혼의 바탕이다. 인간 영혼은 호흡을 하듯이 공감과 반감활동을 한다. 공감은 대상과 하나가 되려는 움직임이다. 인간이 대상과 하나가 되면, -온전하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 본질자아가 의지를 발현시킨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좋아하고 나아가 열광적이 되면 그 일과 하나가 되고, 그러면 그 일을 하는 의지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때 아스트랄체가 그런 감정이 되어야 하므로 생각, 사고로 그 일을 좋아하는 감정이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감활동은 대상으로 보고 자신을 주장하는 힘이다. 따라서 반감은 사고로 나아간다. 반감은 본질자아와 연결되기 어렵다. 공감으로 대상과 하나가 되면 드러나지 않아서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고(반감)가 강조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는 하다. 

 

  영혼의 활동이 공감으로 갈려면 아스트랄체가 긍정의 감정에서 나아가 대상과 하나가 되는 감정, 사랑을 가져야 한다. 이 감정은 무의식의 바탕을 말한다. 현실 삶에서 우리가 하는 사고는 상 속이므로 본질자아와 거의 무관하다. 체험된 감정만이 본질자아에게 연결되는데 이는 일종의 습관으로 되어 있다.  

  

  정리하면 나의 무의식의 감정이 긍정에서 나아가 사랑이라면 영혼이 공감 활동을 한다. 이 감정은 아스트랄체의 감정이므로 내가 파악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하는데 늘 하기 싫다면, 이 감정이 긍정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에서 긍정의 감정을 가지도록 관심을가지고 노력하는 일뿐이므로, 지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나의 정신의 바탕이 긍정적이 될 것이다.  

 

  정신은 어느 하나의 요소가 작동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요소가 같이 작동한다. 가장 근간이고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늘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지 자신을 꾸준히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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