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그 어떤 것도 어떤 행위가 선하다고 말해줄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좋고 싫음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내면으로부터 판단을 이
작성자공감교육연구소작성시간26.06.07조회수24 목록 댓글 0"바깥의 그 어떤 것도 어떤 행위가 선하다고 말해줄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좋고 싫음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내면으로부터 판단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 이떄 인간 혼에 영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인간, 혼, 영에 관한 지혜, 2023, 111)."
사실 영이 있느냐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기는 하다. 인류는 과학혁명 이후로 영을 완전히 배제해서 이제는 어디서도 영을 찾지 못한다. 그 흔적도 없는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가만히 살펴보면, 설명은 하지 못하지만 뭔가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따라서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영이 있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할 것인지, 없다고 생각해서 무시할 것인지가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질문이다.
만약 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영의 역활은 무시된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영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택하기 전에 먼저 영의 역할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각각 그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 영혼 그리고 영(정신)으로 나뉘어진다. 육체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광물과 공유하므로 광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생명의 힘을 주는 에테르체가 떠나면, 육체는 광물과 동일하게 분해되어서 사라진다.
영혼은 그 활동에 따라서 감각혼, 오성혼, 의식혼으로 나뉜다. 감각혼은 에테르체와 함께 우리 몸의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받는다. 받아서 오성혼에게 전달하면 오성혼은 그 정보를 가지고 생각해서 판단, 판단한 그 정보를 다시 의식혼에 전달한다. 의식혼은 받은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존재이다. 즉 내가 하는 판단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의식혼은 반드시 진리 관점에서 핀단한다. 그래서 일종의 신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의식혼의 그 수준에 따라서 진리를 판단할 것이기는 하다. 의식혼이 판단한 정보는 자아에게 전달되어서 자아가 진리를 소유하는 존재로 진화한다.
영은 의식혼의 활동에 개입해서 진위를 판단하도록 해 주는 존재다. 통상 영이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이 인간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개입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영은 아스트랄체가 의지를 낼 때도 개입해서 자아가 의지를 내도록 한다. 예컨대 아스트랄체가 의지를 냈는데, 자아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자아는 의지를 내지 못한다. 자아가 의지를 내야 어떤 일이라도 하므로, 영의 개입은 아주 중요하다.
여기에서 여담으로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해서 100일 기도를 할 때, 겉으로 보면 기도를 해도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기에 영이 개입한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정신세계는 물질세계와 다른 공간에 있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으므로 정신이 간절히 바라면 물질세계의 간극을 뛰어넘어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연결되면 의지를 내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영의 도움을 받을려면 정신세계에 연결되어야 한다. 정신세계에 연결될려면 정신세계를 움직이는 속성, 겸손과 공경,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가 영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녀야 하는 요소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의 도움만 바라서도 안 된다. 내가 노력해야 어떤 일이라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말에 修人事待天命(진인사 대천명),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꽃을 본다면 보는 대상, 꽃이 인간의 육체이다. 또 우리는 꽃을 보고 어떤 생각, 느낌, 행동도 한다. 이렇게 하는 존재가 영혼이다. 그리고 꽃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진리가 영이다. 꽃은 씨앗을 남겨서 다음 해에 싹이 트고 자라 다시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는다를 영의 세계로 보면 이와 같은 자람은 식물의 죽음이 아니고 다만 그 모양이 변형되는 것이다. 반면 물질세계에서 보면 이는 죽음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도 정신세계에서 보면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존재, 변형이다. 영은 오롯이 존재하고 다만 그 모습이 변형되어서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드는 존재는, 어떤 존재가 이렇게 만드는 건가가 궁금해진다. 인간의 본성에 육체와 영혼과 영이 존재한다면, 누군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인간이 발달하고 그렇게 변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하는 존재가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이다. 즉 정신과학적 요소가 발달해서 인간의 영(정신)이 발달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스트랄체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기쁨, 슬픔, 등등)로 인간을 구름처럼 감싸고 있다가, 서서히 인간의 몸안으로 들어온다. 14세 무렵 사춘기 증상, 남자는 목소리의 변형, 여자는 생리 등을 보이면 아스트랄체가 몸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는 신호이다. 아스트랄체는 영혼의 바탕체로, 영혼이 발달하면 아스트랄체가 발달했다는 의미이다. 즉 의식혼이 활동하면 (인간의 영이 개입해서) 그 결과 아스트랄체가 발달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스트랄체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데, 내가 시선을 주거나, 마음이 가는 곳으로 뻗어나가는데, 저항을 받지 않으면 계속 나아간다고 한다. 슈타이너는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개념 감각, 개념을 파악하는 감각(열 번째 감각)에서 나아가 열한 번쨰 감각, 열두 번째 감각, 열세 번째 감각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감각이 아스트랄체가 발달한 감각이다. 열한 번째 감각(연꽃 2장)은 이마부근의 연꽃 감각으로 상상력 감각이다. 이 감각이 발달하면 고차 -상상력이 생긴다. 열두 번째 감각(연꽃 16장)은 후두부근의 감각으로 고차- 영감력 감각이다. 열세 번째 감각은 심장 부근의 감각(연꽃 12장)으로 고차- 직관력 감각이다.
신비수련을 하지 않는 일반인은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내부를 향해 뻗어 있는데, 신비수련을 하면 이 촉수가 바깥을 향해 뻗는다고 한다. 바깥으로 향해 있으니 그런 정보(상상, 영감, 직관)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는 이미 영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고차 능력을 얻고 싶다면 영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영의 세계가 있는 것은, 영의 정보를 통해서 지상을 꽃피우기 위함이고, 이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도 하였다. 현재 물질문명의 대부분이 영의 세계에서 가져온 정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아스트랄체를 어떻게 발달시킬 것인가이다. 아스트랄체가 영혼의 바탕체이므로 영혼활동을 정신세계의 속성에 맞게 통제해야 한다. 즉 영혼활동인 사고와 감정 그리고 행동 통제이다. 마음대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내가 하고자 하는 사고, 자신의 영혼을 가만히 바라봐서 사고가 마음대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에 빠지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는 수준에는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행동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 등등을 지나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마음과 세상을 볼 때 어떤 선입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가 추가된다. 이렇게 영혼활동을 통제하면 조금씩 도덕적인 삶을 살게 된다. 통제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면, 아스트랄체의 연꽃이 움직이고, 밝게 활성화가 된다. 그러면 열한 번째 감각, 열두 번째 감각, 열세 번째 감각이 열려서 그 정보를 얻는 것이다.
다시 인간의 본성으로 가서 위 문장의 까닭을 살펴보면, 인간의 판단은 인간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감각혼의 정보를 오성혼이 받는데, 이때 오성혼으로 오는 어떤 기류(정보)도 없다고 한다. 오직 오성혼만이 그 정보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때 판단할 때 인간 내부에서 스스로 올바르게 판단할 수있는 자체적인 시스템, 내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종교계율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면,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므로 여기에서 도덕적으로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인문학 등등이 있어온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늘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요컨대 자신이 내리는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감각혼의 정보는 자신의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이므로, 오류의 위험성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의 오성혼이 판단을 내릴 때 오류에 휘말리지 않아야 하고 그럴려면, 인간 혼에 영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 위문장의 결론이다. 물론 의식혼에서 영은 작동한다. 그렇게 하도록 나의 정신과학적 요소를 발달시켜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이 도덕적인 삶, 종교에서 요구하는 계율을 지키는 일이다.
다음은 여담으로 필자가 느낀 정신세계이다. 슈타이너가 주장하기를 정신세계는 빛과 소리와 움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한다. 단 한 순간도 정지하는 순간이 없다고 하는데, 필자가 가만히 호흡에 집중하면, 그 세계에 들어가는 듯하다. 그 세계는 끊임없이 반짝이고, 활동적이며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차 있다. 베토벤이 산책을 즐겨했다고 하는데, 짐작하기에 이 세계에 들어가서 그 세계를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말러도그렇다. 특히 말러 음악을 들으면 뇌가 발달하는 듯, 뇌의 시넵스가 서로 연결되어 마치 스위치가 커지듯이 그 부분이 반짝인다. 이와 같이 인류의 보물을 창조한 사람은 모두 정신세계에 들어가서 그 정보를 가져온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