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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은 존재의 근저에 정신적인 음을 가지며, 인간은 자신의 가장 깊은 본성에 있어 스스로 이러한 정신적인 음입니다(천체의 음악

작성자공감교육연구소|작성시간26.06.13|조회수24 목록 댓글 0

  "모든 사물은 존재의 근저에 정신적인 음을 가지며, 인간은 자신의 가장 깊은 본성에 있어 스스로 이러한 정신적인 음입니다(천체의 음악 인간의 신비, 2021, 66)."

 

  위 문장처럼 슈타이너의 글은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가 정신은 체험해야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번 읽어도 마찬가지인데, 하지만 읽다 보면 이해하게 되고 차츰 그 정신의 수준에 까지 올라간다. 슈타이너도 이를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다. 다만 그만 두지 말고 꾸준히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도 이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고 하였다. 정신은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가능한데, 다만 보이지 않아서 꾸준히 탐구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정신을 반드시 탐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번 생에 알지 못하고 넘어가면, 다음 생에 다시 그 부분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슈타이너가 주장하였다.   

 

  현실세계는 모두 정신세계에 대한 물질적 대응이므로, 정신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현실세계를 탐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실세계의 모든 부분이 탐구의 대상이다. 다음은 필자가 현실세계에서 만난 정신세계이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합창교실에서 만난 여자인데, 이 여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한다. 예컨대 합창교실에서 간식으로 떡을 나누어 줬는데,  이 여자가 결석해서 받지 못한 모양, 자신은 떡을 받지 못했으므로,  '누가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자신에게 떡을 주지'하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얼추 다섯 번은 한 듯하다.

 

  그래서 가만히 관찰해 보니, 말이 마치 바퀴가 굴러가듯 저절로 여자의 입에서 나왔다. 여자 자신도 멈추기 어려운 듯도 보였다. 이 경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니 듣는 사람은 짜증이 날 것이므로, 주위 사람들로 부터도 환영받기 어렵다. 여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왜 싫어하는지 이유를 모를 것이고, 여자는 점점 더 외로워 질 것이다. 

 

  이 경우 누가 옆에서 말을 해줘도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자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여자 스스로가 자신이 말을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자각이다. 그 다음 말을 멈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첫 번째가 자각이고 두 번째가 알아차림이다. 즉 자신이 말을 반복할 때 '아! 말을 반복하는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다음 비로소 멈출 수가 있다. 통상 자신을 알아 차리는데 100일이 걸리고,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그 기간이 1000일 이라고 불교 수행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살펴보고자 한다. 누구든 살면서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아가 자신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다. 이때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말을 하다 보면 정신이 길을 잃는다. 여기에서 사로잡히는 것이 자신의 정신(자아)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음은 그 이유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자아가 상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어디에 사로잡힐 경우 자아는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아 스스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상속의 자아가 사로잡혀 있으므로 그 생각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분을 못 참으면 그 분에 사로잡혀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과도 같다.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다. 누구든 사로잡힐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그 생각에서 놓여나야 한다. 놓여나지 못하고 계속 사로잡혀있으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어서 그런 상황이 되면 그 순간 자아는 저절로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살면서 힘들고 속상한 일을 겪더라도 그 순간에서 자아가 놓여나도록 스스로 살펴야 한다. 아니면 그 순간에는 사로잡히더라도 빨리 그 생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그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도 할 수가 있다. 정신병이 여기에서 발생하고, 또 정신을 개발시키는 지점도 여기이다. 요컨대 그런 순간에서 놓여나면 자아가 올바른 판단을 하기 때문에 개발이 된다. 그래서 옛 선사들이 '늘 깨어 있어라'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언제나 종교 계율을 마지노선으로 삼아서 지켜야,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신을 개발시킬 수가 있다. 

 

  다음은 위 문장의 이해이다. 필자는 위 문장을 읽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과연 '모든 존재에 정신적인 음이 있을까'. 또 '정신적인 음이 있다면, 나의 정신적 음도 있는가'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1도는 물질체이고, 2도는 에테르체, 3도는 아스트랄체, 느낌혼, 4도는 이성혼(오성혼), 5도는 의식혼이라고 한다'(위 책, 40). 음정의 성격이 위와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 부분에서 그 진동을 한다는 뜻인지 알지 못했다. 물론 받아들이고 '과연 그런가'라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음정은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창문인데,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각 음정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1도를 통해서 들어가면, 무시무시한 흡입력으로 영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려고 한다. 이는 1도를 통해 영적 세계로 올라갈 때 가질 수 있는 도덕적 느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완전한(?)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2도를 통해서는 저쪽 정신적- 영적 세계에서 우리의 허약함에 연민을 느끼는 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기한 것은 우리가 2도를 통해 물질세계에서 영적인 세계로 올라갈 때는 우리를 맞이하는 일정 수의 음들이 마치 합해진 것처럼 우리에게 울려퍼지는 일입니다. 반면 3도를 통해 들어가면, 마치 친근한 음들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특별히 3도를 뚫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거기서 예술적 창조를 불러일으키는 선율과 음의 구성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4도를 통해 영적 세계로 들어갔을 때는 인간이 음을 기억하며 계속 살아가는 동안 음에 대한 이 기억이 계속해서 다르게 채색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밝은 밝기와 유쾌함으로 바뀌다가 곧 다시 극도의 슬픔으로 의기소침해지고 금방 햇살처럼 화창해지다가 죽음같은 고요로 까지 가라앉습니다. 5도는 영혼의 체험이 풍부해지도록 자극합니다. 그것은 마치 요술 지팡이처럼 깊이를 알 수없는 심층 저편으로 부터 음의 셰계가 가진 비밀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세상의 현상을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적으로 느낄 때 할 수있습니다(위 책, 113-115 요약)."  이것은 영적 세계로 들어갈 때 느낄 것이므로, 일단 먼저 영적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6도, 7도 들어가는 느낌은 책에 나와 있지 않다. 다만 5도는 고차 상상력의 세계, 6도는 고차 영감의 세계, 7도는 고차 직관의 세계라고 말한다. 그 음정을 통해서, 그 음정의 정신적인 세계가 이해되면 그와 같은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인간은 우주 음악으로 만들어졌고, 우주 음악에 맞춰 배열되었으므로, 우주 음악에 맞춰 인간의 장기, 신경체계, 에테르체, 아스트랄체가 춤을 춘다고도 하였다.   

 

  인간이 현실세계에서 상상력의 세계, 영감의 세계, 직관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어렵다. 다은은 그 이유이다. 현실에서 자아는 에테르체의 기류를 탄다. 자아가 이 에테르체의 기류를 타면, 에테르체가 상을 거울처럼 비추어 자아가 상속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아가 고차 세계에 들어갈려면 먼저 이 기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컨대 자아가 에테르체의 기류에서 벗어나야 영적 세계에 들어간다. 그리고 상상, 영감, 직관의 세계로도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현실에서 사는 한 생명의 힘인 에테르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명상을 통해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렵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들어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들어갈 수가 있다. 

 

  여기에서 슈타이너의 주장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현실에서 무엇을 보는 것은, 자아의 뒤에 거울이 있어서 비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만약 자아의 뒤에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자아 뒤에 비추는 거울을 자아 앞에 두면, 자신의 정신적 음을 들을 수가 있다고 한다. 짐작하기에 인간이 천체음악으로 만들어져서 그런 듯하다. 요컨대 자아가 거울 속의 사물, 에테르체가 비추는 상 말고 자아 존재 그 자체를 보면 자신의 정신적 음을 듣는다. 이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중에서 아주 몸서리쳐지는 음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 그 음이 아름답게 변하면 비로소 몸도 마음도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한번 해봤다. 낮은 도에서 높은 도까지의 음을 가만히 들어봤더니, 그 중에서 파음에서 아주 몸서리가 쳐졌다. 참 신기했지만 분명 그랬다. 슈타이너의 주장이 터무니 없고 마치 공상같기도 하지만 실제 경험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모든 순간의 경험이 일관된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 후에도 가끔 이렇게 해 보았지만, '파'음은 아름답게 변하지 않았다. 세월은 흘렀고 짐작하기에 10년은 된 듯한데, 어느 순간 파음이 조금 아름답게 변했다. 그래서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필자의 몸과 마음이 도덕적으로 체계가 잡힌 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도덕적으로 체계가 잡혔다는 말은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도 몸과 마음이 도덕적으로 된다는 말이다. 

 

  즉 도덕적인 범주안에서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저절로 그렇게 된 듯도 하다. 예컨대 매일 매일 현실에서 도덕적언 판단이나 행동을 하게 될 경우,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정신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면 먼저 도덕적으로 몸과 마음이 단련되어서 어떤 순간, 상황에서도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만약 정신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이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할 경우 반드시 그 과보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 법칙이다. 이것을, 필자가 슈타이너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자신을 도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정신의 문이 조금이라도 열린다. 도덕적인 사람인 만큼 꼭 그만큼 그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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