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을 통해 우리는 미약한 잔영이 그 진정한 모습으로 신적 근원세계의 일부분이 되어 신적 근원세계에 합쳐져 있음을 지각하게 됩니다(철
작성자공감교육연구소작성시간26.06.21조회수21 목록 댓글 0"직관을 통해 우리는 미약한 잔영이 그 진정한 모습으로 신적 근원세계의 일부분이 되어 신적 근원세계에 합쳐져 있음을 지각하게 됩니다(철학 우주론 종교, 2018, 26)."
얼마 전에 주민센터 모임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위 문장의 의미를 파악했다. 위 문장의 의미는 첫째, 직관은 신적 근원세계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관을 해야 한다. 둘째, 신적 근원세계란 신의 세계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기원이 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직관을 해서 우리는 이러한 신적 근원세계에 연결되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직관을 하느냐'이다. 그 방법과 이유가 질문이다.
주민센터 모임에서 만난 여자인데, 아버지가 당뇨로 돌아가셨는데, 자신도 유전으로 그 병을 어릴 때부터 앓았고, 지금은 눈이 거의 실명상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득 그 여자가 자신을 몹시 '학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말하면 이것이 직관이다. 다음은 그렇게 생각한 이유이다. 여자는 많은 모임에 참석했고 모임을 주도했다고 하면서 말을 이론적으로 하나 하나 조리있게 할려고 노력하는데, 문제는 그 말이 어떤 진정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 모임을 자신의 뜻대로, 또는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 말을 이론적으로 만들었다.
모임 등에서 말을 할 때 진정성이 있어야 그 말이 설사 채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해를 입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도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조리있게 말까지 한다는 것은 더 큰 영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말(사고)과 행동, 감정이 모두 영혼이 하는 활동으로, 이와 같은 영혼이 활동하는 힘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도 얻지만, 대부분 우주 에너지, 우주 에테르에 연결된 자신의 생명을 영위하는 생명 에테르에서 얻는다. 따라서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을 속여서는 이런 우주 에테르를 얻기가 어렵다. 당연히 음식으로 얻는 에너지로는 부족할 것이므로, 점점 더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다.
두 번째, 나아가 모임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려고 하는 것은 그 모임의 다른 사람들을 간섭하는 일이다.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정신세계 관점에서 에너지를 얻으므로 채택이 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해를 덜 입는다. '덜' 이라고 한 이유는 누구라도 정신세계의 속성을 완전하게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키지 못한 만큼 꼭 그만큼 자신이 해를 입는다. 반면 다른 사람들을 간섭하면, 정신세계의 관점으로 보면 나를 간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폐해를 그대로 내가 입는다.
구체적으로 간섭 시 상대방이 따르지 않으면 짜증이 동반되고, 짜증을 내면 정신세계의 속성은 묘하게도 내가 그 사람을 그대로 닮는다.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에 관하여 법륜스님이 든 예이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주정을 하면 아들이 힘이 들어서 커서는 안할 것같지만 그대로 따라한다고 한다. 이를 필자도 겪었는데, 필자의 아버지도 술을 드시면 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다. 당시 짜증이 났는데, 필자의 자아가 짜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파악한 모양, 순간적으로 필자의 자아를 곧추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런 아버지를 커서 따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인간의 영혼은 곰감활동과 반감활동을 번갈아 하는데, 공감은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활동이고, 반감은 대상에서 벗어나 사고를 하는 활동이다. 여기에서 공감활동이 영향을 강하게 주면, 타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반감기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강한 영향이 짜증이다. 짜증을 내면 나의 영혼이 강하게 반응하고 이를 자아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종의 카르마, 업이다. 반면 반감활동은 대상에서 빠져나와 대상을 바라보므로 그런 아버지를 사고해서 닮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닮지 않게 된다. 여기에서 영혼은 자신의 활동에 '매몰'되어서 공감활동 자극이 강한지, 반감활동 자극이 강한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서 자아가 '등장'해야 한다. 자아가 이런 영혼활동을 제어하고 통제하고 감독하기 때문이다. 여기가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인데, 자아가 현실에서 상속에 들어있어서 이런 영혼활동을 감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상 '정신차려라'하는 말이 꼭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만약 필자처럼 자아를 곧추 세우면 닯지 않는다. 필자도 당시 자아를 곧추 세웠는지를 이후 슈타이너 공부를 하고 나서야 파악했다. 자아를 곧추 세웠다는 것은 자아를 살펴서 상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기억을 할 때 자아가 등장하는 것과도 같다. 어떤 일을 기억할려면 자아가 등장해서 그 기억을 소환하는 것처럼, 자아를 소환시켜서 영혼활동을 감독하게 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자살이나 살인, 타인을 살해하는 것은 모두 같은 죄이다. 이 경우 자신을 죽이는 일과 타인을 죽이는 일이 같다고 생각하면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자살은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정신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같은 존재이므로 타인이나 내가 같은 존재여서 내가 나에게 한 일이나 타인에게 한 일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민센터 모임에서 만난 여자가 한 일, 타인을 간섭하는 일, 또 진정성이 결여된 행동들이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몸이 아픈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아도 알 수가 있다. 대부분 자신을 학대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타인이나 자신을 해롭게 하는 일이 곧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병에 걸렸다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내려놓으라고 하는 말의 의미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직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역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해야 한다. 정신과학적인 요소인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 바탕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그 체계가 잡혀야만 가능하다란 사실이다. 요컨대 도덕적인 체계가 잡히지 않으면 어떤 직관도 얻기 어렵다. 모임에서 만난 여자도 만약 도덕적으로 체계가 잡혔다면, 그런 결과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당뇨가 아버지로 부터 유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아버지도 그와 같은 정신체계를 가졌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의도대로 다른 사람을 간섭하는 것, 그것이 진정성이 없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필자가 이를 장담하느나고 묻는다면, 정신의 속성은 법칙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장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의 핵심은 에테르체를 깨우는데 있고, 이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스트랄체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영혼의 바탕체이므로, 영혼이 활동을 한다는 것은 아스트랄체가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발달한다는 것도 아스트랄체가 발달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아스트랄체를 어떻게 발달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므로 내가 지금 가진 감정, 어떤 감정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슬픈지, 기쁜지, 아니면 힘들어 하는지를 살펴보고, 이 감정을 바꾸어 보는 것이다. 기쁜 감정을 슬픈 감정으로, 또는 실제로 기쁠 때 그 감정을 바라보면서 그 감정이 없어질 때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면 감정을 자유롭게 할 수도, 또는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감정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에 무감각한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해서 영혼이 아름다워지면 길가에 핀 꽃도 아름답고, 지저귀는 새소리도 가슴으로 닥아온다. 그래서 자연을 더 아름답게 느낀다. 영감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영감의 정신세계는 자연을 아름답게 느끼는 자연의 화음을 느끼는 세계이다.
아스트랄체는 에테르체를 만나는데, 이를 인간의 의식이라고 한다. 즉 인간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스트랄체와 에테르체가 만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인간의 에테르체는 식물을 보아서 이해하는데 잠을 자고 있다. 즉 에테르체의 의식이 잠 의식이다. 이 잠의식을 아스트랄체가 깨워야 하는 것이다.
에테르체가 삼라만상의 생명을 영위하는 힘인데, 그 속성이 우주 에테르와 같기 떄문에 삼라만상의 생명을 영위할 수가 있다. 즉 에테르체는 정신세계의 속성에 맞게 움직이는데, 내가 만약 에테르체를 깨울려면, 그와 같은 속성에 맞아야 가능하다. 따라서 아스트랄체가 정신세계의 속성에 맞아야 에테르체를 깨울 수가 있다. 그래서 정신세계의 속성이 길가에 난 풀 한포기에도 사랑의 감정을, 경외, 존경과 같은 감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감정도 이와 같은 존경과 사랑, 경외의 감정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할 일은, 나를 도덕적으로 무장시킬 것, 그리고 나의 감정을 에테르체의 속성에 맞출 것이다. 살다보면 여러 감정이 불쑥 불쑥 나오겠지만, 그때마다 알아차려서 이런 감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또 영혼활동인, 행동, 생각, 감정이 모두 도덕적인 체계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런 활동들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알아차리고, 반복하고, 다시 반복하는 일을 수도 없이 해야 한다.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영혼 활동이라도 빈드시 기록되어서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슈타이너 주장). 그러므로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신세계의 진화과정인 고차 상상, 고차 영감, 고차 직관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노력할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