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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강단 메세지

로마서강해17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구원의 은혜 (롬9:1~33)

작성자선한목자|작성시간26.06.22|조회수19 목록 댓글 0

로마서강해 17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구원의 은혜

(롬9:1~33)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뜨겁고 위대한 선언 중 하나가 바로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기억하시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아주 당차게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선언을 듣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곧바로 이런 질문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백성, 그 이스라엘은 도대체 왜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걸까? 하나님의 그 신실한 약속이 실패한 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중간에 무너져 버린 건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9장은 바로 이 무겁고도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혈통이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아주 깊이 있게 설명해 줍니다.

 

1. 동족을 향한 바울의 눈물 (롬 9:1~5)

 

바울은 이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딱딱한 신학적인 논쟁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아주 가슴아픈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2절을 보면, 바울은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라며, 이건 그리스도 안에서 거짓말이 아닌 참말이라고 절규하듯 고백합니다.

여러분 ! 바울의 마음속에는 왜 이런 멈추지 않는 슬픔이 있었을까요?

바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3절에서 이런 엄청난 고백까지 합니다.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러분, 실제로 바울이 대신 저주를 받아 지옥에 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고백 안에는 '내 동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내 생명이라도 내놓겠다'는 절절한 간절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과거 모세가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차라리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그 애끊는 마음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내 가족 중에, 내 가장 가까운 사람 중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도 혹시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내 직장 동료나 이웃 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마음의 부담 없이 지나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의 교리를 머리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눈물'입니다.

바울의 가슴에는 날카로운 진리가 있었고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눈물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하지 않았다 (롬 9:6~13)

 

당시 유대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은 민족이야.“

 

하지만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6절입니다. "....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 이스라엘에게서 났다고 해서 그들이 다 진짜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혈통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아주 명확한 예를 듭니다.

 

첫째는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죠. 이스마엘도 분명 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오직 이삭에게만 주어졌습니다.

7절에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이 예화는 더 놀랍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였습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심지어 엄마 태중에서 태어나기도 전이라 선이든 악이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라며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걸까요?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자격이나 행위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근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이만큼 선하게 살았으니까', '내가 이만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니까' 하면서 은근히 내 공로를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남들 앞에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고, 오직 감사할 이유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주권은 불의한가? (롬 9:14~18)

 

바울은 이쯤 되면 사람들이 어떤 반론을 제기할지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 안 하신다는 건데, 그거 너무 불공평하신 것 아닙니까?“

 

이에 대해 바울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14"그럴 수 없느니라!"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5"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겠다."

여러분, '긍휼''자비'는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게 아닙니다.

죄 아래 있는 우리 인간은 사실 모두가 예외 없이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그중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해 주신다면,

그것은 불공평이 아니라 측량할 수 없는 '자비''선물'입니다.

 

바로 왕의 예도 그렇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완악함을 강제로 꺾지 않으시고 그 완악함 그대로 두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사건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18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그냥 내버려 두시기도 하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따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16절 말씀을 우리가 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러니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늘 겸손히 엎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토기장이와 진흙 (롬 9:19~24)

 

그래도 인간은 또 마음속으로 질문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 놓으셨으면서,

왜 우리한테 죄를 묻고 탓하십니까?

여기에 대해 바울은 유명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듭니다.

21절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를 가지고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분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핒조물은 진흙에 불과합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를 재판석에 앉혀두고 옳고 그름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짧은 지혜로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언제나 완전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차갑고 냉정한 운명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철저히 사랑과 은혜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그릇들조차도 멸망당하지 않도록 오래 참으시며 기다려 주셨고, 결국 우리 같은 긍휼의 그릇들을 불러내어 영광의 자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참고로 절대주권과 운명론의 차이는 뭔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운명론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다릅니다.

1). 운명론은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인간의 선택이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운명론의 신은 인격이 없고, 사랑도 없으며, 목적도 없습니다. 단지 인간은 정해진 운명에 끌려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운명론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사랑과 공의와 지혜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편 115:3)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책임 있는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셨지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에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주시지만 씨를 뿌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경우에 형들은 악한 마음으로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건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요셉은 말합니다."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50:20)

형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 일을 선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차피 정해졌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니 나는 더욱 기도하고, 더욱 순종하고, 더욱 복음을 전하겠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참된 신앙생활은 내 머리로 하나님을 다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다 이해할 수 없어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 삶에 다 이해되지 않는 고난과 의문이 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이방인은 얻고 유대인은 넘어지다 (롬 9:25~33)

 

이제 바울은 구약의 호세아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결론으로 향합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호세아의 예언처럼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불러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그 기적 같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혈통만 믿고 떵떵거리던 이스라엘은 수많은 무리 중에 오직 믿음으로 반응한 '남은 자'들만 겨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역전의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갔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32절에 나오듯이, 그들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다가 결국 예수님이라는 돌에 걸려 넘어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믿는 자에게는 든든하고 안전한 '구원의 반석'이 되시지만, 내 의를 자랑하는 자에게는 부딪쳐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십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약속합니다. "그를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성도여러분, 오늘 로마서 9장은 인간 중심의 교만한 구원관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립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구원관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착해서입니까? 아닙니까. 내가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대단해서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뜨겁게 신앙생활을 잘해서 구원받은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세 가지 결단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첫째, 이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감사하며 삽시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치른 대가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맙다"는 감사가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아직 주님을 모르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시다.

바울이 동족을 향해 가졌던 그 애통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구의 구원을 위해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기도의 눈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셋째, 내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섭시다.

나의 종교적인 열심이나 직분,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 로마서 9장이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를 겁주거나 두렵게 하려는 딱딱한 이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희의 구원은 연약한 너희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복음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 공로나 자격 자랑하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 자랑하며 살아갑시다.

"그를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이 말씀의 붙들림을 받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로마서 9장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이 우리의 공로나 자격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주어진 선물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의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죄인이었지만, 주님의 크신 사랑과 선택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혹시 우리 안에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하려는 교만한 마음이 있다면 내려놓게 하시고,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이 동족을 향해 끊임없는 근심과 고통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과 친척, 이웃과 친구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을 때 담대하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생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앞에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토기장이 되시는 주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기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지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행위와 공로를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세상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구원의 확신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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