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원

작성자이동현|작성시간12.02.24|조회수27 목록 댓글 0

제1차 세계 선교 여행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놀라운 역사로 풍성한 열매를 맺었던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제자들과 함께 지낼 때 일어난 일입니다.

󰓍. 어떤 사람들이 (1절)

유대인들, 특히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는 물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조차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제에 있어서 편향성을 보였으며(행6:1),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행11:2,3). 이러한 것들로 볼 때, 그리고 5절에서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언급된 것으로 볼 때 본절에서 가리키는‘어떤 사람들’ 은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적 성향이 투철한 기독교 개종자들로 보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대주의적인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준수하도록 강요함으로 다시 교회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할레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율법주의자들의 뿌리 깊게 잘못된 인식은 이처럼 복음 위에 자신의 조상들이 모세 때에 받은 율법을 더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를 믿는‘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기에 부족하고 율법을 준수하는 ‘행함’이

여전히 요구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유대인들에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행4:12) 오직 예수로 구원얻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개종자들은 구원 받는 조건에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 준수를 계속적으로

요구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골 2:11)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사도 바울은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않다”고 열변하였던 것입니다(롬 2:28-9). 그리고 마음에

받는 할례는, 손으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육체의 정욕과 옛 사람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 그리스도의 할례(중생)라고 말씀(골2:11)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골2:12). 율법의 할례는 사람의 손으로 하는 할례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난 영혼이 영적 할례(구원

받은 표)임을 보여 주십니다.

󰓏.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2절)

잘못된 유대주의적 사고를 지닌 자들과 바른 복음을 지키고자 하는 사도들 사이에서 이처럼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은 격렬한 의견충돌과 논쟁을 의미합

니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 자체를 왜곡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온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진리에 도전하는 가르침에 분연히 맞섰습 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

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갈2:16)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두 가지 큰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를 선포(전도)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진리를 사수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성도)가 되도록 헌신(행20:24)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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