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작성자낮은자리은혜교회작성시간19.05.02조회수732 목록 댓글 1이 말씀을 원어로 해석합니다.
자, 맨 앞에 '엔 아우토스' 이건 '그 안에서'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번역이 안 되어 있지요?
아마도 그 다음에 나오는 '엔 호스'가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번역이 생략이 되어 있나 봅니다. 어쨌든
성경은 자기 맘대로 생략하거나 빼거나 더하면 안 됩니다. 만약에 더하거나 빼면 저주가 있을 거라고 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그 안에서'인데 이건 앞의 10절에서 말한 '그리스도인 예수'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예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 안에서'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업이 되었다.. '클레로오'입니다. 이 단어는 '2806클레로스'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부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성전을 부숴라.. 조각 조각 부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성전이신 자신의 몸을 부수라는 뜻이었죠. 주님의 몸이 완전히 부서지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그 진리의 말씀과 나를 하나로 연합하셨습니다.
그런 개념의 '부수다'입니다. 주님의 몸이 부수어지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하나로 연합이 되셨죠.. 그게 우리의 기업입니다. 우리의 유업이죠. 그런 개념입니다. 그 다음 단어가 앞에서 언급한 '프로오리조'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예정을 입어'라고 번역했어요. 이 단어는 '미리 제한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프로'와 '호리조'의 합성어입니다. '프로'는 '~앞에, 이전에'이고 '호리조'는 '표시하다, 경계를 짓다' 라는 뜻이고 이 단어는 다시 3725호리온 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경계선'이라는 뜻이고 '호로스'에서 온 단어입니다.
'호로스'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산에 뭐가 있어요? 성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산은 오로지 예루살렘이 있는 산 뿐이고 그 산에는 '성전'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표시, 표'이고 우리에게 주신 '경계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성전이란 '표'입니다. 표는 뭔가 의미를 내포한 표시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고 있는 '표, 표시'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경계'입니다.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전은 어떤 경계이죠? 성전은 그리스도 예수로 완성됩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님이 주신 성도의 경계라는 뜻입니다
그럼 그리스도 예수는 성도에게 어떤 경계가 되죠? 그리스도 예수는 진리이시니까 그 진리가 바로 우리의 경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프로오리조'는 그 그리스도 예수라는 진리를 우리의 경계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진리라는 경계로 세운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진리로 세운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걸 예정이라고 원문이 말합니다.
그 다음이 무엇을 따라? '카타 프로떼시스' 우리 말로 '프로떼시스'를 '뜻을'이라고 번역을 했네요. '제시, 제안' 그런 뜻입니다. 이 단어는 '프로티데미아'에서 왔는데 '프로'라는 전치사 즉 '~앞에, 이전에'라는 뜻과 '티데미' 즉 '배치하다, 땅과 수평으로 배치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티데미'는 하나님이 이 땅에 성전을 땅과 수평되게 배치를 해 놓았습니다. 성전에 가 보니 그 안에 기명들이 전부 다 땅 위에 배치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단어입니다. 이 단어와 짝을 이루는 단어가 '히스테미'입니다. 히스테미는 '위로 똑바로 서다'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배치된(티데미) 성전이 내 안에 진리로 들어와 위의 것으로, 진리로 똑바로 서면 그걸 '히스테미'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 '카타 프로떼시스'는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수평으로 배치한 성전을 따라'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배치한 성전을 제시하셨는데, 우리에게 제안하신 것이죠. 뭐 하라고요? 그 뜻을 깨달아 마음 속에 '히스테미'하라고요.. 그 뜻을 따라서 '포로호리조' 즉 '그리스도 예수라는 진리를 경계로 미리 세웠다'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배치하신 성전을 제시하고 그 성전을 그리스도라는 진리의 경계로 미리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성전, 즉 배치한 성전은 율법을 말합니다. 그 율법은 그리스도라는 진리의 경계로만 미리 정하셨습니다.. 율법을 그 경계, 진리의 경계로만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죠. 율법은 그 진리라는 경계 안으로만 정하신 것이지 진리 밖의 것으로는 미리 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이렇습니다. '그의 뜻(델레마)의 의도, 결정을 따라' 하나님의 뜻은 성전(율법)을 통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즉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아 마음에 되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 즉 델레마입니다. 그리고 '불레' 이것을 '마음의'라고 번역을 했는데 이 단어는 '결정'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이 무엇이죠? 하나님이 그 성전(율법)을 통해 하늘의 보이지 않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렇게 깨달아 되면 그건 '생명'이고 그걸 깨닫지 못하고 되지 못하면 '사망' 이렇게 하나님의 결정을 해 놓으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 놓으신
결정입니다. 이 결정을 따라 '에네르게오' 이 단어는 '엘곤' 즉 일이라는 뜻의 단어와 '엔' 즉 '~안에서'라는 전치사의 합성어입니다.
즉 '일 안에서' 성경에서 '일'은 뭐죠? 율법입니다. '그 율법 안에서 모든 것을' 율법은 여러 조항들입니다. 그러니까 '파스'는 즉 '모든 것'이란 여러 개를 말하니까, 율법을 말하는 단어인 거죠.
다시 정리하면 '그의 뜻(델레마)의 결정을 따라 많은 율법들을 미리 성전으로 배치하였고 그것을 따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그 성전의 경계로 세운 것이다'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은, 즉 원어적 의미는 사람을, 나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성전을 즉 그리스도 예수를.. 다른 말로 진리를 경계로 미리 세웠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 뜻의 결정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이, 기업이 된 것이라는 겁니다.
성경은 예정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진리를 경계로 세우셨다.. 그 표인 성전을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되도록.. 진리라는 경계를 세우시고 즉 예정하시고 그 안으로 들어오면 영원이라는 생명으로.. 그 경계를 미리 세우시고 그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영원이라는 사망이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죠..
자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내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이냐? 내 노력과 의지로 공부를 하면 구원이 되는 것이냐?
재밌는 것은 그렇게 성경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명 귀 있는 자가 복되다고 했습니다. 그 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그 귀가 없는 자가 분명히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그런 예정.. 미리 찍어 놨다는 식으로 쓰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제가 뭐라고 전달하죠? 그럼 다른 여러 학자들이나 원어를 잘 아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말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건 저도 몰라요. 저는 누구나 구입하여 볼 수 있는 성경원어프로그램으로 그냥 직독직해를 하는 것 뿐입니다. 믿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결국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사람의 눈이지.. 그 내용, 내포된 의미를 볼 마음이 없으니까요..
어쨌든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은 그리스도예수라는 진리를 성도의 경계로 미리 세웠다는 뜻이고,
그렇게 그리스도예수라는 진리, 그 분이 말씀하신 진리라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면 생명이고 아니면 사망이라는 결정을 해 놓으셨다는 것을 '예정'이라고 쓰고 있는 것이지 사람을, 나를 예정했다는 말은 원어적으로 없는 말이라는 겁니다.
그럼 뭐냐?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예정인 진리라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자기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 자신의 경험과 이 진리를 듣는 사람들을 보면서 알고 있습니다. 누구도 그 은혜가 아니면 이 말씀을 들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는 겁니다. 그건 제가 믿고 있는 바이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을 이렇게 원문으로 보면서 사람이 막연히 생각하는 그런 예정은 성경 원문에 써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내가 이렇게 그리스도예수라는 진리를 경계로 미리 세웠고, 즉 '예정'했으니 너희는 그 안으로 들어와라.. 보이는 율법을 통해 그 보이지 않는 진리를 알아라'
이렇게 써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관심도 없고 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릅니다. 그럼 그 부름에 합당한 자는 들어와 진리를 알고자 애를 쓰고 그 진리에 대한 갈급함으로 목마르고 그 진리를 듣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 뿐입니다..그래서 저는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는 것처럼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 진리라는 경계 안으로 들어온 자라면 반드시 진리를 알고 싶은 갈망과 열망이 누구보다 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첫번째 복이 '심령이 가는한 자는 복이 있다'입니다. 이건 '그 진리, 즉 그 성령에 대해 갈급한, 갈망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죠? 인간은 그런 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갈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갈망이 있는 자는 그 자체가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갈망은 당연히 그 분으로 부터 오는 것이지 인간에게는 이런 갈망이 생기지도 않고 생길 가능성도 없습니다. 이런 갈망이 없기 때문에 두번째 복이 '애통하는 자의 복'입니다. 이 애통은 우리의 애통이 아니라 유월절의 양으로 죽으신 예수의 고통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 분이 죽으심으로 유월절을 통해 성도는 광야로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광야는 미드바르. 즉 파자하면 '말씀을 말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죽음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말씀을 듣는 곳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 죽음의 의미를 알아야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죽음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은 우리를 말씀을 듣는 곳으로 내보내는 초청장의 의미가 있습니다. 초청장 받고 결혼식에 가면 더 이상 초청장의 의미가 없으므로 버리는 거죠. 그게 예수의 죽음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팔복을 다 풀 수는 없으니.. 아무튼 저는 가장 우선적으로 성경 원문이 말하는 바를 전달하고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이 이제까지 그냥 남이 가르쳐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을 보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그 개념과 내용이 얼마나 성경의 진짜 말하는 것과 다른지를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파괴되고 다시 세워지고 있는지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리를 전할 뿐 그 결과는 저의 권한이 아닙니다. 제가 이 성경의 원문적 의미에서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면 제가 먼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제 자신이 영원이라는 생명이 되는 것이 가장 최우선의 목적이고 그 다음이 그 사실을 그대로 전달할 뿐입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는 모릅니다. 그냥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