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주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으시는 주님의 보물이 되소서.
앞으로 드보라님의 과제를 이방에 실으려 합니다.
20. 하나님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이냐?(드보라)
(마태복음 22:15-22)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여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1. 가이사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대답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을 말씀하시는 기이함이 있다. 일찍이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에도 그는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어떤 비책이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으로 그를 당황하게 만드셨다. 니고데모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 대한 재판도 그렇다. 이 여인을 어떻게 처벌해야 하겠느냐고 사방에서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땅에다 글을 쓰셨다. 그들의 독촉이 빗발치자 조용히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하셨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어떤 권세로 한다고만 대답하면 되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라고 해도, 사람으로부터라고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엉뚱하게도 오히려 “세례 요한의 권세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라고 반문하셨다. 물론 그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헤롯당원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는 ‘예’나 ‘아니오’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만 하시지 않고, 기이하게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말씀도 더 하셨다. 이런 말씀들에 하나님의 지혜가 번쩍인다.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자. 이런 말씀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주는가?
2.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증거는 무엇인가?
사람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돈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밤낮으로 고생하며 일을 한다. 돈을 안 준다면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사람들은 돈만 많이 준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감수하고 돈을 벌려고 한다. 누구의 형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돈에는 왕이나 대통령의 그림이 있다. 정치적 통치자의 형상을 만들어 넣은 것이다. 미국 돈에도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들의 초상화를 넣었다. 그분들이 지금 생존해 있는 분은 아니지만, 그들이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이끌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기리기 위해 돈에 그들의 형상을 넣은 것이다. 한국 돈에도 5만원권이 나오기 전에 가장 큰 단위인 10,000원권 지폐에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세종대왕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는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고 누구나 쉽게 쓰는 1불짜리에 그려져 있다. 이런 것에서도 미국인과 한국인의 문화와 의식의 차이가 나타나 있지 않은가?
돈은 우리 믿음의 척도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돈도 집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다. 또한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 후에 따르라고 하셨다. 이 말은 천국을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돈으로 밭을 샀다. 그는 천국을 산 것이다.
3. 두 가지의 형상과 글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이사의 것은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는 형상과 글이다. 가이사의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쓰고 다 좋아하는 돈에 기록되어 있다. 돈을 좋아할수록 가이사의 글과 형상을 좋아하고, 따라서 가이사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나라 사람들이 다 보고 읽을 수 있도록 그 나라의 글자로 기록하였다. 곧 로마의 글자로 기록하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그 돈을 쓰게 된다. 로마의 글자만 익히면 그는 로마에만 속한 사람이 된다. 하늘을 쳐다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불쌍한가!
또한 돈에 가이사의 형상을 그려넣은 것은 가이사를 존경하고, 그에게 충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꾸 보면 사랑이 생긴다. 존경이 생긴다. 나아가 숭배하게 된다. 예배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의 것은 우리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형상과 글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 넣으셨다.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된다. 이왕이면 하루에 한 번만 보지 말고, 10번이고, 100번이고 자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형상이 더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또한 누구의 형상이 이루어졌느냐를 보아 알 수 있다. 마귀의 형상이 이루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누구의 글이 쓰여 있느냐를 보아 알 수 있다. 당신 마음에 하나님의 글이 쓰여 있어야 한다.
4.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이 되면 어떤 복을 받을까?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파송되어 나온 사신들이다. 머지않아 우리의 임무를 마치면 본국에 돌아갈 것이다.
이 세상이 함부로 대적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도 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성도들의 마음에 있는 천국을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할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고, 주인이 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주인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것이 되면 영원한 형벌과 저주가 기다릴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고귀한 피를 흘려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다.
귀한 말씀을 통해 가이사의 것만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도 있음을 더 깊이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두가지의 글을 분별할수 있는 영의 눈이 열리게 하소서!
특히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날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이에게 나의 있는 모든 것을 드리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만 가득채워져서 나의 일평생이 헛된 삶이 아닌 하나님께 바쳐져서 드린바되어 영원한 생명 얻는 참 복된 길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참으로 복된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1. 영에 속한 사람이냐, 육에 속한 사람이냐?(드보라)
(고린도전서 2:14-16)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1.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성령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육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다. 교회에는 다녀도 세상적인 재물과 명예와 권세와 쾌락을 더 탐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을 알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들은 성령의 역사를 거절한다.
14절에서는 성령의 일을 미련하다고 비웃는 자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사람들이 성령의 계시를 비웃는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들로부터 떠나 계신다. 우리가 깨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돌이켜야 한다. 지혜를 받아야 한다. 생명의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받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마 12:31-32).
2. 신령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성령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영적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엄마의 젖이다. 배가 고프면 사정없이 울어댄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영의 양식을 사모하고, 성령의 은혜를 갈구한며 신령한 말씀을 사모한다. 영적으로 배가 고프니 소리소리 지르면서 울부짖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어서 넷째 복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다. 영적 갈증을 느끼는 사람, 영적인 만족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이다. 드디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만족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의 옥중서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이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내가 감옥 안에 있다”고 말하여 자기의 괴로움을 나타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말함으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함을 나타내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다.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깨끗해지고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열린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불의한 것을 미워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난다. 기도가 이루어지고, 갈수록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이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된다.
성령이 충만하면 영에 대한 새로운 소원이 생기고, 성령과의 교통을 제일로 기뻐하는 사람이 된다.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참 편안과 영적 만족을 느낀다. 진리를 사모하여 성경 말씀을 사랑하여 날마다 열심히 읽고 듣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그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된다. 곧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욥기는 욥과 그의 친구들 모두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욥의 고난이라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에 골몰하는 이야기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을 찾고 계신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는 사무엘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삼상 2:35). 사울 왕 때에는 다윗을 찾아내셨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
신령한 사람은 전심으로 주님만 구하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한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니 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자기들의 영광만을 구하였다. “너희가 너희들끼리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라고 무섭게 질책하셨다. 아마 그들을 펄쩍 뛰면서 “우리가 언제 우리들의 영광을 구했느냐?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만 구한다.”라고 대답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자기의 모습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바로 그렇게 하지나 않는가?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먼저 나의 영광을 구하는 세속적인 못된 마음부터 뽑아내야만 되는 것이다.
3.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에 속한 사람이 될까?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를 깨달아 늘 자신을 살펴야 한다.
오직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셔야만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로마서 8:13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늘 자기 몸의 행실을 죽이기에 힘썼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육체의 소욕이 일어난다. 그것이 성령의 소욕을 이긴다. 그래서 그는 늘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하며 살았고(고전 9:27), 또한 날마다 죽는 생활(고전 15:31)을 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 지혜와 참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이다(잠 1:7; 9:10). 이 지혜와 지식을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골 1:27; 2:2)가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
전심으로 주님을 구해야 한다. 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신령한 사람은 이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마 6:33).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대하 16:9). 누가 있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할 것인가? 그래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까닭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 3:7-9)라고 말하였다. 이런 사람이 신령한 사람이다. 아멘!!!
귀한 설교말씀통해 어떤 사람이 육에 속한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인지, 어떻게 하여야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수 있는가를 더 깊이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과 육에 일이 서로 원수가 되듯이 육의 일을 미워히여 오직 성령이 인도하시는대로만 따라 살길 원합니다!
먼저는 내가 죄인인것을 철저히 깨달아 철저히 회개하여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삶, 나의 죄를 담당하사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신 내 구주 예수님을 날마다 더욱 사랑하는 자로 세워지길 원합니다!
22. 버린 자냐, 가진 자냐? (드보라)
(마가복음 10:23-31)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기독교의 본질은 버려야 할 것을 마땅히 버리는 것이고, 취해야 할 것을 마땅히 취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에 그에게 하신 말씀은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라는 명령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자 곧 “배와 그물” 또는 “부친을 버려두고”(마 4:20-22). 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다”(눅 5:27-28).
1. 우리가 왜 먼저 버리는 일을 해야 할까?
사람마다 많이 움켜쥐기를 좋아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도 큰소리를 칠 수 있지 않는가? 재물도 많아야 하고, 지식도 많아야 하고, 권력도 많아야 하고, 명예와 인기도 많아야 좋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많이 가진 재미로 산다. 뿐만 아니라, 한 번 가지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끝없는 투쟁이 일어난다. 살벌한 전쟁도 일어난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권좌를 내놓고 물러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백성을 다 죽이는 한이 있어도 못 물러나겠다고 버텼다. 그것은 김정은이도 마찬가지다. 백성들은 다 굶어죽거나 말거나, 그래서 못 살겠다고 다른 나라로 도망을 치거나 말거나 자기의 권좌만큼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고 버틴다. 핵무기를 만들고 2,000만 동포를 인질 삼아서 한국을 협박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버리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셨다. 떠나려니까 다 버려야 한다. 제자들에게는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다. 주님을 따르려니까 먼저 다 버려야만 했다.
1) 버리는 것이 믿음의 정문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것을 잔뜩 움켜쥐고 있으면 하늘의 보화를 받을 손이 없으니, 이런 사람은 결코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2) 왜 버리라고 하시는가? 버려야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가 짐을 잔뜩 짊어지고서 달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는가?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우리도 몸을 가볍게 하고서 달리기를 해야 한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초청하셨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은 내가 맡아서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나 되도록 더 좋게 이루어주신다.
3) 왜 버리라고 하시는가? 그래야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4) 왜 버리라고 하시는가? 그 넷째 이유는 버려야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이 세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2. 무엇을 버려야 할까?
1) 세상에 있는 것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것을 취해야 한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즉시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2) 육신에 속한 것을 버리고 영에 속한 것을 취해야 한다.
육신의 지혜와 지식을 버리면 하늘의 지혜와 지식이 임한다.
목숨도 버려야 한다.
3) 마귀에게 속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속한 것을 취해야 한다.
마귀에게 속한 것은 죄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취해야 한다.
3.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버리고 살 수 있을까?
1)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믿음으로 결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곧 세상에 속한 모든 욕심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실은 허무한 것이 아닌가! 허무를 깨달은 사람이 비로소 철이 든 사람이다. 아직도 허무를 모르고 세상 욕심에 붙잡혀서 산다면 그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믿음은 우리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주님 앞에 돌아올 때에 비로소 주님이 내려주신다. 그래야 보이는 것을 따라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된다.
2)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토록 거듭거듭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성령이 없이 일하면 결국은 마귀의 뜻을 이루게 된다. 내 딴에는 잘한 것 같으나, 실은 하나님의 원수로 행한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지극히 단순한 한 말씀에도 서지 못하여 자기들은 물론이고, 그의 후손 된 우리 모든 인류를 파멸과 고통 속에 던져 넣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에게 역사하던 그 마귀는 지금도 우리들 가운데서 역사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아차 하는 사이에 마귀에게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도에 힘쓰셨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4)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참 행복이 있고, 참 승리가 있다. 성령 안에, 그리고 생명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 거하여 더욱 행복하시고 더욱 형통하자. 아멘.
이세상 가치없는 것들 썩을 것들 다 버리고 믿음의 정문으로 나아가 영원히 썩지 않을 영생을 취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이 땅에 것을 버리고 하늘의 것을 취하는 믿음의 성도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날마다 깨닫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세속에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이 있게 하옵소서!
날마다 생명되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으로 인도되길 원합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참 행복과 참 승리를 누리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23. 이면적 유대인이냐, 표면적 유대인이냐?(드보라)
(로마서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으로부터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으로부터니라.
1. 표면적 대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특징은 할례에 있다.
둘째 특징은 율법에 있다.
셋째 특징은 그들의 종교인 유대교에 있다.
2. 이면적 유대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1) 첫째 의미는 나다나엘의 경우에서 발견된다. 예수님이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고 하셨다.
간사한 것이 없어야 한다. 이 세상에 거짓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대통령도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거짓되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간사한 것을 뽑아버리고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되고, 죄악의 길을 끊고 주님을 더욱 가까이하게 된다. 주님의 십자가를 늘 바라보면서 자신을 살펴 회개하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어 마음이 정결하고 정직하게 되고, 또한 그것들을 사랑하게 된다.
2) 둘째 의미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야곱은 아직 참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밤새워 씨름한 후에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었다. 마치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할례의 언약을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3) 셋째 의미는 육신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인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이면적 유대인이란 말의 넷째 의미는 이사야 41:14-15에 나타난다.
육신적으로는 지렁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 이면적 유대인이다. 하나님은 그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로 만드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셨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능력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그렇다. 육신의 힘,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만 한다. 이것이 바른 신앙이다.
3.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면적 유대인이 될 수 있을까?
1) 우리는 표면적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이를 에베소서 2장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1-2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11절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절,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① 회개해야 한다. 형식적 신앙생활을 회개해야 한다. 마음에 숨긴 죄를 회개해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것을 깨달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보다도 세상을 더 사랑한 죄를 깨달아 회개해야 한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어야 하고, 그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사죄의 은총을 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③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으로 살기를 소원하면서 늘 기도에 힘써서 더욱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한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 소극적으로는 죄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며, 적극적으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 수 있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된다.
3)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시 1:2). 주님의 진리의 말씀이 항상 우리를 지켜 의의 길로 가게 하신다. 또한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주신다(요 15:7).
진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진리가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고 하셨으니, 반대로 진리가 없으면 자유가 없다(요 8:32). 어떤 자유인가? 가장 중요한 자유는 양심의 자유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양심을 속이고 거역하면서 산다. 양심의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양심선언’을 한다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만한 용기도 없다. 돈과 권세와 무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우리의 양심을 강하게 만들고 용기 있게 만들어 주어서 불의에 대항하게 한다. 양심으로 인해 비록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일도 있고, 모진 박해를 받게도 되지만, 진리의 사람들은 결코 굴하지 않는다. 양심을 속이고, 또는 양심을 거역하고 육신의 안락을 누리느니 차라리 고난을 받겠다고 하면서 그 길을 간다.
진리의 말씀이 없으면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예수님을 죽이는 자가 된다.
진리의 말씀은 우리의 참된 양식이다. 이 말씀이 가득한 사람이 영적으로 배부르고 강건한 사람이 된다.
또한 진리의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참된 표적이다.
내가 표면적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성령의 충만을 오늘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형식적 신앙생활을 했던것들이 있다면 이 시간 생각나게 하시고 회개하길 원합니다!
마음에 숨긴 죄를 다 드러내주시고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것을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보다도 세상을 더 사랑한 죄를 회개합니다 날마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으로 세워지길 원합니다!
날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