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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 사역자 방(1)

(45) 하나님의 말씀(2)(최한나)/46/47/48

작성자은혜|작성시간24.12.30|조회수81 목록 댓글 0

 

45. 하나님의 말씀(2)(최한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Logos)에 대해 2번째로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놀라운 사건을 살펴봅니다. 성경의 첫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기초이자, 창조의 본질과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신약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로고스는 창조와 구원의 근본이며,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는 살아 있는 능력입니다.

 

특히 예레미야서 51장 15절과 10장 12절은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지혜, 그리고 명철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강조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원리와 질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로고스가 가진 창조의 능력과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51장 15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능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으며 그의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나니.”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첫 번째 요소는 바로 능력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창조의 동력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혼돈과 공허 속에서 질서가 생겨났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빛이 창조되었고, 땅과 하늘, 바다와 생명체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 속에 담겨 있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며, 무너진 삶을 재건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어려움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옛날에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 속에서도 새롭게 창조하시는 살아 있는 능력입니다.

 

지혜로 세계를 세우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10장 12절은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능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으며 그의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나니.” 창조의 두 번째 요소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창조의 과정에서 완벽한 질서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물질적인 창조를 넘어서, 그 창조물들을 조화롭고 질서 있게 배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빛을 창조하셔서 어둠과 빛을 구별하시고, 하늘과 바다, 땅을 나누시며, 생명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납니다. 시편 104편 24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것들을 다 지으셨으니.” 지혜는 단지 창조의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모든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잠언 3장 19절은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생명과 존재의 기초가 됨을 증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 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삶의 혼란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의 삶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로 우리를 인도하며 창조적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또한 예레미야 10장 12절과 51장 15절에서 강조된 세 번째 요소는 명철입니다. 명철은 하나님의 통찰력과 분별력을 의미하며, 창조의 세밀함과 목적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명철로 하늘과 땅, 해와 달,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창조의 순서와 방식 속에서 하나님의 명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셨으며, 각각의 창조물이 그 목적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낮과 밤의 주기, 계절의 순환,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은 하나님의 명철이 아니면 불가능한 조화입니다. 이 명철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역사합니다. 시편 139편 14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우리의 삶이 혼돈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의 명철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로마서 8:28).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때 우리는 그분의 통찰력과 계획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는 창조의 본질이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창조의 세 가지 요소인 능력, 지혜, 명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과 깊이를 살펴보았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 힘이고,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며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명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목적에 맞게 창조하신 섬세한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로고스는 단지 옛날 천지를 창조하셨던 말씀이 아닙니다. 그 로고스는 오늘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신뢰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명철이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할 것입니다. 저와 모든 성도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를 붙드시고, 그 말씀으로 창조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46. 하나님의 말씀 (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3절 말씀 아멘!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Logos)에 대해 3번째로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의 본질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요한복음 1장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강력한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첫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Logos)에 대해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그분의 사역을 깊이 이해하게 해줍니다.

 

세상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2)에서도 나누었지만,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과 요한복음 1장 1절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조의 시작과 구원의 완성은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는 세 가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말씀의 영원성과 본질. 둘째로는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 마지막으로는 말씀을 통한 창조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영원성과 본질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1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태초”라는 표현은 시간의 시작 이전을 가리킵니다. 태초란 단순히 세상이 창조되던 시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가 영원 속에 계셨던 상태를 뜻합니다. “말씀”은 그리스어로 로고스라고 표현되며, 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지혜, 그리고 인격을 담고 있습니다.

 

로고스는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셨고, 이는 그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분이 단순히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을 선포합니다. 이 진리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며, 우리의 신앙의 중심에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과거에 계셨던 분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또한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표현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깊은 교제와 연합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분리된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이십니다.

 

요한복음 1:1의 마지막 부분은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명확히 선언합니다. 이는 말씀 자체가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로고스는 성부 하나님과 구별되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로고스)은 영원부터 함께 계셨으며, 서로 교제하시며 일체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보낸 메신저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서 우리에게 오신 분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의 뿌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통한 창조의 능력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 곧 로고스가 창조의 도구이자 주체가 되셨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으며, 그분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 자체가 곧 창조의 능력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그 말씀이 곧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밝힙니다. 로고스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세우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0:12은 이 창조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으며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와 명철이 창조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로고스, 곧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과거에만 역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고 활동하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창조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며, 우리의 혼돈을 질서로 바꾸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오직 말씀을 붙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3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로고스의 영원성과 능력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말씀은 영원부터 존재하셨고,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되십니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말씀은 창조의 도구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을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의 환경은 흔들릴지라도,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4:35)고 하신 주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말씀은 우리 삶의 빛이며, 어두운 세상 속에서 우리의 길을 밝히는 등불입니다(119:105). 오늘 이 로고스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며,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결단을 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47. 예수님은 생명의 떡 (1)

참된 양식과 거짓된 양식에 대하여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6:47-51절 말씀 아멘!!

 

우리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양식, 즉 음식은 인간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 먹는 음식은 우리의 육체를 살리고 힘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에도 양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우리 영혼을 살리는 참된 양식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선언하시며, 세상이 제공하는 양식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소유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라는 점입니다. 셋째, 이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참된 양식과 거짓된 양식의 차이를 분명히 깨닫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4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점은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는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영생이 단지 미래에 이루어질 어떤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이미 주어진 현재적 축복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행위나 관념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믿음을 통해 이미 영생의 선물을 받았음을 확신시키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기쁨을 줍니다. 세상은 항상 조건적인 사랑과 일시적인 만족을 약속하지만, 예수님은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믿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받는 이 영생은 단순히 죽지 않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참된 양식과 거짓된 양식의 차이입니다. 48절과 4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경험했던 만나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만나를 통해 그들은 육체의 생명을 유지했지만,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양식, 즉 육체를 위한 양식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럼 거짓된 양식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지 못하는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입니다. 세상은 물질적 부, 명예, 권력, 쾌락 등을 통해 만족과 행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며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고, 물질적 풍요를 쌓더라도, 영혼은 여전히 허기질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으면서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양한 양식을 제공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지 못합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50절에서 예수님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떡은 육체의 양식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배고픈 자를 먹이고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분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자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의미에 대하여 5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실 어린양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은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이 떡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이 떡을 먹으며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참된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을 먹은 자는 삶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세상의 거짓된 양식을 좇던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이 떡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증거하며,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참된 양식과 거짓된 양식의 차이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세상의 거짓된 양식은 일시적 만족을 줄 뿐, 우리의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까? 세상이 주는 거짓된 양식을 좇으며 헛된 만족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려야 할 때입니다.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 안에서 참된 생명과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8. 예수님은 생명의 떡 (2)

 

오늘 우리는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는 주제를 두 번째로 다루면서,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의미를 더욱 깊이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매일 양식을 필요로 합니다. 육신의 양식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영적 양식을 통해 참된 생명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영적 필요를 간과하거나 세상의 것들로 채우려다 공허함에 빠지고 맙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영적 생명과 만족을 주시는 분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35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 참된 생명과 만족이 있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갈급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만족과 행복을 약속하며, 돈, 명예, 성공, 관계 등 다양한 것들로 우리의 공허를 채우려 하지만, 그것들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이 땅의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굶주릴 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출애굽기 16:15). 만나를 통해 그들의 육신은 잠시 배부를 수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한정된 양식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48-50에서 이 만나와 자신을 비교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거니와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라.”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살아남았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시며, 그 떡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떡”은 단순히 상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51에서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 죄 사함을 위해 동물의 희생 제사가 요구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서는 죄 없는 예수님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히브리서 9:12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내어주셨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에게 생명의 떡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떡 자체이십니다. 이는 우리의 영혼이 참된 생명을 얻기 위해 반드시 예수님을 먹고 마셔야 함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6:56-57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성찬의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과 은혜를 우리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떡을 먹은 자의 삶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 그것이 바로 생명의 떡을 먹고 사는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살아 계심을 매 순간 체험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영적인 갈급함을 예수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들로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우리의 영혼을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만족이 되십니다. 둘째,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신명기 8:3에서 모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양식입니다. 셋째,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사랑과 희생을 삶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생명의 떡을 먹은 자는 그 떡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생명의 떡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초대는 단순히 종교적 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참된 생명과 만족으로 이끄시는 사랑의 초대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생명의 떡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고, 그분의 은혜로 충만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 떡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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