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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민의 노래

작성자은혜|작성시간10.10.10|조회수38 목록 댓글 0

5. 선민의 노래

(시편 96:1-6)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그의 영광을 열방 중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1. 노래를 사랑한 우리 민족

 

우리 인생에 노래가 없다면 어떨까요? 짐승들에게는 노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기쁠 때만 아니라 슬플 때도 노래를 부릅니다. 친구가 많을 때도 노래하지만, 외로울 때도 노래합니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를 보면 그의 기분도 알 수 있지만, 성격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이라고 하는 다윗 왕은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를 가리켜 세 가지로 말하였는데, 그 첫째는 “높이 올리운 자”라고 하였고, 둘째는 “야곱의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였고, 셋째는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삼하 23:1)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노래만 잘한 것이 아니라, 수금도 잘 타서 사울 왕에게 악신이 임하여 괴로워할 때에 그가 수금을 타고 찬송을 하면 악신이 쫓겨나고 정신이 맑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찬송을 잘하면 악신이 범접하지 못하고,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행가들은 대개 슬픈 노래들입니다. 이별 노래가 많습니다. 가수들은 노래 한 곡을 취입하기 위해서 수천 번의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수들은 그들이 부른 노래와 같이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던 차중락은 한창 나이인 27살 가을에 정말 낙엽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처럼 몹쓸 병으로 쓸쓸하게 돌아갔고, <산장의 여인>을 부른 권혜경은 노래 가사처럼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쨍! 하고 볕들 날, 돌아온다네>라는 밝은 노래를 부른 송대관은 그 노래로 인하여 쨍!하고 빛을 보았답니다.

 

그런데 민족에게도 노래가 있습니다. 온 민족이 다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선민인 이스라엘의 국가는 ‘하티크바’(הַתִּקְוָה), 곧 ‘희망’이라는 노래입니다. 위키백과에 있는 번역을 보면, 「오랜 영혼 안에 서 있는 유대인의 영혼은 갈망하는가? 그리고 동방의 끝에서는 시온으로 시선을 보는가? 우리의 희망은 잃지 않으리, 2천년의 희망이 있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나아가리, 시온과 예루살렘 땅으로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가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동방의 끝에서 시온으로 시선을 보는가?”라는 구절입니다. 위키백과의 번역이 좀 애매한데, 영어로는 “한 눈이 동방으로, 시온으로 보고 있다.”입니다. 동방의 끝이 어디입니까? 바로 대한민국이 아닙니까? 우리가 시온으로 시선을 보냄으로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어 번역엔 한 눈이 동방을 보고, 시온을 본다고 했습니다. 동방과 시온이 동격으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한 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의 눈’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 1달러 지폐의 뒷면에 있는 ‘피라미드의 눈’을 뜻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민족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두 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의 국가인 애국가입니다. 이 가사에 “하나님이 보우하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의 국가에 ‘하나님’이란 말이 들어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합니다. 미국 같은 기독교국가의 국가에도 하나님이란 말은 없습니다. 불신자들 중에서는 이것을 빼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백성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이란 이름은 기독교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섬겨온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4000년을 내려오면서 그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만 가르쳤는데, 기독교 복음이 들어오면서 드디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정확하게 알게 해 주지 않았습니까? 없애자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保佑하신다가 무슨 뜻입니까? 보호하시고 도와주신다, 곧 天佑神助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됩니다.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우리가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이것이 과연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 사람들은 우연히 그렇게 지은 것 같아도 그 배후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역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2. 우리의 민요 아리랑

우리 민족의 노래 둘째는 아리랑입니다. 아리랑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어서 언제부터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사와 곡이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우리나라 전국에 퍼져 있는데, 50여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아리랑 고장은 밀양, 정선, 진도의 세 곳이랍니다.

[밀양 아리랑]은 경쾌하고 경건하게 불러서 즐겁게 느낍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라고 하지요? [정선아리랑]은 너무 산악이 험악해서 좋은 곳이라고 하여 왕이 후궁을 두었습니다만 그들이 궁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니 슬프게 부릅니다. 정선 아리랑은 느립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진도아리랑]은 배로 다니는 곳이니 순풍일 때는 즐겁게 부르고 풍랑일 때는 슬프게 불렀습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1) 아리랑의 중요성

① 아마 2003년인 것 같습니다만 ‘아리랑’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선정되었습니다. 이 선정 과정 중에서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말했답니다.

“[아리랑] 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깨우쳐주었다.” “듣는 도중 몇 번씩 흥이 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동적이다.” 이들 모두 처음 듣는 곡들이었으며, 한국 유명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아리랑을 전자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고 합니다.

 

② 아리랑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에 가수 조수미가 불렀습니다.

 

③ 아리랑은 남북한이 함께 무슨 행사를 할 때에도 부르는 노래로도 유명합니다.

아리랑만큼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 온 노래도 없을 것입니다. 슬플 때도 아리랑, 기쁠 때도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민족의 한과 기쁨을 노래해 온 단 하나의 노래입니다. 한국인은 아리랑을 부를 때 저절로 흥이 납니다. 기쁜 자리 슬픈 자리 없이 언제 어디서나 불러서 기쁘고, 들어서 정다운 노래…. 무슨 이유로 ‘아리랑’은 한국인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요?

 

④ 한국에 기독교인들이 세운 ‘아리랑 당(黨)’이라는 정당(政黨)이 있는데 이 당이 내세운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이분들이 자기 정당의 이름인 ‘아리랑’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神歌(하나님 노래)니, 우리 당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세운 당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勞動謠, 곧 아담에게 주셨던 ‘노동’의 명령을 수행하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타락하여 ‘저주받은 노동’ 아래 신음하게 되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거듭난 사람들은 이제 ‘본원적 노동’, ‘창조적 노동’, ‘축복의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노동을 온 세계에 확대해야 할 소명이 있는데, 이 당은 이런 ‘아름다운 노동’을 실천하는 ‘노동의 정당’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서민들의 애환(哀歡)을 담고 있는 민요이니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의 천부적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당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⑤ 2008년 5월 5일 월요일 동아일보 금동근 기자가 이런 기사를 썼습니다.

「이정면(당시 83세)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아리랑이 많이 전파돼있다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 중 이 교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미국 개신교 측이 1990년 발간한 찬송가에 수록된 아리랑이었다. Christ, You are the Fullness라는 제목 아래에 Arirang이라고 적혀 있고, 작곡가 이름 칸에는 Korean melody라고 표기돼 있었다. 찬송가를 만드는 위원회 소속의 버트 폴먼이라는 작사가가 찬송 가사를 이 곡에 붙였다. 이 교수는 어떤 연유로 아리랑이 미국 찬송가에 등장하게 됐는지 폴먼 씨에게 e메일로 물어봤다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여서 찬송가에 쓰게 됐다”는 대답이다. 위원회가 아시아, 남미 쪽의 곡을 찬송가에 수록하려는 시도를 하던 중 아리랑을 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3월 미시간에 있는 손자를 만나러 갔다가, 손자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오케스트라가 아리랑 변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지도교사에게 수많은 곡 중에서 왜 아리랑을 선택했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아름다워서, 꼭 연주하고 싶어서 포함시켰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교수는 “아리랑을 공부하면서 나를 발견했다.”면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져 봤지만 아리랑만큼 ‘끌림’과 ‘감동’이 있는 대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2) 원래는 우리가 가사의 뜻을 알고서 노래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리랑은 가사의 뜻도 모르고도 이렇게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대관절 무슨 뜻일까요?

과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는데, 근래에 중요하게 나타난 설 몇 개를 소개합니다.

 

① 일반적으로 아리랑을 이별의 노래라고 해석하는 사람과 기쁨의 노래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에서 “아리랑은 ‘아리다’라는 말이고, 쓰리랑은 역시 ‘쓰리다’라는 맘과 속이 쓰림을 나타내는 말로서, 우리 민족의 한(恨)의 정서를 담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석하면 “아립니다. 아립니다. 알알이 맘이 무척이나 아픕니다. 슬픔의 고개를 넘어갑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납니다.”라는 것입니다.

 

한편 기쁨의 노래라고 하는 사람들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아’는 ‘밝다’ ‘빛난다’ 뜻의 태양을 뜻하거나 ‘하늘’을 의미하는 古語요, ‘리’는 넓은 땅, 즉 大地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랑’은 사람을 뜻하는 낱말인데, 따라서 ‘아리랑’의 각 낱말의 뜻은 하늘과 땅과 사람, 곧 天地人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천지인 사상을 갖게 된 것은 실로 민족의 始原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우리 조상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고대로부터 세계를 구성하는 만물의 축으로 생각했고 그 각자에 陰陽이 있다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지인과 각각에 있는 음양 이론, 여기서 우리 민족의 철학과 사상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잘 어울려 살아가야 하고 그에 따른 음양 이치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철학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민족의 스승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맞물고 돌아가는 도형(圖形)인 삼태극을 만들어 ‘아리랑’이라 칭하고 노래까지 만들어 대중들을 가르쳐왔다는 것입니다.

 

“천지인, 천지인, 천지인이 함께 돌아간다(自然과 사람이 어울려 돌아간다.) 천지인 고개를 잘 넘어가는 구나. 천지인을 버리고 살아가면 얼마가지 못해서 넌 병(病)들고 말거야.”

 

② 고대 역사 소설가로 강무학(姜舞鶴)이라는 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리랑이라는 말의 유래를 찾아가면 아리랑은 上古 때 긴 江을 뜻했다. 후대에는 강을 아리랑이라 하지 않고 江이라 했지만 아득했던 옛날에는 강과 河川을 모두 아리랑이라고 불렀음을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고조선 시대의 語源과 풍습을 찾기는 극히 어렵지만 고조선의 유민이라고 자처한 신라의 문화와 고구려, 백제, 삼국의 건국초기에서는 아리랑과 관계가 있는 사건이 많았다. 廣開土大王의 碑에 阿利水라는 문구가 있는데, 아리수는 지금의 鴨綠江이다.

 

수렵기에는 일정한 주거지(住居地)가 없고, 유랑생활을 했다. 따라서 아내들은 이곳저곳 유랑하며 남편을 따라다녀야 했다. 남편은 사냥을 하기 위하여 평야를 달리고 또 산을 넘으며 하천을 헤엄쳐 건넜다. 그러나 어린아이들과 생활도구를 가진 여인은 하천을 만나면 그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져야만 했다. 어린애를 안고 업고는 도저히 그 강을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강 건너 빤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사랑하는 님을 두고도 못 건너가고 가슴만 태웠다.”

그래서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③ 셋째는 아리랑을 한자로 생각하여 해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도 두 가지인데,

첫째는 나 아(我), 이별할 이(離), 아가씨 낭(娘) 또는 사나이 랑(郞)이라고 해석하여, 아리랑은 사랑하는 아가씨나 사나이와 이별하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국학자 이승헌 님의 설명인데, 나 아(我), 깨달을 리(理), 즐거울 랑(朗)으로 봅니다.

아리랑이란 참 ‘나’를 깨달은 사람을 뜻하며, 그 ‘나’를 알 때 큰 포용력과 사랑, 자비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아!’라고 말합니까? 깨달을 때, 슬플 때, 기쁠 때, 놀랐을 때 등에 쓰지 않습니까? ‘아’는 모든 감정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를 알면 모든 것을 다 압니다. ‘리’는 깨달음을 뜻하니까 따라서 ‘아리’는 ‘아’ 즉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랑’은 기쁨이라고 해석합니다. ‘아리랑’은 ‘참 나’를 깨닫는 기쁨입니다. ‘아라리요’는 “나를 깨닫는 기쁨을 다 같이 누리세요.”라는 뜻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깨달음의 고개를 넘어 간다는 뜻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의 뜻은 참 나를 깨닫지 못한 사람, 즉 참 나가 아닌 세상적이고 이기적이며 편협한 나를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에서 ‘십’은 완성과 통합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십리를 가는 것은 참 나와 거짓의 나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으로 자아완성(自我完成)을 의미합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말은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참 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병이 든 사람이요, 아직 완성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결론으로 이와 같이 아리랑에는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가르칩니다.

 

④ 넷째로 중요한 것은 ‘아리랑’을 순수한 우리말로 보고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향토사학자 허명철이란 분은 아리랑의 원어는 ‘알이랑’이며 우주 창조자 ‘한알님(하늘님)’을 뜻한다고 하면서 “아리랑의 ‘아리’는 ‘알’이고, ‘랑’은 ‘임’과 같은 어원일 것이라고 하면서, ‘알에서 태어난 임’이 되는데, 건국 신화에서 박혁거세, 김수로왕, 김알지 등이 하늘에서 내린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니 ‘아리랑’은 민족의 시원인 건국주를 부르는 말이 아니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유석근 목사님은 욕단과 그의 자손들이 동방으로 이주해 온 역사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곧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되는데, ‘알’은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원시 언어가 ‘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엘(EL)’, 아랍인의 ‘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이니,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입니다.

“고개를 넘어 간다” - 고대 한민족이 이란고원을 지나 파미르고원을 넘어, 天山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실로 수많은 고개를 넘었습니다. ‘파미르 고원’을 중국인들은 ‘파 총’자를 써서 총령(蔥嶺: 파총, 재령)이라고 하는데, 이는 파(蔥)마루(嶺), 발음 그대로 ‘파마루’입니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고원(蔥嶺)에서는 파가 많이 야생한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인은 남자를 사내라고 하는데, 사내는 원래 ‘산아이’가 변한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고대에 높은 산맥들을 넘어 동방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번역하면 “하나님과 함께 산을 넘어 간다.”입니다. ‘아리랑’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던 옛 조상들이 이 땅에 오기까지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으면서 부른 ‘찬송가’였던 것입니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은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의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누구를 뜻할까요? 문맥상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이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불신, 배척하는 무리들을 의미합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 이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만약 노래 가사가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했다면, 그것은 실제로 발에 병이 나라고 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사는 ‘가는 놈’이 아니고 ‘가시는 님’입니다. 따라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발병이 나서라도 더 떠나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는 회귀원망(回歸願望)의 연정(戀情)을 노래한 것입니다.

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린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느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을 사랑으로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알이랑’에는 ‘하느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배어 있습니다. 즉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얼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마 22:37~40).

 

이상 자세히 살펴본 바처럼 아리랑은 ‘찬송가’입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알려주는 ‘천손민족(天孫民族) 코드’입니다. 우리 배달겨레는 세계 만민 중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유일한 백성인 것입니다.

 

 

3. 천국에서는 찬양만 있습니다.

 

1) 마귀를 찬양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① 이별의 노래만 불러도 그의 인생이 이별하는 인생이 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마귀를 찬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즘 마귀를 찬양하는 노래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노래들은 대개 마귀를 찬양하는 노래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들에 물들게 된 청소년들의 영혼이 다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②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갔을 때에 그에게 보여준 것은 아리랑 축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이것은 김정일의 회갑(02. 2.16), 김일성의 90회 생일(4.15), 북한군 창건 70주년(4.25) 등 3대 행사를 위해 기획한 것으로 관측되는 되는데, 그 목적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리랑이 원래 그런 것입니까?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찬송가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왔듯이, 욕단을 비롯한 우리의 선조들은 다시는 홍수 심판 같은 저주가 없는 밝은 땅을 찾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전진해 오면서 수많은 험한 산을 넘을 때에, 거기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이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마귀의 자식들을 위해 찬양하는 것으로 둔갑을 시킨 저 무리들에게 반드시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③ 우리가 아리랑의 뜻을 알고 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이 노래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그 뜻도 모르고 불렀어도 하나님은 원래 이 노래를 만든 우리 선조들의 마음과 뜻을 아시고 그 노래를 따라 우리 민족과 함께해 주셨고, 수많은 환난과 고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유대 나라의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지고, 이름을 사해에 떨치게 되었다고 했는데(대하 26:15),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놀라운 복을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찬양하면 복을 받습니다.

① 우리의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잠깐 더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귀한 뜻을 생각하면서 주님께 더욱 충성하는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② 말의 위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말을 쓰면 우리의 생애를 파괴시키는 일이 생겨나지만, 긍정적인 말을 쓸 때는 위대한 복이 다가옵니다.

 

첫째, 긍정적인 말은 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 몸을 굴레 씌웁니다(약 3:2). 그러므로 우리가 “안 된다, 끝장났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굴레가 되어 정말 안 되고 끝장나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창조적인 말, 승리의 말, 건강의 말, 생명의 말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이 복의 길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입니다.

 

둘째, 긍정적인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고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입술로 고백하여 그 재료를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예수님의 손에 얹어드리면 바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셋째, 긍정적인 말은 성령의 검이 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가 말씀 위에 서서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나가서 검이 되어 마귀를 찌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입술로 긍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 원수를 물리치고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 때문에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의 입술에서 부정적인 말을 끌어내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이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 “안 된다, 절망이다.”라고 말하면 그 말이 올무가 되어 신앙을 잃게 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실 수가 없게 됩니다. 또한 마귀는 우리의 부정적인 말을 통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긍정적인 말을 할 때에 축복이 다가오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며 그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마귀의 진을 훼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다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삽시다.

천국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천국에서는 너무 심심할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만, 하나님은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을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심심하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선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지만, 그곳은 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곳이고, 이 세상의 즐거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열심히 찬양하기를 연습하여 우리 모두 저 나라의 영광을 맛보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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