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우리나라 좋은 나라(1)
(신명기 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지난달에 고국을 방문하고 제 마음에 크게 느껴진 것은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로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좋아서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을까요? 첫째는 활기가 넘치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건설의 열기가 넘쳤습니다. 건물들을 새로 짓고 있었고, 도로를 새로 만들고 있었고, 모두가 바삐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나라가 아닙니까?
둘째는 주일 아침에 중국인 노동자들의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오후 5시에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였는데, 그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하여 한국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하고는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교회를 짓고 전도하는 사람들이 된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 선교의 모판이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셋째는 서울신학대학교에 가서 새벽 4시에 특수훈련을 받는 신학생들에게 설교를 하고, 이어서 6시에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의 새벽기도회에 설교를 하면서 느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미국에는 신학교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없어서 목사가 모자라 큰일이라고 야단인데, 한국에서는 목사 지망생이 너무도 많아서 걱정이 아닙니까? 더구나 미국 목사들은 대개 뜨거운 사명감도 없고, 신앙이나 신학이 변질된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의 신학생들이나 목사님들은 사명감이 불타고 있고,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신학과 신앙을 가진 분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미국에 돌아와서 중국에 학교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꾼들을 길러내고 있는 최하진 선교사의 “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라는 책이나, 몽골에 대학교를 세우고 복음의 일꾼들을 기르고 있는 이용규 선교사가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마음에 감격이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지난 4일 주간에도 두부전도왕, 낙도전도왕 반봉혁 장로님의 책을 읽고 그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하고 정말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로구나 하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상 어느 나라에 이렇게 귀한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8일 오후에 우리 교회의 켈리 전도사님이 JAMA 중보기도 세미나에 다녀온 보고를 하는 중에 이 대회를 시작하신 알라스카의 김춘근 교수님은 연세가 많으신데도 이렇게 젊은이의 정렬을 가지고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신명기 28장의 말씀이 더욱 새롭게 제 마음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이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복을 받은 백성이 일어납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다 이루어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세에 일어날 대환난을 설명하셨을 때에도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막 13:31; 눅 21:33)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은 누가복음 16:17에도 또 나옵니다.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이렇게 거듭거듭 강조하신 것입니다.
2) 세계의 역사를 볼 때에도 이런 복을 받은 민족이 있었습니다.
① 첫째는 영국입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요한 웨슬리의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영국은 세계를 지배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이때에 생겼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 보면 영국은 이미 기독교국이 아닙니다. 영국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영국이 예수님을 버리니, 오히려 이슬람에게 먹힌 나라가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② 둘째는 미국입니다.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였고, 끊임없이 부흥운동이 일어나 삽시간에 세계 제일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가 힘을 잃고 세속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애가의 첫 구절 말씀처럼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아 있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하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애 1:1-2)라는 말씀이 이루어져가고 있지 않았습니까? 영광을 되찾으려면 다시 예수님께 돌아와야만 합니다.
③ 셋째는 한국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의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허리가 동강 나서 반신불수가 된 나라,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인 마귀 김일성과 김정일이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 나라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한국은 정녕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곳, 작은 곳에서 일어납니다.
① 원래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신명기 7:7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② 또한 바울도 말하기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아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라고 하였습니다.
③ 바울은 이 진리를 자기 몸에 가시를 두신 사실을 통하여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7-9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自高)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2. 우리나라가 참으로 좋은 나라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세계에 제일가는 나라로 만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① 우리가 다 잘 아는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복들을 보면 첫째는 3절에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하셨고, 6절에서는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복을 받는 나라와 백성이 됩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에 나타납니다.
② 4절에는 두 개의 복이 먼저 나옵니다.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복들 중에서 최고의 복은 자녀들이 잘 되는 복입니다. 둘째의 복은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의 새끼들까지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 되는 복을 받으려면 부모가 잘 심어야 합니다. 시편 127:3에 자녀는 태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는 부모를 꼭 닮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얼굴 모습이나 성격뿐 아니라, 부모의 행실에 대한 열매가 자녀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선을 행하면 자녀들이 복을 받고, 부모가 악을 행하면 자녀들이 악하게 됩니다. 이번에 오셨던 반봉혁 장로님의 경우, 그의 어머님이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에 많이 힘쓰셨다고 합니다. 부모가 이렇게 살았더니,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 중에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일으켜주신 것입니다.
③ 5절에는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이는 셋째의 복인 재물의 복을 말합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라고 하였고, 이어서 11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의 복과 함께 재물의 복을 주십니다. 재물은 얼마나 받게 됩니까? 이사야 60:4에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라고 하고는 5절에서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라고 하였고, 6-7절에서는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하여 8-9절에서는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원인은 9절 하반절 말씀인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라는 설명에 나오지 않습니까?
④ 넷째의 복은 7절에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대적할 자가 없게 하시므로 참 평화를 주십니다.
⑤ 다섯째의 복은 9절에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 곧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서 설명하기를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성민(聖民), 곧 ‘거룩한 백성’이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백성”입니다. 세계 만민이 이들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도(聖徒)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참된 성도가 된다면 만민이 두려워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복입니다. 작게는 내 가정에서부터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남편이 성도가 되면 아내가 남편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래야 가정에도 질서가 잡힙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거룩한 백성이 되지 못하면 아내가 남편을 우습게보고 함부로 대적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범사에 거역하고 비판하고 불평합니다. 아내가 성도가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남편이 아내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자녀들도 어머니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면 죄를 짓지 못합니다. 순종하게 됩니다.
⑥ 여섯째 복은 12절에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주신다.”는 말씀에 있습니다. 하늘의 보고(寶庫)란 보물 창고인데, 이 창고를 여시니까 “하늘로부터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물 창고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정의와 진리와 영생이 있습니다. 행복과 평안과 영광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땅의 보물만 사모하지 말고, 하늘에 있는 이런 보물을 사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가치를 모르면 받지 못합니다.
⑦ 일곱째 복은 12-13절에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남에게 얻어먹는 자가 되지 말고, 넉넉히 베풀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남에게 받는 것도 기쁘지만 더욱 큰 기쁨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베푸는 사람은 환난 때에도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도 받지만, 동시에 인간들로부터도 보호를 받게 됩니다.
2) 자유가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① 우리나라는 자유가 너무 넘쳐서 걱정이기도 합니다. 자유가 넘치면 방종으로 흐릅니다. 무질서하게 됩니다. 지금 자유가 어느 정도로 넘칩니까? 빨갱이 사상을 가진 자들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당장에 다 잡아서 사형을 시켰을 인간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대통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는 경제적, 신앙적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아무리 좌파사상을 가졌다고는 해도 북한에 가서 살겠다고 하는 자는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우리 국민의 수준이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제풀에 꺾이게 될 것입니다.
② 우리나라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을 뿐 아니라, 전도의 자유도 있습니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전도의 자유를 막아버렸습니다. 남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하여 공적이 모임에서 목사님들이 하던 기도를 없애버렸고, 법원 앞에 세워져 있던 십계명을 쓴 판들을 없애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창조론 대신에 허무맹랑한 진화론을 가르칩니다. 기독교 복음은 전하지 못하게 하고 이슬람과 친해지겠다고 야단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③ 정말 좋은 것은 우리나라에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돈도 명예도 권세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아까 초두에 말씀드렸지만, 최하진 목사님, 이용규 목사님, 김춘근 장로님, 반봉혁 장로님 등 모두 얼마나 훌륭한 분들입니까? 복된 사람은 훌륭한 분들을 많이 알고 기뻐하며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지만,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교회에 다니기는 해도 남의 흠이나 보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삽니다.
3) 소망이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①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큰 고난의 터널을 지나온 나라입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인 김정일 집단이 위에 버티고 앉아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민족이요, 경제적으로나 지식적으로는 물론이고,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도 세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② 오늘날의 세상은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세상을 이끌어왔던 영국이나 독일이나 미국이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슬람 국가들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그들이 인류에게 어떤 희망을 줍니까? 그들은 테러, 전쟁, 파괴는 일삼아도 인류에게 행복과 자유를 약속하지 못합니다.
③ 고국에서 북한으로 풍선 삐라 날리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민복 선교사라는 탈북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저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김일성 부자를 만난 중국지도자는 실각하거나 망한다는 말을 처음들은 것은 탈북 시 중국연변에서였다. 이 말은 빈말이 아니다. 북한을 다녀 간 중국 지도자들을 보자. 江淸 실각, 자살. 姚文元 실각, 華國鋒 주석 실각, 胡耀邦 당서기 실각, 사망. 趙紫陽 총리 실각, 사망 등이다. 이제 溫家寶 중국총리가 김정일을 만나고 갔는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편들어 줄 걸 편들어주어야지. 자국민 수백만을 전쟁으로 또는 굶겨서 죽인 자를 편드는 것은 하늘의 저주를 받는 것 같다. 이것은 성경 이사야 31:1-3 악과 함께하면 치겠고 악을 도운 자나 받는 자나 둘 다 망한다고 말씀대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과 동행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면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그 중에서도 희망이라는 복을 받게 됩니다. 반드시 잘된다는 확신과 기쁨과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반드시 잘됩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희망을 놓지 마세요. 새 힘이 납니다.
3. 어떻게 해야 이런 복을 받을까요?
1)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① 사랑하려면 먼저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어려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커서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려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산 사람은 커서도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들은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0에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면 구원함을 받지 못하고, 불의에게 속임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② 그 사랑이 십자가에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비로소 그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반봉혁 장로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였고, 또한 고난을 많이 당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큰 인물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많이 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위한 고난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면서 자기가 철저히 죽어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반봉혁 장로님은 할아버지 한 사람에게 전도하기 위해 말할 수 없는 수모는 물론이고, 똥물세례까지도 받았고, 더 나아가 무거운 가스통을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그 할아버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고생을 한 후에, 이를 악물로 참고 또 참은 후에야 비로소 그를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③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신부입니다. 교회라는 성전도 사랑하여 잘 보살펴야 하겠지만, 그보다도 교회의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들은 분쟁이 심합니다. 파가 갈라져서 싸웁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주도권을 잡았다고 해서 영광스러울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영광을 받으면 하나님으로부터도 영광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만 하면서 섬겨야 하고,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주님만 높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라크의 전쟁터에 나간 집사님이 있습니다. 나는 그분을 생각할 때에 죄송한 마음이 너무나 큽니다. 또한 이곳에 남아 있는 그의 부인과 자녀들을 볼 때에도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이 외롭고 쓸쓸할 때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지난 9월 마지막 주간에 제 아내가 일주일 간 뉴욕에 갔을 때에 우리 성도님들이 저에게 전화도 하고, 식사하러 같이 가지고 청하기도 하면서 혼자 있는 저를 위로해 주시느라고 애를 쓰셨던 것을 생각할 때에, 실은 나보다 열배 백배 더 외롭고 어려운 것은 전쟁터에 남편과 아버지를 보내고 이곳에 남아 있는 아내와 자녀들인데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는가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는 정말로 사랑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2)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늘의 보고가 열려야 합니다.
① 땅에 있는 보물도 물론 귀하지만, 우리는 하늘의 보물을 더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시 107:9)고 하였습니다. 사모하지 않으면 받지 못합니다. 땅의 보물보다도 하늘의 보물을 더 사모해야 합니다.
② 또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1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늘에 쌓아두면, 하나님은 그 창고에서 놀라운 보화를 내려주십니다.
③ 시편 42:1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하고는 이어서 2절에서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라고 하였습니다.
3)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으로 행해야 합니다.
① 성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선물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에서는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② 성령은 능력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셨습니다.
③ 성령에는 각종 은사가 따라오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우리 앞에 닥쳐온다고 해도,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2009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