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천국의 열매 맺는 백성
(마태복음 21:42-44)
(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본문 43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는 말씀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미 마태복음 8:12에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중에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하심으로 선민임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구원을 상실하였고, 오히려 믿음을 가진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 우리에게 꼭 있어야할 것이 세 가지인데, 첫째는 열매요, 둘째는 예복이요, 셋째는 등불입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는데 금년에 우리의 열매는 어떠한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처음 외칠 때에도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10)라고 경고하였고, 예수님도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시는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마 7:19)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저주하신 일 끝에 유대인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여러분들이 이 말씀에 대해 ‘아멘’ 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실 때에 이 광경을 보던 큰 무리의 예루살렘의 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따라오지 않았습니까? 그때에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라고 하시면서 장차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시고는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눅 23:27, 28,31)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열매 없는 백성들이 얼마나 큰 부끄러움과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인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1. 사도 바울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6:21에서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열매는 첫째는 헛된 것이고, 둘째는 부끄러운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 열매를 설명했습니다. 그가 설명한 열매들은 물론 자기가 맺은 열매들이기도 합니다.
1) 첫째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① 갈라디아서 5:22-23에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열매가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②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은사 다음에 따라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들을 설명하고, 13장에서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14장에서는 방언과 예언이라는 두 은사를 비교하면서 그런 은사들의 목적인 전도와 건덕(建德)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덕을 세운다는 것이 곧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③ 우리가 일단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성령을 따라서 살 것이냐, 아니면 여전히 육신을 따라서 살 것이냐?” 하는 문제는 항상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때에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온전히 성령을 따라서 살아감으로 비로소 성령의 열매는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 정욕을 따라서 살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도덕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아직 천국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 것 같아도 실은 모두가 외식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2) 바울은 또한 우리가 빛의 열매와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여 말했습니다.
①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이 세상은 너무도 어둡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살다보니까 분별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성도들이 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성도라고는 하면서도 빛을 받아본 일도 없어서 빛이 무엇인지조차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은 어둠이 아닙니까? 맛을 잃은 소금, 불이 꺼진 등불이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로 빛을 받았다면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② 빌립보서 1:11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9:10에서는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열매란 우리의 의로움으로부터 맺힌 열매들이겠지요. 그러나 실은 우리에게는 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를 받아서 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 184장 4절에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의는 예수님의 보혈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③ 빛과 의, 이 두 가지는 세상을 밝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입니다. 성도란 빛의 사람입니다. 의로운 백성입니다. 하늘의 생명 빛과 능력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3) 바울의 셋째 열매는 전도의 열매입니다.
① 그가 무엇을 위해서 평생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그는 자기의 사명을 잘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20:23-24,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는 위대한 선언에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이 복음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길로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왜 그토록 모진 고난을 다 받으면서도 그 길을 갔겠습니까?
② 사도들이 외친 가장 중요한 복음은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핵심에서 벗어나면 모두가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종교 다원주의라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아무 종교나 지향하는 것은 똑같으니까, 곧 모든 종교가 구원을 향하여 가고 있으니까 아무 것을 믿거나 구원을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외치니까 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외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오직 예수님만 전하였습니다.
③ 사도 바울을 통하여 얼마나 놀라운 열매가 많이 맺혔습니까? 그가 살아서 일하던 당시에만 해도 수많은 교회들을 세웠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며 살았고, 또한 그들이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가 남긴 성경을 통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2. 예수님은 어떤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1) 표적을 통한 전도의 열매입니다. 표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표적이 나타나야 완악한 사람들도 회개하고 변화 받게 됩니다. 그런데 표적이 없으면 능력도 없는 것이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기이한 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그토록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도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1-24). 그 실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에 “너희가 내 살을 먹어야 한다. 내 피를 마셔야 한다.”(요 6:54-56)라고 가르치시자, 유대인들은 잔뜩 의심을 품고는 다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은 모세 때에 출애급한 광야의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로 보아 우리 인간들은 표적만으로는 결코 바른 신앙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이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을 보시고 전도하신 것이 아니라, 이 소수의 사람들을 보시고 전도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통한 전도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① 말씀의 열매의 첫째는 회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의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빛을 받으면 사람들은 항상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 후에 빵을 얻어먹고도 의혹이 가득하여 무리는 다 떠나갔지만,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가 한 대답이 있었지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 6:68-69). 이렇게 갈라지는 역사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자리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를 보세요. 당신은 어느 편에 서 계십니까?
② 말씀의 열매의 둘째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바른 믿음이 생깁니다. 다른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하나님을 알게 되지 않고, 하나님을 믿게 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식이 많아지면 더욱 교만해질 뿐입니다(고전 8:1). 바울도 로마서 10:17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생기니까 기도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지리라.”(요 15:7)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이 생기면 구원을 받게 되고, 태산도 옮겨놓을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시험을 당한다고 해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게 됩니다.
③ 말씀의 셋째 열매는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사람들이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에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주님을 닮으려고 하지 않기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 받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변화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천국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④ 회개와 믿음과 거룩함,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맺히게 되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가득한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까?
3) 예수님은 제자 양성이라는 참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① 예수님은 겨우 3년 반 정도의 공생애를 사셨지만, 12명의 제자, 더 나아가 70명의 제자들을 기르셨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전도하여 구원받게 된 성도들을 가리켜 “너희는 나의 열매요(고전 16:15), 나의 면류관(빌 4:1)”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열매들이요, 예수님의 면류관입니다.
②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유한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제자들을 양성하셨습니다.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달은 세상 인간들은 자기의 재산과 명예와 권세를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실은 그 모든 것도 헛되지 않습니까?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고, 하늘나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③ 예수님은 누런 들판을 보시면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마 9:37)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미국에 일꾼이 너무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힘써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꾼들을 보내주십니다. 요한복음 14:13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3.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1) 예수님 자신이 열매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① 예수님을 열매라고 설명한 말씀들이 대표적으로 셋입니다. 첫째는 로마서 8:23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하면서 이 열매를 우리가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둘째는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20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선언하였고, 셋째로는 그 23절에서 부활의 차례를 설명하는 중에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될 것인데,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라는 설명에 나옵니다.
② 그러므로 이 첫 열매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여야 우리도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열매를 알아야 내 열매와 비교하면서 바르게 된 열매인지 잘못된 열매인지를 분별하게 되고, 나아가 좋은 열매인지 나쁜 열매인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③ 예수님이 바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이시니, 우리도 모두 성령으로 말미암은 열매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둘째, 셋째로 맺어진 열매들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이 철저히 성령으로 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아야 하고, 성령의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인데, 이 아홉 가지는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합하여 하나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이 모든 것이 맺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주 잘 익은 탐스러운 열매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아직 제대로 여물지 않은 열매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의 열매는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이왕이면 잘 익어서 맛이 좋은 열매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② 이 열매는 인격적인 것입니다. 참 믿음은 입술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행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약 2:26)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③ 이 열매는 자기 육성이 죽음으로 비로소 맺히게 됩니다. “한 알의 밀도 땅에 떨어져 죽어야지만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요 12:24) 것처럼, 우리의 육성도 죽어야지만 영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열매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들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라고 하였습니다.
3) 전도의 열매가 가득해야 합니다.
① 바울은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고전 9:16) 하였습니다. 자기의 사명에 대한 깊은 자각과 함께 항상 심판을 의식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② 바울은 전도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골로새교회에 편지할 때에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으로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라고 하였고, 또한 에베소교회에 성도들의 영적 무장을 설명한 후에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엡 6:19)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에게는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딤후 4:1-2)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도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큰 사역인 전도에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우리가 먼 곳에는 못 간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 건질 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찬송가 263장 2절에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이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 전하기에 더욱 힘써서 복된 추수 감사의 열매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4)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교훈 삼아 성공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실패는 곧 우리의 기회입니다.
① 이스라엘은 제1의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한 이방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주고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들 중 얼마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에 안주하려고 할 뿐, 이방에 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게 하셔서 그들은 모두 사방에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퍼져나가 자기들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②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들어올 때에 북한 땅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곳은 평양이었습니다. 1907년에 대부흥이 일어난 곳도 평양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해방 직후에 북한에는 교회가 2800개가 있었고, 남한에는 200개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남한에 교회를 세우려는 열정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북한에 무서운 박해가 일어나게 하셔서 남한으로 피난을 오게 하시고는 남한에 교회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교회들은 전세계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열심히 헌금하면서, 또는 청소년들이 단기 선교사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민족이나 나라가 없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기독교인들을 혐오하는 무리들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동성애자들을 혐오한다고 비판하지만 실은 기독교인들을 혐오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혐오범죄 방지법은 기독교인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③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10 이하에 기록된 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백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려는 열정을 가진 백성이 있습니다. 그 백성이 누구입니까? 사방 천지를 둘러보아도 우리나라 백성들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교만이 아닙니다. 사명입니다. 그래서 자랑스럽기 전에 먼저 그 짐이 무거운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면 큰 영광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큰 심판이 기다립니다.
하늘을 우러러보세요. 저 천국의 영광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 얼마 더 있지 않아서 우리 모두가 그곳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덧없는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지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가장 고상한 지식입니다.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있을 때에 우리는 분명히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더욱 힘써서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009년 1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