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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 사역자 과제

동방의 한 나라 (6) - 선민의 나라꽃

작성자은혜|작성시간20.07.04|조회수81 목록 댓글 0

6. 선민의 나라꽃

(아가 2:1-5)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1. 나라마다 나라꽃이 있습니다.

 

나라꽃은 그 나라, 그 민족의 표상입니다. 저마다 그 꽃을 기리고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갖는 상징성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우리나라의 꽃은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한 그대로 무궁화입니다. 무궁(無窮)이란 공간 또는 시간의 다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훈장 가운데 최고의 훈장이 바로 무궁화대훈장인데, 이것은 대통령과 배우자, 또는 우방국의 원수에게 수여될 수 있습니다.

혹시 다른 나라들의 꽃을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일본은 벚꽃이지요? 중국은? 매화입니다. 영국은 장미꽃이지요. 인도는 양귀비랍니다. 네델란드는 튜립이고요. 러시아는 해바라기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미국은 나라꽃이 없습니다. 대신에 주()마다 자기 주를 상징하는 꽃이 있답니다. 워싱턴 주의 꽃은 만병초’(Rhododendron)라고 합니다. 만병초(萬病草)란 모든 병을 고치는 풀이라는 뜻인데, 높고 추운 산꼭대기에서 자라는 늘푸른떨기나무로 잎은 고무나무 잎을 닮았고 꽃은 철쭉꽃을 닮았으며 하얗게 핀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병을 낫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약초로 사용됩니다.

선민이라는 이스라엘의 나라꽃은 무엇일까요? ‘올리브라고 합니다. 성경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 그대로 이스라엘은 감람나무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꽃보다 열매가 중요하지요.

오늘의 본문을 봅시다. 아가서는 그 이름이 우리말로 아가(雅歌)’라고 하니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Song of the songs’라고 합니다. ‘노래들 중의 노래입니다. 이 말은 왕들 중의 왕, 주님들 중의 주님이라는 표현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을 묘사한 말인데, 우리말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아가서는 노래들 중에 제일가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만왕의 왕이라고 하면 실은 예수님만이 왕이시고 다른 왕은 없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만주의 주도 똑같은 뜻이지요? “예수님만이 주님이시고 다른 주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가라는 말도 이 노래만이 참 노래이고, 다른 노래는 없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노래도 아닌 것들이 노래인 척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참 노래, 진짜 노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아가(雅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노래를 잘 배워야 합니다. 귀하게 알아야 합니다. 헛된 노래, 가짜 노래를 배우려고 애쓰지 말고, 진짜 노래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아가서는 굉장히 어려운 책입니다. 목사인 나도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입니다. 그래서 아마 계시록 14144,000명에 대한 설명을 시작할 때에 3절에서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라고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노래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에게는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그 많은 여자들을 다 똑같이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그 많은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을 받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바로 술람미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약에 오면 그 관계가 예수님과 그의 애인이 된 참 교회, 또는 참 성도와의 사랑 노래가 됩니다. 이왕이면 우리 교회가, 또한 우리들 각자가 술람미 여인과 같이 사랑을 받는 교회나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여하간 오늘은 좀 어려운 것 같아도 아가서 2장 첫머리의 말씀을 함께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절에서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라고 말합니다. 누가 한 말일까요?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가 자기를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았겠지요? 여자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2절은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남자의 말입니까, 여자의 말입니까? 남자가 분명하지요? 3절을 봅시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이것은 또 다시 여자의 말이지요?

이렇게 아가서는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설교는 아가서를 강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서에 나타난 샤론의 수선화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라고 하였습니다.

 

2. 그런데 그것이 무궁화와 무슨 상관이며, 우리에게 왜 중요합니까?

 

목사가 무궁화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문합니다. “무궁화가 우리의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성경 이야기를 해주세요.”라고요. 그런데 실은 무궁화가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꽃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꽃이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두 개의 꽃이 나옵니다. 첫째는 샤론의 수선화이고 둘째는 골짜기의 백합화입니다. 한국 성결교회의 마크는 이 백합화입니다. 2절에서 말하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입니다. 성결교회는 일제 침략이 시작되던 때와 같이하여 한국에서 1907년에 시작되었는데, 그 초창기부터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특히 일제 말엽에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폐쇄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른 교단들은 신사참배를 하기로 가결하기도 했고, 일제에 협조하여 교단이 폐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결교회의 고난은 더욱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 속에서도 다시 피어났다고 해서 지금도 이 백합화를 마크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하나의 꽃인 샤론의 수선화는 무엇일까요?

 

1) 무궁화는 아가서에 나오는 샤론의 수선화입니다.

아가서에 나오는 사론의 수선화골짜기의 백합화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 대하여 자신을 연약한 꽃에 비유한 노래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상한 이 꽃들은 신부가 신랑 앞에서 취해야 할 겸손과 온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선화라고 번역한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하바쩰레트입니다. ‘하바쩰레트라는 단어는 이사야 35:1에 한 번 더 나옵니다. 거기서는 장차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오르는 때가 온다.”고 하였는데, 여기의 백합화가 바로 하바쩰레트인 것입니다. 그런데 수선화에 해당하는 ‘daffodil’이나 ‘narcissus’를 히브리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바쩰레트가 아니라 나르키스’(נרקיס)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어의 하바쩰레트는 수선화도 백합화도 아니란 말이 됩니다. 따라서 지금의 어떤 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영어성경들은 본문의 사론의 수선화‘The Rose of Sharon’이라고 번역하였고, 미국 사람들은 무궁화를 ‘The Rose of Sharon’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샤론 평원에 핀 아름다운 꽃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의 경우는 잘 몰라도 영어권에서는 아가서 2:1에 나오는 샤론의 수선화가 바로 우리의 무궁화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지금도 샤론 평야에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느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샤론 평야에 늪이 많아서 수선화가 자라기에 적합하였고, 숲이 우거진 얕은 골짜기에서는 백합화가 자라기에 좋은 곳이었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던 이스라엘 땅이 일찍이 저주를 받아 황폐했었는데, 사람들의 노력으로 물을 끌어다가 평야를 개간했고, 오늘날은 꽃을 재배하여 수출하는 평야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샤론평야입니다. 그러니까 샤론 평야는 이스라엘의 모든 땅 중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이라 하겠습니다. 그 땅에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났습니다. 우리가 샤론의 꽃을 무궁화라고 고집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날 미국 사람들이 무궁화를 샤론의 장미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무궁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가 하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꽃이 바로 우리나라의 나라꽃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히 된 일이겠습니까? 이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궁화의 학명(學名)Hibiscus syriacus L.입니다. 여기서 Hibiscus라는 속명(屬名)의 어원은 Hibis(고대 이집트의 아름다운 신)+isco(유사하다)라는 뜻으로 즉 아름다운 신을 닮았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종명(種名)syriacus는 원산지가 중동의 시리아라는 뜻인데 시리아에는 무궁화가 없기 때문에 명명자가 잘못 붙였다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입니다.

또한 영명(英名)Rose of Sharon에서 샤론이란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땅을 일컫는 말로 신에게 바치고 싶은 꽃또는 성스러운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으로 대단히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중국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 ‘순 임금 순자를 써서 순화(舜花), 또는 순영(舜英)이라고 하는데, 역시 미모의 여인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로 대단히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2) 무궁화가 어떻게 우리나라의 나라꽃이 될 수 있었을까요?

나라마다 국화를 지정하게 된 배경은 다 다릅니다.

영국의 장미는 원래 왕실의 휘장(徽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반백성들이 장미를 사랑하며 가꾸게 되면서 서서히 영국의 국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스코틀랜드는 엉겅퀴가 국화인데, 엉겅퀴는 얼핏 보면 가시가 많은 보잘 것 없는 잡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깃들여 있습니다. 옛날 덴마크의 해적들이 몰래 침입을 하다가 엉겅퀴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해적이 쳐들어 온 것을 알고 재빨리 피난하여 모두가 무사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연유로 스코틀랜드는 엉겅퀴 꽃을 국화로 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은 센토레아를 국화로 삼고 있는데, 이는 독일 황제와 특별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좋아했던 목란(木蘭, 함박꽃나무)이 국화가 되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특별한 배경이 없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지정하게 된 것입니다. 매우 자연발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무궁화를 국화로 정하여 쓰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세기 중엽부터라고 합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왕실의 문장으로, 또는 훈장이나 화폐의 표상으로 널리 사용하면서부터라는 것입니다.

구한말 한국에서 20년 동안 살다가 간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풍류한국(風流韓國)’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세계 모든 나라의 꽃들은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나라꽃으로 정해졌으나, 한국은 황실의 이화(梨花: 배꽃)가 아닌 민중의 꽃, 국민의 꽃인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정해졌다.”라고 말했듯이 무궁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민들에 의해 나라꽃으로 정해진 꽃입니다. 또한 국가나 특권 계층, 한 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하며 국민 대다수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라꽃이 되어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중요합니다. 왕이나 왕실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서부터 저절로 한마음이 되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민주주의가 아닙니까? 또한 그렇게 정해지게 된 배후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역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나라꽃 무궁화(無窮花)1000년이 훨씬 넘는 오랜 동안 우리 민족의 얼과 혼 그 자체였습니다. 무궁화는 태고 단군조선이 세워지기 이전인 신시시대(神市時代) 환나라(桓國)의 나라꽃인 환화’(桓花)로 나타나 오늘날까지 오천년 동안을 배달겨레와 동고동락을 하며 자연스럽게 겨레의 꽃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단군께서 나라를 여실 때에 이미 목근화가 나왔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동방을 반드시 근역(槿域)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무궁화에 관한 오랜 기록은 동진(東晋)의 곽복이란 사람이 쓴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산해경]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군자의 나라란 우리나라를 뜻합니다. 또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도 군자의 나라의 지방은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기록에 의하면, 이미 1400여 년 전에 우리나라 전역에 무궁화가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 나라)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조선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3) 무궁화의 수난사

일제는 무궁화를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위험한 꽃으로 보고 민족문화 말살정책과 함께 모든 무궁화를 뽑고, 베어버리고, 그곳에 그들의 국화인 벚꽃을 심게 하였습니다.

3.1운동의 민족 대표 중 1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당시 쓴 무궁화를 심으과저라는 시에는 독립과 자유의 정신이 내재돼 있는데, 조국을 상실했음을 옛 나라로 묘사하고 달 속의 계수나무를 베어내고 무궁화를 심겠다.”는 내용의 시는 감옥에 갇혀 있다 해도 조국의 광복에 대한 의지는 결코 변치 않을 것을 표출한 시()였습니다. 이 외에도 무궁화동산이란 시를 쓴 남궁억 선생은 말년에 모곡에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힘쓰는 한편 무궁화 묘포를 만들어 전국에 무궁화를 보급하는 등 무궁화를 통한 독립운동에 매진했습니다. , 어린이들에게 무궁화 노래를 부르게 해 망국의 좌절을 딛고 광복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굳은 희망과 의지를 인식하게 해주었습니다. 이같이 무궁화는 우리나라에 대한 변치 않는 충심을 표현하는 시적 상징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제의 무궁화 짓밟기는 계속되었고 그 자리에 사쿠라(벚꽃)가 판쳤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의 이른 바 무궁화동산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으로 남궁억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이 모진 수모와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무궁화를 우리의 표상으로 내세우자 일제는 한반도 전역의 무궁화를 뽑아 불태워버리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무궁화의 꽃말에 함축돼 있는 것처럼 무궁, 즉 영원이라는 의미와 지고 지고 또 지어도 피고 피고 또 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 일편단심과 지조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조상, 선구자들은 피를 흘리면서 온 몸으로 부르짖었습니다.

 

3. 무궁화의 특징과 우리의 신앙

1) 무궁화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며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고 번식해 나갑니다. 이러한 완강한 자생력이, 우연히 우리 민족의 기나긴 역사 속에 괴어 있는 맥과 얼에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趙潤濟 선생님은 혼돈광막(渾沌廣漠)한 것이 중국 문학의 특성이고, 유머러스한 것이 영국 문학의 특성이고, 담박경쾌(淡泊輕快)한 것이 일본 문학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한국인과 한국문학의 특질은 은근과 끈기라고 하면서 우리 민족은 아시아 대륙의 동북 지방, 산 많고 들 적은 조그마한 반도에 자리 잡아, 끊임없는 대륙 민족의 중압(重壓)을 받아 가면서 살아 나와서, 물질적 생활은 유족(裕足)하지를 못하였고, 정신적 생활은 명랑하지를 못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은근하고 끈기 있는 문학과 예술 내지는 생활을 형성하여 왔다. 그것의 호불호(好不好)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과거의 전통이었고, 또한 운명(運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 나왔고, 그렇게 살아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사는 데 한국의 생활이 건설되어 가고, 또 거기서 참다운 한국의 예술과 문학이 생생하게 자라나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무궁화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약 100일 동안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낱개의 꽃은 이른 새벽에 피고 저녁에 지기 때문에 날마다 신선함을 느끼게 합니다. 며칠이 지나면 먼저 핀 꽃은 떨어지고 새로운 꽃이 그 뒤를 이어 피어납니다. 이처럼 꽃과 꽃이 끝없이 이어 피는 꽃이란 뜻에서 무궁화라고 합니다.

다른 꽃나무에 비해 병이 거의 없어 강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꽃이 떨어져도 다시 피어나기를 반복해 불굴의 정신을 나타냅니다.

1928년 발행된 <별건곤> 32호에 게재된 <조선산 화초와 동물>편에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는 꽃으로 개화기가 무궁하다 아니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이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 있고 결백함은 실로 민족성을 그려 내었다. 한국을 막론하고 각 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같이 형으로나 질로나 적합한 것은 볼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이 많이 심고 가꾸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새벽에 꽃이 피었다가 오후에는 오므라들기 시작하고 해질 무렵에는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보통 작은 나무는 하루에 20여 송이, 큰 나무는 50여 송이의 꽃이 피고, 꽃피는 기간은 100여 일. 그러므로 한 해에 20005000여 송이의 꽃이 피는 셈입니다. 이처럼 매일 새로운 꽃이 연속적으로 피는 것이 무궁화 특유의 개화습성입니다.

무궁화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지는 것은 하루살이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나무 전체로는 끊임없이 피고 지는 무궁한 영화의 나무로서 나라의 꽃으로 삼은 한국인의 종교적인 심성이 깃들어져 있습니다.

무궁화는 태양과 함께 피고 태양과 함께 집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4. 선민은 그리스도의 무궁화입니다.

1) 무궁화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치스럽지 않은 것에 있고, 이것이 한국인의 심성을 대변합니다. 아가서를 시작하는 1:5에서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라고 노래합니다. 이 말은 화려함이나 남자의 눈에 번쩍 뜨이는 아름다움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겉에 있지 않고 속에 있었습니다. 사귈수록 더욱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선민은 고난과 박해를 이겨야 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등의 족장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도 얼마나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고난이 없고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기도 주님이 지워주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3) 선민은 그리스도만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무궁화가 그렇지 않습니까? 새벽 해가 뜰 때 피었다가, 저녁에 해가 지면 이 꽃도 집니다. 그러나 여름 내내 피고 지기를 계속합니다. 해바라기는 러시아의 나라꽃입니다.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고 따라간다는 것은 좋은데, 저녁에 해가 졌다고 해서 꽃도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무궁화와 다릅니다. 무궁화는 꽃이 지고 새벽에 새로운 꽃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진짜 선민의 모습입니다. 항상 부활의 소망과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4) 무궁화가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이동로에 많이 자라는 이유는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무궁화를 가까이하였다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우리 한민족은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5) 지구상에서 국가(國歌)하나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고, 예수님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꽃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가진 나라는 오직 동방의 대한민국뿐입니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꽃이십니다. 무궁한 꽃이십니다. 지고 지고 또 지는 것 같아도, 이튿날이면 새롭게 피어나는 영원한 꽃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듯이 무궁화를 사랑합니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욕심도 흉계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꽃을 사랑할수록 우리 마음은 더욱 순수해지지 않습니까? 이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통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무궁화 꽃이 활짝 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이 사랑의 꽃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200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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