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열납되는 예배(김셀라)
창세기 4장은 역사에서 최초의 예배 이야기이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영향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결국 형이 동생을 죽이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가인은 이것에 분노해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나는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예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을까? 하나님은 재물만 보신 것이 아니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보신것이다. 하나님은 예배자의 중심을 보신다. 아벨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장 좋은 것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다. 그 제사에는 진정한 헌신과 사랑이 없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사람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삶에서 순종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를 받기 싫다고 하셨다. 사람의 종교행위보다 순종을 원하신다. 진정한 예배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로마서 12장 1절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영적 예배인 것이다. 가인은 자신의 행동을 회개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가인의 행동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야 한다.
18. 기독자의 온전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과연 사람이 온전해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람은 모두 연약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이 너무 어려운 기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기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참된 생명과 거룩함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이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온전하라" 라는 것은 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겉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사람은 연약하다. 중요한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죄와 싸워야 한다. 성령의 도움으로 회개해야 한다.
19. 조국 통일의 환상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시며 갈라진 민족을 다시 하나 되게 하시겠다고 선언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나라였지만 솔로몬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고, 결국 둘 다 멸망하고 말았다. 인간은 갈라놓지만 하나님은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다. 죄는 분열, 다툼을 만들며, 나라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회복시키시는 분이다. 한국도 북과 남이 갈라져 있지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볼 때 전쟁이 일어날까 두렵고 경제가 무더질까 두렵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한다. 그러나 세상을 주관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에스겔 시대에도 나라가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회복의 계획을 갖고 계셨다. 진정한 통일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열정만 갖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북한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되며 억눌린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나라의 통일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우리의 영적인 회복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말씀으로 돌아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민족을 회복시키시고, 교회도 회복시키시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실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0. 세 인종의 미래
에녹과 노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여호수아와 다윗과 다니엘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가,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얼만큼 오래 다녔는가, 어떤 직분을 맡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함을 지키는 자들을 사용하신다.
노아의 아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덮어주지 않고 오히려 형들에게 떠벌렸다. 하나님은 허물을 덮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허물을 들추어내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교회 안에서 남의 흉을 보고, 허물을 퍼뜨리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복된 사람이 될 수 없다. 노아의 다른 아들 야벳은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드렸다. 우리는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노아는 세 아들에게 각각 다른 선언을 한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고 야벳은 창대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셈이 복을 받았다는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은 친히 “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영적인 언약의 계보가 셈을 통해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도 셈의 계보에서 나오고 이스라엘 민족도 셈의 계보이다. 예수님도 셈의 후손으로 오신다. 진짜 축복은 물질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가나안은 저주를 받았지만, 왜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하고 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장 비옥한 땅인데 하나님은 왜 저주받은 족속에게 그런 땅을 허락하셨나? 여기에는 중요한 영적 원리는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참된 축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 많고, 편안하고, 성공하는 것을 복으로 여기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때로는 어려움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게 하기 위한 것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진정한 복은 세상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