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렘 17:1)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Judah's sin is engraved with an iron tool, inscribed with a flint point, on the tablets of their hearts and on the horns of their altars.”
☞ (렘 17:1) 우리의 죄가 새겨진 두 곳
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고 했다. 아무도 안 듣는 것 같아도 누군가가 다 듣고 있고,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도 누군가가 다 알고 있다. 예수님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 12:2-3)라고 하셨다.
② 세상 재판도 증거가 분명해야 유죄가 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증거도 없이 심판을 하시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우리의 죄의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죄를 두 곳에 기록해 놓으셨다. 하나는 하늘에, 또 하나는 땅에다.
③ 우리의 죄가 하늘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할까?
a. ‘생명책’ 외에 소위 ‘행위책들’이라는 곳이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books)이 펴 있고 또 다른 책(another book)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the book of life)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books)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라고 하였다.
b. ‘단 뿔’이다. 단 뿔도 두 곳이다. 첫째는 성소 바깥에 있는 번제단의 단뿔이고, 둘째는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또는 향단)의 단뿔이다.
제사장이 죄를 지어서 속죄제를 드릴 때와 회중 전체가 죄를 지어 속죄제를 드릴 때에는 “제사장이 제물인 수송아지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발라서 죄를 지우고, 그 송아지의 남은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했다(레 4:5-7; 16-17).
c. 족장이나 평민이 속죄제를 드릴 때에는 죄인이 가져온 숫염소(족장의 경우)나 암염소(평민의 경우)를 죄인인 본인이 죽인 후에 그 염소의 피를 제사장이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발라서 죄를 지우고, 그의 남은 피 전부는 번제단 밑에 쏟는다(레 4:24-25,33-34).
④ 우리의 죄가 땅에서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할까?
a. (렘 17:1) 각자의 마음 판에 새겨져 있다. 만일 육신에만 새겨져 있다면 육신의 한 부분이 훼손을 당하면 그의 죄의 기록이 훼손되어 증거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자기들의 죄를 새겨놓으셨기에 그가 사는 동안 자기의 죄를 잊어버릴 수가 없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에 죄를 부인하지 못한다. 나아가 죄책감으로 인해 평생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을 마음에 발라서 죄를 지우면 드디어 양심이 해방을 받고, 하나님을 찾아가게 된다. 죄는 죄책감을 일으키고, 양심에 가책을 주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담도 하나님의 기척을 느끼자 곧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 3:8). 그의 마음에 죄가 이미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b. 죄는 신체에도 새겨진다. 관상(觀相), 수상(手相), 족상(足相) 등은 물론이고, 온몸에 우리의 삶의 족적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전문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니라도 인상(印象)만 보고도 상대를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100%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링컨 대통령은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다.
⑤ 모든 종교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해결이 불가능했는데, 그 많은 종교인들과 성현(聖賢)이라는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니, 이 비밀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우리 죄의 깊이를 깨달아 절망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가 깨달아지며, 그의 보혈이 얼마나 보배로운지를 알게 되어 그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