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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옵 1:6-7) 에돔의 죄와 심판

작성자은혜|작성시간21.04.13|조회수42 목록 댓글 0

(345) (옵 1:6-7)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But how Esau will be ransacked, his hidden treasures pillaged! All your allies will force you to the border; your friends will deceive and overpower you; those who eat your bread will set a trap for you, but you will not detect it.

☞ (옵 1:6-7) 에돔의 죄와 심판
① 오바댜서는 단 한 장으로 되어 있는 책이다. 신약엔 1장으로 된 책이 빌레몬, 요한 2서, 3서, 유다서 등 네 권이나 되는데, 구약엔 오바댜서뿐이다. 오바댜서는 에돔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에돔의 죄는 무엇인가? 중요하게 세 가지다.

 

② 교만 –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하니,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4절).
교만의 근본은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독재자들이 나온다. 남과 비교하여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교만해지고 남을 멸시하며, 잘난 자를 질투하고 깎아내리며 저주한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나의 뜻대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하다. 추락한다. 조롱거리가 된다. 파멸한다. 우리가 이것을 이겨야 한다. 

 

③ 야곱에 대한 포학 –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10절).
야곱은 에서가 궁핍할 때에 팥죽 한 그릇에 그가 가졌던 장자권을 샀다. 우리는 야곱이 잘못한 것이라고 정죄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서가 망령된 자라고 정죄하신다(히 12:16).
하나님은 당신의 보물을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는다.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고 사모할 줄도 모르며, 이미 주셨어도 잘 간직하고 사용할 줄을 모른다면 하나님이 그냥 두시겠는가? 그로부터 빼앗아 적임자를 찾아서 맡기실 것이다. 또한 값진 보물을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자기 몸이나 그 보물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당신은 천국 보물의 가치를 아는가?
에서는 자기가 잘못해 놓고는 오히려 야곱을 원망하고 미워했다.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을 야곱이 빼앗아갔다고 해서 두고두고 원수로 삼고 죽이려고 하였다. 악인은 아담이나 가인처럼 회개하지 않는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는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더욱 원수가 된다. 그런 자들은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욱 불행한 것이다.

 

④ 약탈 –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13절)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어 나왔다. 그 날에 에돔은 야곱의 성문에 들어갔고, 야곱의 고난을 방관하였으며, 야곱의 재물에 손을 대었다.
야곱이 환난을 당하면 에돔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도와야 하지 않을까? 또한 자기도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회개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에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형제의 고난은 나의 행복이다. 형제의 환난은 내가 그의 재물을 약탈할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야곱의 성문에 들어가 야곱의 고난을 방관하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약탈을 자행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약탈을 부른다. 잠깐 더 살다가 가는 인생인데 왜 이렇게 욕심을 부릴까? 주님은 의식주 문제에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시건만, 인간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더욱 많이 쌓아놓아야 안심이 될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근심이 더욱 커진다. 천석꾼 천 가지 걱정, 만석꾼 만 가지 걱정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롬 8:7). 헛된 욕심을 버려야 안심과 행복이 온다.

 

⑤ 형제가 형제 되지 못하고 어쩌다가 이렇게 원수가 되었는가? 집안이 가난하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하는데, 부유해지면 거짓된 효도를 하게 되고, 형제간에도 원수가 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성경이 가르쳐주는 진실이다. 그러나 시편 133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 하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시작하여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영생은 형제화목에서 온다. 화목해야 성전에 올라간다.

 

⑥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오셨다.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목, 형제와 형제 사이의 화목, 나아가 인간과 자연만물과의 화목이다. 로마서 8:22-26에는 ‘3대 탄식’이 나온다. 피조물이 모두 탄식한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도 속으로 탄식한다. 성령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이 탄식소리를 들어야 한다. 탄식을 감사로 바꾸자.

 

⑦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고,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와 계시면서 탄식하신다. 죄를 깨닫게 하신다. 회개하게 하신다. 기도하게 하신다. 구하는 바를 다 이루어주신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과 동행하게 하신다. 아무쪼록 에돔의 악행이 반면교사가 되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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