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욘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져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Pick me up and throw me into the sea,” he replied, “and it will become calm. I know that it is my fault that this great storm has come upon you.”
☞ (욘 1:12) 나를 들어 바다에 던져라.
① 하나님이 왜 요나 같은 사람을 선지자로 쓰셨을까? 명령을 받았어도 아브라함같이 순종하지 않고 슬그머니 뺑소니를 친 사람,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자 오히려 분노하여 불평했던 사람, 박넝쿨이 말라죽자 하나님께 항의했던 사람, 하나님이 어찌 이런 사람을 쓰셨을까?
②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며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에게 뽑혔다. 그래서 무리가 요나에게 “이 재앙이 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를 말하라.”라고 다그쳤다. 만일 내가 제비에 뽑혀서 이런 추궁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a. 제비뽑기로 범인을 찾아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고 우선 거절할 것이다.
b. 이런 재앙을 불러올 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할 것이다.
c. 재앙을 죄와 연결시켜 범인을 찾으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고 저항할 것이다.
③ 요나는 도망은 가고 있었지만 계속하여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있었다. 그는 솔직하게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태풍이 분 것이라고 인정했다. 심지어 자기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고백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싫어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죄를 지었음을 그들에게 말하였다. 더 나아가 바다를 잔잔케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바다에 던져버리는 수밖에는 없다고 했다. 이것은 선원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했을 것이다.
④ 요나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솔직함과 순진함을 사랑하셨다. 특히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시면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요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예수님은 장차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라고 선포하셨다(마 12:41; 눅 11:32). 이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듣기 싫어하는 말인가?
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망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도록 회개시키라고 하셨다. 이왕이면 니느웨를 사랑하는 사람을 선지자로 보내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요나가 가진 생각, 곧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그 생각을 고쳐주시려고 했다. 우리가 내 생각을 주님께 강요하지 말고, 겸손히 주님의 뜻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⑥ 하나님은 요나를 사랑하셨다.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면서 마지못해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모두 철저히 회개하도록 역사하셨다. 요나는 차라리 죽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사흘이나 있었어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요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자기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예수님도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42; 막 14:36; 눅 22:42)라고 하셨다.
⑦ 하나님은 자연만물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신다. 우리가 세미하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깊이 깨달아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라고 말씀하셨다. 이 가르치심을 사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