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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6:8) 선한 것이 무엇인가?

작성자은혜|작성시간21.04.18|조회수104 목록 댓글 0

(350)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He has showed you,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 (미 6:8) 선한 것이 무엇인가?
①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 19:16-17)라고 하셨다. 그런데 마가와 누가에는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 10:17; 눅 18:18)라고 하였다. 이때의 ‘선한’은 헬라어로 ‘아가쏘스’다.

 

② 또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요 10:11,14)라고 하셨다. “선한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하신 말씀과 충돌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때의 ‘선한’은 헬라어로 ‘칼로스’다. 일반적으로 ‘아가쏘스’는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뜻하고, ‘칼로스’는 심미적으로도 선한 것을 뜻한다고 한다. 예수님이 양(羊)인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모습은 보기에도 너무나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가쏘스’로 질문하니까 예수님이 도덕적 완전성으로 설명하신 것 같다.

 

③ 미가서 6:8의 ‘선한 것’은 헬라어로는 ‘아가쏘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미가는 이 말을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a. ‘오직 정의를 행하며’ - KJV에는 ‘but to do justly’라고 하였다. ‘오직’이라고 번역한 말은 영어의 ‘not A but B’의 not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번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정판에서는 조금 바로잡기는 했지만, 개역성경에서는 때마다 거의 모두 ‘오직’이라고 하여 ‘only’로 오해하기 쉽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첫째는 ‘정의를 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의인’을 찾고 계신다. 그러나 온전한 의인은 하나도 없다. 로마서 3:10-12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시편 14:2과 53:2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인간 중에는 의인이 없다. 오직 한 분,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주실 때에 비로소 의인이 된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으로 인해 그의 의를 우리에게 접붙임하는 것이다(롬 11:17-24).

 

b.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은 ‘人子’ 곧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본문의 ‘인자’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영어로는 ‘mercy’라고 했다. 우리말 성경에 ‘자비, 긍휼’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특히 병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할 때(마 9:27; 15:22; 17:15; 20:30 등)에와 예수님이 먼저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셨을 때(마 9:36; 14:14 등)에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인자’란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우리가 남을 인자하게 여기려면, 먼저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우리 자신들 속에는 ‘인자’가 없다. 물론 ‘의로움’이나 ‘사랑’도 없다. 먼저 이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여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먼저 자기에게도 사랑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곧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다. 인자는 주님께만 있다. 그러므로 먼저 주님께 나아가 인자를 구하고 또한 반드시 받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는 인자를 남에게 주려고 하면 그가 바로 위선자요, 따라서 반드시 실패자가 된다. 혹시 자기는 인자가 많아서 남에게 주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 될 것이다.

 

c.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곧 ‘임마누엘’이요, ‘복음’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행하려면 반드시 주님의 성품을 닮아 ‘겸손’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이란 사람들 관계에서의 용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용어다. 전지전능하신 분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만 겸손이 온다. 하나님을 만남이 없이 사람들과 자기를 비교하면 안 된다. 그때에는 반드시 교만이 온다.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척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 자기를 속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위선(僞善)이요, 가장 큰 교만(驕慢)이다.

 

④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선하다. 그런데 그 선하신 분이 나에게 ‘선한 길’을 가라고 하신다. 그 해결책을 내 속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이것이 그리스도의 겸손이요, 하나님의 겸손이다.

 

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는가? 먼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맘에 오셔야 한다. 다음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늘 바라보면서 주님을 닮아가기를 사모하면서 성경을 열심히 배우면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 생활이 오래 계속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겸손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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