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 (슥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What are you, O mighty mountain? Before Zerubbabel you will become level ground. Then he will bring out the capstone to shouts of ‘God bless it! God bless it!’”
☞ (슥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① 성경에서 산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a. 성경엔 유명한 산들이 많이 나온다. 아라랏산, 모리아산, 호렙산, 시온산, 갈멜산, 팔복산, 변화산 등이 나오는데, 모두 영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b. 공자는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라 하였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니, 어짐(仁)이란 고요하고(靜) 지혜(智)란 움직이는(動) 것이어서, 거기에 즐거움(樂)과 생존(壽)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c. 예수님은 자주 산을 찾으셨고, 기도의 처소, 곧 하나님과의 교통의 처소로 사용하셨다. ddl는 마치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올리셔서 온갖 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셨음과 같다.
d. 본문에 나오는 산은 우리 인생길에 가로놓인 온갖 장애물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당장 스룹바벨 앞에 놓인 것은 성전건축의 문제였다. 엄청난 장애가 있어서 무려 50년이나 중지하며 쉬고 있었다. 그동안에 진실한 성도들의 기도가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기도의 분량이 어느 정도 차게 되니까 드디어 하나님이 이 큰 사역을 마무리해 주신다.
②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의 북산에 살고 있던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태행(太行)과 왕옥(王屋)이라는 두 산맥의 높은 산에 가로막혀 왕래함에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두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둘레가 700리에 달하는 큰 산맥의 흙을 퍼 담아서 왕복하는 데 1년이 걸리는 발해만(渤海灣)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하는 우공(愚公)의 모습을 보고, 친구 지수(智叟)가 그만둘 것을 권유하자 우공(愚公)이 말했다. (愚는 ‘어리석을 우’다. 인간들이 보는 어리석음과 하나님이 보시는 어리석음은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그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산은 불어나지 않을 것이니, 대를 이어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산이 깎여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 산신령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들은 옥황상제가 두 산을 멀리 옮겨주어 노인의 뜻은 성취되었다. 1년 동안 묵묵히 산을 옮긴 우공의 노력과 믿음, 끊임없는 열정이 옥황상제를 감응시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성취시킨 것이다.
③ 성경은 우리가 산(山)‘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a. (사 40:9a)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는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한다.
b. (사 41:15)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가 되어,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고 작은 산들을 겨같이 만들어야 한다.
c. (마 17:20)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에게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산을 옮기는 믿음(고전 13:2)을 갖자.
d. 예수님은 십자가를 달게 지시고 골고다 산 위에서 못박혀 죽으셨다. 산을 옮기는 기적만 바라지 말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교의 자리에도 나아가야 한다.
④ 우리도 큰 산을 향하여 외쳐보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우한폐렴, 코로나19야, 네가 무엇이냐?” 온 세상이 벌벌 떨고 있지만, 우리는 당당히 외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네가 내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⑤ 우리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머릿돌을 내놓자. 그때에 ‘은총, 은총’이 임한다. 출애급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에는 하나님이 먼저 바람을 일으켜서 바다를 갈라놓으신 후에 건너가게 하셨지만,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언약궤를 어깨에 맨 제사장들이 믿음으로 강에 들어갈 때에 강이 척척 갈라지면서 육지로 건너가게 하셨다. 베드로가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는 바다에 퐁당 빠졌지만, 주님만 바라볼 때에는 물 위로도 걸어갈 수 있었다.
은총을 받아야 한다. 은총으로 행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때에 만인이 하나님의 은총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오늘의 목사들이 믿음이 없어서 신도들이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부끄러움을 알고 회개하여 은혜를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