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일 동안 딸 가족과 아들 내외가 와서 같이 지냈는데 딸은 이곳 지역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친구와 두 살 난 아기까지 데리고 와서 딸의 1살, 4살, 6살 아기들 네 명과 사위와 막 임신한 며느리에게 식사를 만들어 주고 돌보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방이 부족하여 아래층 응접실에서 이불을 바닥에 깔고 자야했고 네 아이들이 집안을 뛰어 다니며 이것저것을 깨고 부수고 잠시도 조용한 시간이 없었다. 나는 서투른 음식솜씨를 발휘하여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려고 애썼고 설거지하느라고 힘들었고 장도 수시로 보았다.
억지로 시간을 내어 컴퓨터 앞에 앉으려고 하면 “엄마 아기 자야 해요.”하면 얼른 자리를 내 주어야 했고 모두 인터넷을 하느라고 컴퓨터가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도대체 컴퓨터를 만져 볼 시간이 없다.
세 아이들이 다 떠나고 남편과 둘이 살면서 큰 딸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 같이 살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같이 살면 내 시간이 너무 없고 힘들 것 같아서 그냥 가까운 곳에 큰 집을 사서 이사 오기로 했는데 너무 잘한 것 같다.
“엄마, 우리 아이들이 다 크면 그때에는 같이 살아요.” “내가 늙어서 아무 일도 못하고 네가 나를 돌보아 주어야 해도 그럴래?”라고 하니 “엄마하고 같이 살면 기도해주고 좋지.”라고 한다.
87세의 어머니께서 노인아파트에 홀로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바쁜 자식들이 잘 모시지 못한 것이 새삼 가슴 아프다. 내 노후도 바쁜 자식들에게 결코 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고 있는데 아직은 내가 저들을 위해 이렇게 수고할 수가 있어서 기쁘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다 떠나갔고 집은 전쟁터처럼 엉망진창이다. 아이들이 있을 동안은 어차피 어질러 놓을 것이니 그냥 내버려두어서 집안에 빈 구석이 없을 지경이었고 그것들을 하루 종일 치우는데 너무나 힘들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니 너무나 기분이 상쾌하고 “오 이 자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물건들을 정리해 놓으면 그대로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심이 되면서 자식들이 직장에 가고 손자들을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신학생과 결혼하고 세 아이들을 낳으면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아이들을 길러주신 어머니의 고생이 얼마나 크셨을까 새삼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다시금 개구쟁이 아이들이 눈에 아롱거리고 보고 싶어지고 이 자유를 반납하고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래! 그 개구쟁이들을 또 만날 때까지는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리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면서 자유를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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