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그리스 여행 마지막 날들(11/11-13/2004)

작성자은혜|작성시간07.03.24|조회수199 목록 댓글 0
 

11월 11일(목)

   6시   : 호텔 출발 - 공항으로

7시 20분 : 아테네 공항도착

9시 5분  : 비행기출발 - 데살로니까로

10시30분 : 데살로니까 도착 버스로 출발


*** 목사님 간증 : 어제 다쳐서 병원에 가서 머리를 네 바늘 꿰매었는데 크레딧 카드로 지불하려니 안 된다고 해서 달러로 하려고 하니 또 안 되고 유로로만 내야 한다고 해서 유로가 없어서 서너 시간을 낭비하고 같이 간 분이 유로로 대신 지불하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고 간증을 하셨다. 병원 비용은 굉장히 쌌다. 밧모섬에서는 밤에 배를 기다리며 차를 한잔 사 먹으려고 해도 유로가 아니면 안 판다고 해서 따끈한 차 한잔을 못 마셨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교만하고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는데 선교사님 간증도 같았다.


데살로니가(행 17:1-9) : 그리스 북부지방으로 현재 그리스의 제2의 도시이고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의 거리이다. 인구 75만 명 정도의 항구도시이며 상공업도시로서 비잔틴 시대의 이스탄불과 나란히 그리스 본토의 정치, 문화,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교역량이 많고 교통의 요충지로서 대학과 비잔틴 박물관이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3장에 사도 바울이 비교적 이곳에 오래 머물며(서너 달 이상) 천막을 만들며 주야로 복음을 전파하였고 크게 성공하여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만 아니라 각처에 퍼져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사도 바울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고(살전 2:19) 하였다.


암비볼리 : 초대 기독교 시대의 기념물 중 바닥이 모자이크 처리된 건물 터 및 기독 공회당, 교회의 터가 남아있는 기독교의 중심지로서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아볼로니아 : 큰 나무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고 넓은 공간을 비마(馬) 터라고 하며 사도행전 17장 1절 말씀이 석판에 기록되어 있다.


성 디미뜨리오스 교회 : 디미뜨리오스는 귀족의 가정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로마군인으로 근무하였는데, 그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과 겸손, 검소함, 지혜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갈레리우스 황제에 의해 순교한 후에 이 지방의 수호 성인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의 무덤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이 병자들을 치료하는 기적이 일어남으로 성전을 더 크게 지었으나 화재와 터키의 침략으로 많은 유물들이 유실되고 회교사원도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복구되어 바실리카 양식의 그리스 최대의 교회가 되었다.


화이트 타워 : 부ent가에 높이 32m의 이 탑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인들이 세운 방벽의 일부로 터키 점령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어 대량학살이 자행되어 ‘피로 물든 탑’이라고도 불렸는데 후에 표면을 하얗게 칠하고 비잔틴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지금은 근처의 새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주위를 공원으로 정비하여 시민의 휴식처로 관광명소로 세계에 알려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 아름다운 바닷가 광장에 세워진 청동상이다.


갈레리우스 황제의 개선문 : 페르시아 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로마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297년에 세워진 문이다. 이 개선문의 표면에 희생제사 및 갈레리우스의 전투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까발라(네압볼리 행 16:11) : 터키 국경인 압살라에서 서쪽으로 2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시내 중심에 사도 바울 도착 기념 교회가 있다. 밤에 도착했는데도 길가에 화려한 벽화가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는데(불빛이 환하므로) 그 벽화는 최근의 것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이 자는 모습, 천사가 나타나서 꿈에 말하는 모습,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는 모습으로 세 부분으로 그려져 있었다. 모두 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 교회에서 해마다 6월 29일 사도 바울을 기념하고 있고 아름다운 바닷가 도로의 이름은 ‘바울로’라고 하며 사도 바울을 존경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밤이 늦어 성당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11월 12일 (금)

7시 30분 : 호텔 출발 - 비아 에그나띠아(도로 이름)를 달려서 빌립보를 향하다.

아침에 집시들을 위해 가지고 왔던 옷들을 주고 가시라는 목사님 말씀에 이번 여행에 우리 내외가 똑 같은 하얀색 잠바를 사 입고 온 것과 입지 않은 새 티셔츠와 쓰지 않은 로션을 드리고 금일봉을 선교비로 헌금하면서 전도할 수 없는 오만한 이 정교회 나라에서 참으로 고생하시는 귀하고 훌륭한 목사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아 에그나띠아 : 무역과 군사용 목적으로 건설되었고 이스탄불에서 로마까지 연결된 길로 사도 바울은 이 길을 따라 빌립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까, 베뢰아를 순회하며 초대교회를 세웠다.


빌립보(행 16:12-18) : 까발라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바울이 안식일에 문밖 강가에서 루디아를 만나 첫 유럽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곳이다.


루디아 기념교회(행 16:14-15) : 문 밖 강가의 세례 터가 있었는데 아주 작은 샘이었다. 중앙에 루디아 기념 성화가 있었고 그리스인들이 성호를 그으며 입을 맞추고 우리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행 16: 30-34) :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두 사람이 감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 부를 때 감옥 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릴 때 자결하려는 간수를 만류하여 구원받게 하는 그 옛날의 기적을 생각하며 모두 초라한 돌로 된 무너진 감옥을 사모하며 사진을 찍었다.


공회당B :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후, 비잔틴 시대의 전성기에 둥근 아치의 돔 형식(십자가형의 비잔틴형식)으로 이스탄불의 쏘피아 성전보다 더 거대하게 건축되었으나 9세기 불가리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현재는 기둥 세 개만 남았다.


공회당A : 술과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전이었으나 후에 기독교인들이 3층 규모로 교회를 건축하였고 성찬 식탁과 침례터가 있었으나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12시 30분에 그리스와 터키 국경인 압살라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마치니 오후 2시가 되었다. 마중 나오신 최 장로님을 만나 버스를 옮겨 타고 테킬라를 거쳐 프린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시 태극식당에 가서 푸짐한 한식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11월 13일 (토)

공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모두 시간에 쫓겨 아우성을 쳤고 몸수색을 몇 번씩이나 했다. 철저히 하는 것은 좋은데 지금 비수기에 이렇게 복잡하면 한 창 바쁠 때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더 시설과 인원을 늘려야 할 것이다. 1시간쯤 늦게 떠났는데도 뉴욕 공항에는 정시에 도착을 했다. 조종사가 기술이 좋아서 비행을 빨리 했는가?

 

  NKPC 다문화목회연구회 10주년 행사로 터키, 밧모섬, 그리스를 13일 동안 저렴한 비용으로 참으로 유익하고 감명 깊은 잊지 못할 성지 순례를 하였다.

  노트 한 권에 쓴 여행 기록들을 컴퓨터에 정리하며 다시 새롭게 은혜를 받는다.

  사도 바울, 요한, 디모데 그 외에도 주님의 많은 제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하며 그 흔적들을 돌아보았는데 어찌하여 그 땅들이 그렇게 이슬람교도들의 통치하에 억압받고 있는지 안타깝고,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순례로 그들이 먹고살고 있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다소에 있는 사도 바울이 태어난 집에 버스를 타고 많은 시간을 걸려 찾아갔다. 지진으로 땅에 묻혔다가 발굴하여 위에 유리로 덮어놓은 보잘것없는 집이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며 사모하는 목회자들이었다. 그때 마침 한 떼의 제복을 입은 귀여운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교사들의 인솔하에 이곳에 들러 터키 아가씨의 설명을 듣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가씨가 사도 바울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설명을 했다고 하니 장래에 소망이 있는 터키가 아닌가하는 고무적인 마음도 들었다.

  

  일전에 터키 성도들의 생활을 비디오로 보았던 갑바도기야, 그 기적의 현장을 직접 가 보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기묘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관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진, 화산으로 쌓인 모래 바위들, 그리고 그 속에 깊고 깊은 지하 도시들과 굴속의 수많은 방들과 교회들과 수도원, 신학교들을 보며 옛날 핍박을 피해 그 속에 숨어서 살던 성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또 큰 대리석 원형극장에서 성도들이 사자에게 뜯겼던 그 현장에서 기도하며 뜨거운 찬송도 불렀다. 어마어마한 대리석 길과 기둥들이 그 옛날의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도대체 그 옛날에 어떻게 대리석 돌로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지을 수가 있었을까? 정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진으로 모두 다 땅속에 묻혔다가 지금 속속히 파헤쳐져서 어마어마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발굴할 것이 무진장인데 터키 사람들은 그다지 열성을 내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현장이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하였다고 자랑할지라도 주님이 한번 땅을 흔드시면 순식간에 무너지리라.

  정교회의 나라 그리스의 밧모섬에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치고 비가 쏟아지며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서 갔을 때에는 다행히 날이 활짝 개어 요한이 계시 받은 바위  굴에 찾아갔다. 성전 안을 금칠로 온통 번쩍이게 장식해 놓고 많은 성화들로 성경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터키와 그리스의 특징이다.

  

  터키는 이슬람교 나라지만 그리스는 기독교의 정교회 나라인데 주일 성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성경책도 없고 신부가 알아듣지 못하는 고대어로 설교를 하고 믿음은 그 성화를 보고 깨닫고 신앙생활을 하니 성화가 발달했고 그 의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전통과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며 주말에는 가족끼리 다 놀러 가는 문화이고 세례 받고 교회에서 결혼식하고 때때로 교회 성화 앞에 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말씀은 읽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다 구원받았다고 믿고 우리 개신교를 벌써부터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다고 하며 선교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나라라고 하는 선교사님의 안타까운 말씀이셨다.

  

  사도 요한은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돌산인 밧모 섬에 유배되었으나 그 동굴 속에서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고 주님만 바라보다가 놀라운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 그 섬이 지금은 하얀 아름다운 집들로 가득 들어찼고 흙을 대륙에서 가지고 와서 나무를 심어 천국 같은 아름다운 관광지가 된 것이 오히려 그 옛날 황폐한 모습보다 은혜롭지 않은 것 같다.

  

  빌립보에 전도하러 가서 감옥에서 고생하신 그 사도 바울의 성령의 역사가 지금 그리스에는 없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곳에서 집시 사역을 하시는 깡마르고 얼굴이 까만 선교사님의 고충이 얼마나 힘들고 큰지를 알 것 같다. 그 옛날 헬라시대에 찬란한 문명과 그들의 전통을 자랑하며 고수하는 그리스 사람들은 오만하고 불친절했다. 순례여행을 하며 그곳은 옛날의 발자취일 뿐 더 이상 거룩한 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십자가 밑에, 그 때의 피 흘리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떨리는 심령으로 회개하는 심령 속에, 그들이 모여 안타깝게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교회에, 땅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 성지일 것이다.

  

  그 옛날에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여 사자에게 뜯기며 고통하고 핍박을 받으며 뜨겁게 신앙 생활하던 선진들의 모습을 그리며 오늘날 그 은총의 촛대가 옮겨진 모습을 보며 우리들의 후손에게 성지를 물려주어야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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