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렘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Then you will call upon me and come and pray to me, and I will listen to you. You will seek me and find me when you seek me with all your heart.”
☞ (렘 29:11-13)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희망을 주심이다.
① 예레미야는 자기 조국이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원수의 나라인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어느 선지자가 이런 메시지를 외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레미야는 비운의 선지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메시지가 단순히 슬픔이나 비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멀리 보면서 이해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곧 망국의 슬픔도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희망을 주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엄청난 역설(逆說)이다.
②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부정적인 판단을 하기 잘한다.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그 땅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그래서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에 아낙 자손이 있음도 보았다”(민 13:27-28). 그런데 문제는 10명은 부정적으로, 곧 그렇기에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보았고, 두 명은 긍정적으로, 곧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땅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니 능히 차지할 수 있으니 빨리 들어가서 차지하자.”라고 보았다는 데 있다. 누가 옳은가?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③ 우리 조상들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했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더 좋게 되는 일이 누구에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고전 2:9)라고 말씀하신다.
④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오히려 그 어려움을 통해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자기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본다”(출 14:13). 그러나 믿음이 없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단지 눈앞의 현상만 보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절망하여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을 보고 낙심하였다.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그렇게도 많이 강조하셨지만,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였기에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드디어 제자들은 변화를 받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용사들이 되었다.
⑥ 우리 개개인의 삶에도 세속적인 어려움도 쉬지 않고 찾아오며, 의를 위한 고난, 복음을 위한 고난도 계속하여 찾아온다. 우리 찬송가에 “너 가는 길을 모두 가기 전에 네 손에 든 검을 꽂지 말아라. 저 마귀 흉계 모두 깨뜨리고 끝까지 잘 싸워 이겨라.”라고 하였다. 한 번 이겼다고 영원히 이긴 것이 아니다. “산 넘어 산”이다. 그러나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라고 하였으나, 말년에는 마침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개가(凱歌)를 소리 높여 불렀다. 드디어 ‘의의 면류관’이 보였다. 우리도 끝까지 잘 싸워야 한다.
⑦ 우리나라를 생각해보자. 일제 36년의 식민통치, 해방 후의 좌우대결 및 6.25사변으로 인한 폐허, 패퇴한 김일성 도당의 끊임없는 도발과 남침 위협, 이런 악조건 속에서 우리는 이를 악물고, 피땀을 흘리며 나라를 건설하였다. 지금도 ‘민주’를 위장한 붉은 마귀 세력의 발호,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먼저 생각을 바꾸어 역경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자. 그 다음엔 힘써 부르짖어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자!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자.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굽어보시면서 당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