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여행
< 2004년 >
3월 27일 L.A에 조카 딸 결혼식이 있어 며칠 일찍 내려가 여행사를 통해 1박 2일로 멕시코 여행을 하기로 계획을 하였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여행사에서는 모두 목요일에 떠나는 2박3일의 코스만 있지 1박2일 코스는 없다고 한다. 토요일 늦게 오면 결혼식에 참석 할 수가 없으니 갈 수가 없다.
결혼 32년만에 처음으로 떼를 써서 둘만의 여행계획을 세웠는데 할 수없이 멕시코 티화나에 있는 선교사인 제자 목사님께 연락을 하고 오빠 차를 빌려 타고 티화나 국경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이번 계획은 선교지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은 것은 선교지에 가지고 갈 선교비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멕시코를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전에 청년부를 데리고 선교로 왔었기 때문에 두 번째이고 목사님은 처음의 여행이었다. 국경선 근처 멕도널드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국경선을 지나 멕도널드가 보이는 데도 갈 수 없었고 길을 따라 운전을 하니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들어가서 만났는데 처음 오는 사람들이 많이 그렇게 한다고 한다. 점심때가 한참 지나 배가 고팠는데 티화나에서 제일 좋은 뷔페라고 하며 대접을 해서 멕시코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를 하고 멕시코에 세워진, 지금도 계속 공사하고 있는 성결신학대학에 갔다. 여러 개의 강의실과 남녀 기숙사가 있었고 큰 예배당을 짓고 있었다. 과테말라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던 스페니쉬를 잘하는 조성출 목사님이 이곳 학장으로 오셨고 장차진 목사님은 이곳 30여개 멕시코 현지인 교회들을 돌보는 선교사 대표라고 한다. 내일 저녁 6시에 30여명의 신학생들이 오는데 세 명의 멕시코 교수와 목사가 돌아가며 강의를 한다고 한다.
귀한 교수님이 오셨으니 그들은 취소하고 목사님이 강의를 해달라고 한다. 역시나 이번 여행도 이렇게 선교여행을 하도록 되어 있었나보다. 두 곳의 교회 건축하는 곳을 가보고 세 가정의 목사님들(멕시코인) 집을 방문했는데 참으로 비참했다. 예전에도 느꼈었지만 국경 하나 사이로 미국과 멕시코는 천국과 지옥같이 달랐고, 멕시코는 더럽고 가난하고 비참한 모습이었다.
멕시코 전지역에서 티화나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자꾸 몰려오고 있어서 사방에 똑같은 연립주택형식의 집들을 한국의 아파트처럼 많이 짓고 있다. 조금 좋은 동네는 길이 포장이 되어있고 웬만한 곳은 다 비포장 도로인데 비가 오면 길이 다 패어져 엉망이라 학교에 갈 수가 없어서 휴교를 한다고 한다.
골목마다 많은 아이들과 무수한 사람들의 초라한 모습들이 넘치고 있었다. 도둑을 경계하느라고 육중한 철문에 좁은 연립주택에서 큰 개를 기르고 있고 차도 핸들을 잠금 열쇠로 채웠다. 교회 벽에다 온통 낙서를 했는데 멕시코 사람들이 그렇게도 낙서를 좋아하는지 건물마다 깨끗한 건물이 드물 지경이다. 집집마다 미국에서 버린 차들을 가지고 있는데 번호판도 미국 것으로 그냥 타고 다닌다고 한다. 길이 나쁘고 버스가 제대로 없고 차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며 참으로 굴러다닐 것 같지 않은 차가 구석구석에 박혀있었다.
저녁은 목사님 댁에서 전에 예쁜 어린 여학생이던 사모님이 정성껏 만든 식사를 했다. 이곳에는 없는 귀한 한식으로 김치와 된장찌개, 생선을 맛있게 먹었다. 이 한식은 미국 한국 마켓에 가서 사와야 한다고 한다.
목사님 집은 작은 방이 세 개인데 하나는 한국에서 선교 온 대학생이 쓰고 있고 하나는 아들과 딸이 이층침대를 놓고 자는데 우리에게 자기네 침대를 쓰고 자기네는 아이들 방에서 자겠다고 한다. 극구 사양하고 모텔로 나왔는데 새로 지은 모텔로 하루에 30불이라고 한다.
밖의 경치는 볼 것이 하나도 없고 사방이 꽉 막힌 창고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차도 각방 1층 차고에 넣고 차고를 통해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방은 제법 큰 침대에 시트가 깨끗했다. 그러나 샤워시설이 엉망이라 물이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하루종일 피곤했는데 이렇게 편히 쉴 수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아침식사 후 어제 심방했었던 멕시코인 베드로 목사 일가족(사모, 아들, 딸)을 만나 두 대의 차로 로사리또(바닷가 휴양지)에 있는 깐따마르의 선교센터에 갔다. 그 선교센터는 미국의 한국교회에서 이곳 바닷가에 수양관으로 잘 지었고 침대와 좋은 시설들이 다 되어 있는데 그 동안 관리자가 없어서 도둑이 다 훔쳐가고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장목사님이 현지인 목사를 관리자 겸 목회자로 그 교회에서 오신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선을 보이는 것이다. 이야기가 잘 오고가고 베드로 목사에게 기도하라고 하니 울면서 뜨겁게 기도했다. 멕시코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해서 은혜를 잘 받는데 믿음직스럽지는 못한 편이라고 한다. 목사는 가난하다고 목사가 되려고 하지 않는데 이렇게 목회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귀하다고 한다.
그 건물은 수양관으로 관리만 잘하고 그 근방 다른 곳에 교회를 개척해 주겠다고 하신다. 그 목사님이 바닷가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해서 세 대의 차가 해변에 있는 바닷가에 갔는데 식당들은 즐비한데 손님들은 별로 없었고 깨끗하지도 않았다. 생선을 불에 구워 먹어야 하는데 불들이 모두 약하여 먹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마침 배가 들어와서 장 목사님이 생선을 사고 살아있는 게 4마리를 10불에 샀는데 우리들의 머리통보다도 더 컸다. 그렇게 징그럽고 큰 게는 처음 본다.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하고 우리는 예전에 왔었던 선교지의 이건만 목사님을 찾아가 뵙기로 하여 그분들과 헤어져 바닷가 아름다운 식당 깔라피아(Calafia)에 왔다. 점심 특별메뉴로 가제를 먹었다. 바닷가 호텔 안의 아름다운 고급 레스토랑으로 푸른 바다가 보이고 경치가 너무나 좋았다. 모두 미국 관광객들이고 비자카드도 받아서 자기가 내겠다고 고집하는 것을 우리가 선교사님을 대접했다. 호텔은 45불이라고 써있다. 엔세나다에 계신 이 목사님을 방문하면 저녁 학교 강의에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해서 전화로 인사만 하고 식당을 나와 바닷가를 달려 하얀 궁전인 오아시스 호텔에 갔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어서 차를 마시러 간다고 하고 들어갔다.
장 목사님이 그곳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지만 나 목사님이 고만 두자고 해서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궁전 같은 하얀 호텔을 배경으로 공주라도 된 양 착각하며 사진만 찍었는데도 마음이 설레는 것이었다. 하얀 건물이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궁전같이 환상적으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 예전에 멕시코 선교 갈 때에 이곳을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에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 머리를 깎아 주고 놀아주고 길에서 찬양하며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참으로 은혜로웠었다.
뿔라야(Playa - 바닷가 마을로 주로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부촌) 마을을 한참을 달려 신학교에 와서 조 학장님을 만나 길거리에 가서 한 개에 1불씩 하는 소고기 타코를 저녁으로 먹었는데 직접 구워서 그런지 좀 지저분한 느낌이었지만 너무 맛이 있었다. 장 목사님은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30여명의 멕시코 신학생들이 모여들었고 6시부터 9시 30분까지 나 목사님이 강의를 하고 조 학장님이 통역을 했다. 진지하게 열심히 듣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이곳에는 한국인 선교사님도 없고 한국사람도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다른 곳의 한국인 선교사님들은 자기의 센터를 중심으로 두세 개의 교회를 세우고 열심히 일을 하다가 후계자가 없어서 곤란한 일이 생기는데 이곳은 애초부터 신학교를 통해 멕시코 목사들을 양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30여개의 교회들이 있고 멕시코 목회자들이 있는데 모두 가난하고 약하다고 한다.
목회에만 전념하게 하려면 생활비를 대주어야 하고 교회도 건축을 해 주어야 한다고 하며 그 30 군데의 교회를 돌보고 목회자들을 돕고 신학교육을 시키는 것이 장 목사님이 하는 일이라고 하며 나 목사님께 자주 와서 목회자들을 교육시켜달라고 하였다. 가까운 곳의 목사님들을 초청하라고 하니 모두 오기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며 꼭 와 달라고 청하니 5월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 학장님이 교육비, 선교비도 좀 가지고 오시라고 한다. 이렇게 힘이 드니 웬만한 목사님들은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 중국에 매번 가서 신학교에 강의를 하고 선교비를 주고 오는데 생각지 않던 이곳이 또 추가되었다. 그러나 와서 멕시코 목사들을 교육시키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신학교에서 현지 목회자를 양성하는 일은 너무나 큰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젊었을 때에 멋있고 잘생긴 장 목사님이 그곳 주민을 닮아선지 까맣게 그을리고 털털하니 멕시코 사람이 다 되었다. 젊은 목사님이 이곳에 온 지 몇 년이 안 되었는데 스페니쉬를 아주 잘하는 것이 장하시다. 사전을 놓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아이들은 그곳 열악한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어찌나 말을 스페니쉬로 잘하는지 장래에 대를 이어 사역할 귀한 선교사감들이다.
멕시코 신학교, 교회들을 건축하는 일, 그리고 목회자들을 돕는 이 일을 시작하신 한 알의 밀알이 되시는 귀한 황 선교사님이 계시는데 올해에 69세이시다. 목사님 사모님인데 목사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 장사를 해서 돈을 무척 많이 벌어 다 멕시코에 쏟아 부으시고 또 둘째아들이 뉴욕에서 굴지의 큰 회사에 다니는데 어머니의 선교에 비용을 대고 있다고 한다. 한번은 그 회사의 회장님에게 말씀드려서 100만 불을 받아 오기도 했는데 그렇게 쏟아 부어도 구멍 뚫린 항아리처럼 돈은 끝없이 필요하고 할 일은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아들이 얼른 말을 안 들으면 “너 나 천당 가는 것을 볼래?” 하고 협박(?)을 하면 당장에 요구하는 것을 내놓는다고 하며 장 목사에게 아들에게 더 많이 타내라고 한다고 하니 참으로 훌륭한 멕시칸들의 어머니이시다. 실제로 많은 멕시코 사람들이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 아들도 요즘에 볼 수 없는 참으로 귀한 효자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큰복을 주시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멕시코에 와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감동이 되었다.
모처럼 홀가분하게 부부가 멕시코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은 나 목사님이 멕시코 목회자들을 위해 교육시키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계셨는가 보았다. 저들이 영적으로, 신학적으로 무장하여 멕시코의 무지를 깨뜨리고 아름다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또 하나의 기도제목이 생겼다.
아침 8시에 창고 모텔에서 나와 목사님댁에 왔는데 새벽 2시까지 어제 사온 그 머리통 만한 게를 삶느라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그것을 망치로 깨트려 먹는 일로 신문지를 깔고 망치로 내리쳐서 깨어 먹었는데 맛은 이곳의 게만 못한 것 같았다. 어제 사온 생선구이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장애자와 재소자들을 위한 특수 목회를 하는 교회에 갔다.
본당을 크게 짓고 있었고 양쪽 옆으로 한쪽은 장애자들이 살고 있었고 한쪽은 감옥에서 나온 출소자들이 살고 있었다. 건물의 외형은 세멘트로 반듯하고 단단한 현대식 건물이었는데 그 속에 방마다 비참한 사람들이 잠을 자고 음식을 해먹으며 어둡고 불쌍한 모습으로 숨쉬고 있었다. 출소자 방에는 누워서 자는 사람들이 많았고 저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고 우리가 돌아보는 것이 미안했다.
아주 큰 사업인데 모두 황 선교사님이 이렇게 시작을 해서 지금도 계속 이끌어 나가고 계신다고 한다. 마침 그곳에 찾아온 여자 멕시코 목사 부부(레띠시아목사와 안토니)를 만나서 그들이 일하는 곳에 갔다. 남자들 동성애자들로 모두 여자 역할을 하다가 버림받았거나 예수를 믿고 변화 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현대식 건물로 제법 시설이 좋았는데 이 건물도 황 선교사님이 지어 주었다고 한다. 30명쯤이 모여 사는데 모두 가슴들이 나와 있고 여자 모습들로 온순하고 착해 보였지만 징그러운 마음도 들었다.
멕시코인들은 악수를 다정하게 청해오는데 손에 상처가 있으면 안되고 손을 잘 씻어야 한다고 하며 얼마 전에도 두 사람이 에이즈로 죽어 나갔다는 끔찍한 소리를 한다. 이곳은 여자 목사가 사명으로 일하는데 예전의 남편이 너무 싫어하며 “나와 이 사역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고 아내가 끝까지 이 사역을 포기하지 않으니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총각 남편을 만났는데 그는 미국에서 마약사범으로 추방을 당해 이곳에서 주님을 영접하여 집 없는 걸인들을 모아 그 옆집에서 사역을 한다.
멕시코인들은 바로 미국 국경 근처에 사는데도 영어를 못하는데 이 사람은 영어를 잘해서 말이 통했다. 한 30명쯤이 모여 사는데 초가집에 시설이 형편없었고 화장실이 단 하나밖에 없어서 제일 급하다고 한다. 이곳은 황 선교사님이 집을 지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바닥에 누워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들에게 최소한의 음식을 공급해 주고 있는데 육신이 멀쩡한 사람들이 나가 막일을 해서 음식을 공급한다고 한다.
레띠시아 여자 목사가 이 버려진 사람들을 상대로 목회를 참 잘하고 있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화장실을 하나라도 더 지어주면 좋겠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는 어쩌면 이렇게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많을까? 이 무지한 멕시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귀한 돈을 자식에게 타다가 아낌없이 쏟아 붓는 그 여걸 멕시코의 어머니 황 선교사님을 사진으로 만났는데 화사한 얼굴로 활짝 웃고 계셨다. 내년에 칠순잔치를 미국, 한국, 멕시코에서 해서 돈을 거두어 갖다 주시겠다고 장 목사님께 이야기했다고 한다.
멕시코 지도를 놓고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올 여름에 그곳까지 멀리 달려가서 여름학교와 전도를 하고 온다고 하며 좁은 집에 몇 십 명씩 모여 지내기도 하고 음식을 해 내야하는 사모님이 참으로 훌륭하게 보였다. 가정을 지키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 사모님이 없으면 이 사역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간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사양하는 것을 선교비로 다 내놓고 또 다음 5월을 약속하고 멕시코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