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비교 연구
공관(共觀)복음이라는 말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 세 복음서는 그 관점이 공통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요한복음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확실히 나타난다.
요한복음은 그 내용, 문학적 표현 및 사상적인 면에서 공관복음과 여러 가지 차이를 볼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공관 복음을 닮은 것이 사실이나 공관복음서의 자료는 사용하지 않았다. 요한복음의 내용을 공관복음서들과 비교할 때에 크게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1) 무설명설(無說明說)
1) (요 1:19-27) ↔ (마 3:4-12) 세례 요한에 대한 설명
세례 요한의 모습(복장)이나 음식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단지 그의 출현만을 말하고 있다.
2) (요 1:32-34) ↔ (마 3:13-17) 예수님의 수세(受洗)
제자 요한이 증언하는 가운데 “성령이 비둘기같이”라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세례 요한 자신이 했다는 것으로 끝나며, 예수님이 세례 받으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3) (요 1:40) ↔ (눅 5:1-10) 베드로를 부르심
(공)은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가 부름 받는데,
(요)은 그 부름의 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4) (요 1:46) ↔ (마 2:12,23) 예수님의 고향 - 나사렛과 가버나움
(공)은 나사렛에 대한 설명과 왜 ‘나사렛 사람’이라고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요)은 자세한 설명이 없다. 단지 ‘나사렛’을 천시하는 사실만을 말해 준다. 가버나움이 제2의 고향으로(2:12; 4:46; 6:17,24,59) 등장한다. (공)은 가버나움이 갈릴리 선교의 중심지로 나타난다.
5) (요 6:42; 7:3-5; 2:12) ↔ (막 6:3; 마 13:55; 막 3:31) 예수님의 형제들
(공)은 형제들의 명단과 함께 그들이 예수님의 선교 현장에 찾아왔음을 말한다. 그러나
(요)은 형제들의 명단이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었다고 말한다.
6) (요 2:13-21) ↔ (마 21:12-16; 막 11:15-18; 눅 19:45-47) 성전 정화 운동
(공)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므로 정화를 요청하나,
(요)은 그 설명이 없고, 이 성전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말씀이 있다.
7) (요 3:24) ↔ (마 4:12; 11:2; 막 6:17-29) 세례 요한의 투옥됨과 예수 선교의 시기
(공)은 세례 요한이 투옥된 후에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나,
(요)은 그가 투옥되기 전에 공생애가 시작되는데,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 없다.
8) (요 6:62) ↔ (눅 24:51; 막 16:17-29) 예수님의 승천
(공)은 예수님의 승천을 설명하고 있으나,
(요)은 승천에 대한 암시는 있어도, 그 기사나 설명이 없다.
9) (요 6:67) ↔ (마 10:2-6; 막 3:13-19; 눅 6:14-16) (요)에는 열두 제자의 명단이 없다.
10) (요 12:1) ↔ (눅 10:38-42) (요)에는 마르다에 대한 이야기(마리아와 비교한 그의 성격 등)가 없다.
※ 이상의 여러 가지 예에서 보는 바로는 (요)은 (공)의 내용, 설명, 숫자 등을 다시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하겠다.
(2) 생략설(省略說)
1) 동정녀 탄생 기사 - 로고스(Logos)론으로 대치함.
2) 예수님의 족보가 없다.
3) 예수님의 어렸을 적 기사가 없다.
4) 12 제자를 파송하는 말씀(마 9:35-10:42; 막 6:7-13 등)이 (요)에는 없다.
5) 시험 받으신 사건(마 4:1-11; 눅 4:1-13)이 없다.
6) 12 제자를 부르신 사실이 없다.
7) 베드로의 고백(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이 없다. (마 16:13-20; 막 8:27-29)
이 고백은 교회관이 성립되는 중요한 기사이다.
8) 변화산상의 사건(마 17:1-8; 막 9:2-8; 눅 9:28-26)
9) 최후의 만찬 - (요)에는 유월절 전날의 만찬 곧 일반 만찬이다.
10)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11) 예수님의 승천 기사
12) 산상수훈
13) 천국 비유
14) 종말 현상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이 없다.
15) 이적도 (공)의 대부분이 빠졌다.
(3) 재해석설(再解釋說)
1) 세례 요한 (요 1:19-34 ↔ 마 3:1-6; 막 1:7-10; 눅 3:1-7)
(공)에서는 세례 요한이 ‘복음의 시작’으로서 중요하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다. 또한 ‘회개의 세례’가 중요하다. 요한이나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회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요)에서는 세례 요한이 ‘말씀’과 ‘광야의 소리’로 관계 지으면서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양(羔羊)으로 해석한다. 인간 편에서 마땅히 해야 할 ‘회개’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속죄애’가 훨씬 큰 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2) 성전 정화 운동
(요)은 선교 초기(2장), (공)은 선교 말기 수난 주간 제2일에 일어났다고 한다.
3) 이적과 그 해석
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침(4:46-54) (cf. 눅 7:2-10 백부장의 종을 고침)
믿음과 이적의 관계 - 어느 것이 우선인가?
(공)은 믿음이 먼저이고, 그 믿음의 결과로 병고침을 받는다.
(요)은 이적이 먼저이고, 그 결과로 믿음이 생긴다.
②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 (6:1-15) ↔ (마 14:13-21; 막 6:31-44; 눅 9:10-17)
(공)에는 군중들을 향한 예수님의 동정, 사랑이 강조되고
(요)에는 물질을 통해 영적 양식을 교훈하시는 위대한 진리가 중요하다.
③ 수상행보(水上行步) (6:16-21) ↔ (마 14:22-36; 막 6:48-52)
(공)은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이적을 보이며 그리스도를 믿게 함이 목적이나,
(요)은 영적인 임재를 시도하고 있다.
4) 베드로의 고백
(공) (마 16:13-20; 막 8:27-30; 눅 9:18-31) - 교회 건립의 약속이 중요하다.
(요) (6:66-71)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 역시 ‘말씀’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베드로를 사랑하신다. 그의 세 번에 걸친 부인에도 불구하시고 그를 다시 찾아오셔서 그의 연약함을 싸매주시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굳게 할 것을 말씀하시며 그가 장차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 당하고 세계 복음 선교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을 알려주신다.
5) 그리스도의 수난사(受難史)
① 베다니에서 기름 부음 받음.
(공) (마 26:6-13; 막 13:3-9) 가룟 유다의 반역이 있던 날 (cf. 눅 7:36-50 선교 초기)
(요) (12:1-12) 유월절 2일전
② 예루살렘 입성.
(공)은 성전 청결 사건이 예수님의 수난의 결정적 동기가 된다.
(요)은 나사로의 부활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결정적 동기가 된다.
③ 최후의 만찬 - 시기, 방법, 설교가 모두 다르다.
④ 체포되심
(공) (마 26:48- ; 막 14:43- ; 눅 22:47- ) 죄인처럼 취급받으시는 어둠의 때
(요) (18:3-11) “내가 예수다” - 그리스도의 권위에 잡으러 온 자들이 물러선다.
⑤ 베드로의 부인(否認) - 요한복음엔 회개하는 장면이 없다.
(공) (마 26:34, 69-75; 막 14:30,66-72; 눅 22:34,55-62)
(요) (13:36-38; 18:17-18, 25-27)
⑥ 심문 당하심
(공) (마 27:11-14; 막 15:2-5; 눅 23:2-5) 예수님의 침묵
(요) (18:28-38) 적극적인 변호(“진리를 알았더면 …”). 진리의 복음
⑦ 십자가, 가상칠언(架上七言)
(공) (마 27:46; 막 15:3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눅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요) (19:26,27)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19:28) “내가 목마르다.”
(19:30) “다 이루었다.”
※ 요한복음에서는 구속(救贖)의 완성을 선포한다.
⑧ 장례
(공) (마 27:57-61; 막 15:43-47; 눅 23:50-56)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하였다.
(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오고, 니고데모가 향품을 바른 후, 세마포에 싸서 아무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장사하였다.
⑨ 빈 무덤과 부활
(공) (마 28:1- ; 막 16:1- ; 눅 24:1- ) 천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한다.
(요) (20:1- ) 천사의 출현이 없다. 주께서 직접 마리아를 만나시고, 먼저 말씀하신다.
⑩ 나타나심
(공) 부활 후 예루살렘에 나타나심. 예루살렘 지향적 (행1: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요) 부활 후 갈릴리 바다에 나타나심. 갈릴리 지향적.
※ (요)에는 영적이며 진리를 고수(固守)하고, 구속자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그려내려는 강한 시도가 있다.
(4) 보충설(補充說)
A.M. Hunter는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을 보완하거나 정정하는 다음 여섯 가지의 역사적 전승이 있다고 말한다.
1) 예수님의 제자들 중 두 명은 이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 (1:35-42)
2) 갈릴리 전도에 선행(先行)하는 유대 지방 전도가 있었다.
3) 오병이어의 표적에 따른 메시야적 위기
4) 마지막 6개월간 장기간에 걸친 유대 지방 전도가 있었다.
5) 최후의 만찬일(니산월 14일이었다).
6) 대제사장의 배후 실력자는 그의 장인인 안나스였다(18:13).
(5) 독창설(獨創說) - 공관복음서에 없는 독특한 내용들이 나타난다.
1) 역사적 사건
① 가나 혼인집 사건(2:1-14)
② 니고데모(3:1-10) “들려야 한다” - 수난, 구속의 사건 암시.
③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4:1-26) - 메시야라는 증언으로 이끌어감.
④ 간음한 여인 재판(8:1-11)
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13:1-15)
2) 이적 사건
① 물이 포도주로 (2:1-14) - 변화의 종교, 기쁨의 종교, 소자에게 계시하신 종교.
②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③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5:1-9)
④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심 (9장)
⑤ 나사로의 부활 (11장)
⑥ 부활후의 고기잡이 이적 (21장)
3) 독특한 교훈
① 중생의 필요성, 방법 (3장)
② 생명의 떡, 영의 양식 (6장)
③ 선한 목자 (10장)
④ 밀알의 교훈 (12:24)
⑤ 사랑의 새 계명 (13:34)
⑥ 보혜사 (14:16-17,26; 16:7-14)
⑦ 포도나무 비유 (15장)
4) 예수님의 자기 선언 일곱 가지 -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ejgw; eijmi)이고, 영어로는 “I am”이다. 이 말이 “나는 … 있다”라고도 해석이 되므로 영어에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라는 말씀을 넣는다. 그리고 일곱을 맞추기 위해서 10장에 나오는 ‘양의 문’과 ‘선한 목자’를 하나로 묶는다.
① (6:35) 생명의 떡
② (8:32) 세상의 빛
③ (10:7,9) 양의 문
④ (10:11,14) 선한 목자
⑤ (11:25) 부활이요 생명
⑥ (14:6) 길, 진리, 생명
⑦ (15:1) 참 포도나무
5) 신앙고백
① (1:49) 나다나엘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② (6:69) 베드로 -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③ (11:27) 마르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④ (20:28) 도마 -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6) 시간의 문제
1) 일반적으로 공관복음의 시간은 유대인의 시간을 따른 것이다. 해가 질 때에 날짜가 바뀐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6시간을 더해야 한다.
2) 그런데 요한복음의 시간은 로마의 시간을 따른 것으로 현재 우리 시간과 같다. 예를 들어
① 1:39의 제10시, 4:6의 제6시, 4:52의 제7시 등의 경우는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으나, 19:14의 제6시의 경우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끌려 나와 재판을 받던 시각인데, 이것을 낮 12시라거나, 밤 12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새벽 6시인 것이다.
② 따라서 1:39; 4:6; 4:52의 경우에도 그 시간에 6시간을 더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밤 10시에 두 제자를 데리고 자기 계신 곳으로 가셔서 같이 거하셨고, 사마리아 여인은 저녁 6시에 우물에 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