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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균용박사 설교 1

14. 내가 곧 길이요.

작성자은혜|작성시간22.03.08|조회수129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14:5-6)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인류 역사상 아무도 이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5:24에서는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였다”고 하셨는데. 진실로 예수님은 또한 아무도 하지 못한 일과 함께 아무도 하지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감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아직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을 찾는 구도자(求道者)들일 뿐입니다. 인간들은 아직 진리가 아닙니다. 단지 진리를 찾느라고 애쓰면서 살 뿐입니다. 인간들은 아직 생명이 아닙니다. 자기 육신의 생명 하나도 더 늘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데 어찌 감히 “내가 생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거짓말입니까? 공연히 인간들 앞에서 허풍을 떤 것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기꾼이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느냐, 안 믿느냐”입니다.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만일 안 믿는다면 불신자입니다. 그러나 믿는다면 참으로 믿는 표를 보여드려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교회 뜰만 밟고 다니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로만 가야 합니다. 그러면 안전하고 평안하고 형통합니다.

자동차는 길을 따라서 가야 합니다. 바다 위의 배들도 길이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들도 자기의 길로만 가야 합니다. 1983년 8월 알라스카에서 서울로 가던 KAL 여객기가 길을 잘못 들었다가 소련의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고, 그 비행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저 우주 공간에 있는 별들도 아무렇게나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길을 따라서 돌고 있습니다.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을 탈선했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탈선합니다. 가정주부가 탈선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탈선합니다. 목사가 탈선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요?

 

1. 예수님은 우리의 성공의 길이십니다.

1) 만복의 근원이시니, 우리가 복을 받게 되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①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제일 먼저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 1:28).

②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니라.”

③ 찬송가 1장은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찬송가들이 “주님만이 만복을 내리신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2) 성공과 형통의 길이십니다.

① 우리가 잘 아는 신명기 28장은 “네가 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 이 얼마나 가슴 벅찬 말씀입니까? 2절에서는 “네가 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라”고 거듭 약속하시고, 13-14절에서 또다시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라고 또 다시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세 번씩이나 거듭거듭 약속하신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확실한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첫째, 재물의 복이 임합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11절,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둘째, 자녀의 복이 임합니다. “네 몸의 소생이 복을 받는다”고 거듭 하셨습니다. 십계명을 통해서도 의인들에게는 자손 천 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 20:5).

셋째, 전쟁에서 승리하는 복을 받습니다. 7절입니다. “네 원수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넷째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복입니다. 9-10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사람들은 권세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경외심을 갖게 하십니다.

다섯째, 세계의 지도자가 되게 하십니다. 13절에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② 이렇게 예수님을 섬긴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 세상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게 잘 사는 나라, 남들을 도우면서 사는 나라, 남들을 가르치면서 사는 나라, 남들을 다스리면서 사는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나라들은 어떠합니까? 우리 앞에 너무도 분명한 산 증거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요, 오늘에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높이 알고 지키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습니다.

③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잘 섬기면 우선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위선적 신앙인들은 자녀들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또한 그들의 말년이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7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아라.”라고 하였습니다.

 

3) 지혜와 지식의 길이십니다.

① 골로새서 2:2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②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5-6)라고 하십니다. 솔로몬이 이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열왕 위에 우뚝 솟아났습니다.

③ 잠언 8장은 지혜를 예찬하고 있습니다. 그 지혜는 창조주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나요? 예수님을 만나세요. 그분은 바로 지혜의 보고요, 원천이십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르게 살아갈 길이십니다.

 

1) 인류 역사상 수많은 성현들이 인생의 바른길을 찾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①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라서 생긴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자력 종교, 곧 자기의 노력으로 부처가 된다, 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길입니다. 더구나 불교에서는 윤회를 가르치는데, 구원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이 없고, 그 길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석가는 우리가 모든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낸 마음에는 예수님, 또는 성령님을 모셔야 하는데, 그냥 비워두면 결국에는 더욱 악한 귀신 일곱이 더 들어오지 않습니까?

②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서 생긴 것이지만, 원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인간의 윤리 도덕을 강조한 것일 뿐입니다. 공자의 선배로 노자(老子)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의 가르침도 도덕 차원에 머물렀을 뿐, 구원의 길은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내세에는 어떤 심판이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③ 이슬람교가 있습니다. 마호멧이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좋은 말씀들을 모으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기독교에 대항하여 아랍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알라’라 하고, 참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것인데,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인하니, 구원에 대하여는 모호합니다.

 

2)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과 함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① 불교나 유교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들은 다 합니다. 그러나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은 가르치지 못합니다. 석가나 공자나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생의 길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② 그들은 인간들의 일반적인 보편타당성 위에서 그 윤리의 길을 설명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에 서서 의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의 길로 가야 합니다.

③ 예수님처럼 죄에 대하여 엄격하게 설명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재해석하시면서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들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과, 겉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나타난 것보다 먼저 마음에 거룩함을 가져야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심과 함께 우리가 바르게 살 수 있도록 능력도 주셨습니다.

① 우리는 바른길을 알아도 그 길로 행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요?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소금이 있어야 집어넣을 것이 아닙니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은 것은 모든 선수의 염원입니다. 그러나 힘이 있어야 하지요. 학교에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러나 옳은 것을 지켜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의 아니게 죄를 짓게 됩니다.

② 도둑질이 나쁜 것을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사흘 굶으면 성인군자라도 도둑질할 마음을 먹게 되고 드디어 남의 집 담을 뛰어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③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너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3.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환난으로부터의 구원길이십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낙심치 말고 찾아보면 그 어려움을 이길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길을 알지 못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피난처요, 환난 중에 만날 도움이십니다.

 

1)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의 길이십니다.

① 예수님은 수없이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보내신 증거가 무엇이었습니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② 질병은 죄와 관련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죄와 질병을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내십니다. 이사야 53:4-5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③ 질병은 본래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마귀를 결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만이 마귀를 결박하여 우리를 해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 12:28-29).

 

2) 역경으로부터의 구원의 길이십니다.

① 기도하면 구원해 주십니다. 출애급의 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았다.”고 하시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사사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주변의 나라들을 들어서 이스라엘에 쳐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외적의 압제를 받아 고통을 당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이 견디다 못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용사를 일으켜 그들을 구원해 내십니다. 한동안 평화가 계속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또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살려주십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도 멍청하게 살면서 기도할 줄을 모릅니까?

② 구원해 주시되 왜 환난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도록 깨우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③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이기게 하십니다. “또 너희가 나로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8-20).

 

4)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이십니다.

① 우리들이 거하는 장소는 둘 중에 하나닙니다. 곧 아담 안에 있든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고전 15:22).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저주와 심판을 받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아무런 정죄나 저주나 심판이 올 수가 없습니다.

② 말세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는 세상에 대환난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죄악이 극에 달하여 심판을 자초합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면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 는데, 그 구름이 많아지면 무게를 견딜 수 없어서 비로 변하여 땅에 쏟아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도 하나님 앞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꾸 쌓이면 나중에는 큰 재앙이나 환난이 되어 쏟아집니다. 죄는 작게는 자기를 파멸시키지만, 크게는 사회와 나라를 멸망시킵니다. 더 크게는 이 세상을 완전히 멸망케 합니다. 그래서 이미 이 세상은 불사름을 당하도록 준비가 끝난 상태가 아닙니까?

③ 옛날 구약시대에는 도피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죄를 지은 사람이 피하여 숨어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4) 말세의 대환난으로부터의 구원의 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시 46:1)이십니다. 계시록 12:6에는 해를 입은 여자가 용에게 쫓길 때에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제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4.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에 이르게 되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1) 유일한 길이란 말은 다른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①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② 또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4)라고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씀을 분명히 일러주셨습니다.

 

2)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유일한 교통로가 되십니다.

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② 야곱이 벧엘에서 돌을 베게 삼고 잠을 자다가 신기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 유명한 사다리 꿈입니다. 그 사다리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주고 있지 않습니까?

③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라.”(요 14:13-14; 15:16; 16:23-2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한 것에 응답을 받습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더욱 기도에 힘쓰십시다.

 

3) 예수님은 우리가 성경을 깨닫게 되는 일에도 역시 유일한 길이십니다.

① 예수님이 친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성경을 안 것이 아니요, 따라서 영생이 없습니다.

②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율법을 재해석하시면서 “너희는 저렇게 들었으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라는 형식으로 다섯 번(마 5:21,27,33,

38,43) 강조하시며 율법의 참 의미를 일깨워주셨습니다.

③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하셨고,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16:13)라고 하셨습니다.

 

3) 이 길은 좁은 길이고, 십자가의 길이지만 생명길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 길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라고 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셨습니다. 이 길은 가장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지나가심으로 닦아놓은 새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된 길로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승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2004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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