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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 항상 역사하는 마음 밭의 원리(+거저 받은 좋은 땅)

작성자어라이즈(운영자)|작성시간25.03.26|조회수287 목록 댓글 0

[ 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로,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

 

(눅 8: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제가 전에 살던 동네에는 건물을 짓지 않은 빈 땅들이 있었습니다. 봄이 되면 그곳에 밭을 일구는 분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빈 땅을 기경하고 거기에 씨를 뿌려 놓으니, 저로서는 매일 자라나는 작물을 보는 기쁨이 매우 컸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옛날 저희 동네 빈 땅을 기경하여 씨를 뿌린 사람들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분들은 절대 길가에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길가에 뭣 하러 씨를 뿌리겠습니까? 씨만 버릴 텐데요. 길가에 씨를 뿌린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길가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동네 빈 땅에다 밭을 일군 사람들이 처음 와서 한 일은 땅을 기경한 일입니다. 돌을 골라내는 일이지요. 큰 돌, 작은 돌, 다 골라내더라고요. 돌이 있으면 결국 작물이 자라다가 뿌리가 돌에 닿는 즉시 죽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돌은 말씀에 대한 핍박입니다. 핍박이라고 하니, 우리 삶에 얼른 적용이 안 될 수 있는데 불신자 집안에서 예수 믿을 때 겪는 어려움도 이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단 시비도 말씀에 대한 핍박에 속합니다. 이렇게 말씀 때문에 받는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부류를 돌밭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돌밭의 특징은 처음에 말씀을 듣고는 "즉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사람들의 첫 반응보다는 언제까지 말씀에 대한 진지함이 지속되는지를 더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는 '아, 내가 돌밭이었구나....'라고 생각되시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은혜의 복음에 매료되었다가 그동안 배운 내용과 달라서 '이상한 덴가?'하고 떠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씀에 어긋나지 않으니 다시 돌아오신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가 바로 말씀에 대한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돌밭입니다. 누구나 이 과정을 겪습니다.

여러분, 혹시 농작물을 심어 놓은 곳에 검은 비닐이 씌워져 있는 것을 본 적 있으십니까? 농작물과 함께 잡초가 자라서 그렇게 한다네요. 이 비닐에 대한 것은 가라지 비유에 더 적합하겠지만 우리나라에는 가시덤불이 잘 없기 때문에 잡초를 가시 떨기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제가 산책 삼아 걷던 길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는 인도인데 이 동네가 볕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보도블록을 촘촘히 깔지 않아서 그런지 보도블럭 사이사이에 얼마나 잡초가 많이 났는지 모릅니다. 막 봄이 됐을 때는 너무 이쁘더니 나중에는 좀 징그러울 정도였지요. 잡초들은 이렇게 잘 자라기 때문에 농작물 옆에서도 함께 자라면서 농작물로 가야 할 영양분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검은색 비닐을 덮어 놓고 작물이 있는 곳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습니다. 그러면 이 작물들이 잘 자랍니다. 

말씀에서는 잡초가 아니라 가시떨기인데, 한글 성경에서는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는다고 표현되어 있고 영어에는 숨통을 조인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섬뜩하지요. 그런데 이 가시떨기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돌밭보다는 오래 말씀을 품고 있으나(말씀에 대한 핍박을 이김)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기운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 놀란 것은 말씀 때문에 받는 핍박을 이긴 자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게 맞습니다. 가족의 핍박을 이기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세상 근심, 돈 걱정을 하니까요. 

그럼 좋은 땅이 되는 데 문지방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말씀이 열매를 맺으면 최소 30배이기 때문에 좋은 땅의 열매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러니 문지방이 높은 게 맞는 것 같습니다. 30배의 결실을 길가나 돌밭, 가시밭이 감당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끝이면 우리에겐 소망이 없습니다. 한가지 제가 믿는 바는 물론 우리가 길가에서 좋은 땅으로 점차적 발전을 하겠지만 우리 마음에는 이 네 가지 땅이 동시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길가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좋은 땅일 수 있다는 뜻이지요. 또 우리가 성숙해져 감에 따라 좋은 땅으로 자라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좋은 땅이 있다고 봅니다. 이게 바로 우리 마음 중에서 우리 영이 차지한 부분입니다. 에스겔에서 새 마음이라고 부른 부분입니다(겔 36:26). 

우리가 마음을 기경해서 좋은 땅으로 변화시켜야만 말씀이 열매를 맺는다면 처음부터 아예 구원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으로, 우리가 거듭날 때 일부 좋은 땅을 거저 주셨습니다. 믿음도 거저 주셨고요. 그래서 저는 거저 받은 그 믿음으로 거저 받은 그 좋은 땅에 말씀을 심을 수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말씀을 들을 때, 나는 아직 부족하더라도 은혜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거듭날 때 받은 새 마음, 좋은 땅입니다. 새롭게 해야 하는 나의 마인드에는 여전히 나머지 세 가지 땅이 함께 존재하지만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마음이 길가에서 좋은 땅으로 점점 기경 되어 가긴 하지만 이미 은혜로 받은 좋은 땅도 있다. 내 마음을 기경해서 완전한 좋은 땅으로 변화되어 가기 전까지는 은혜로 받은 새 마음, 그 좋은 땅에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심을 수 있다.”

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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