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떠난 12박 13일의 남프랑스 예술기행.
세번째날, 콜리우르(Collioure)를 찾았다. 두번째 날 찾았던 가톨릭 성지로 성모님 발현지인 루르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프랑스 남부 지중해의 보석 같은 마을이었다. 스페인 국경과 가까운 이곳은 강렬한 햇살과 색채로 인해 '야수파(Fauvism)의 탄생지'로 불린다.
내가 찾은 콜리우르를 한 문장으로 말하라면 " 색채가 살아 있는 예술가의 바닷마을”이다.
프랑스 남서쪽 지중해 해안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 콜리에르는 마티스와 드랭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활한 도시다.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콜리우르(Collioure)는 앙리 마티스가 1905년 여름에 머물며 야수파(Fauvism)라는 미술 사조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장소다.
그런데 정작 이 마을 콜리우르에 마티스의 이름을 딴 '마티스 전용 미술관'은 없으며, 그가 이곳에서 그린 진품 명작들도 현재 콜리우르에 남아있지 않았다.
마티스가 1905년 콜리우르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그린 걸작들은 현재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형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콜리우르의 열린 창 (The Open Window, Collioure)>
<콜리우르의 열린 창 (The Open Window, Collioure)>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콜리우르의 지붕들 (View of Collioure)>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콜리우르의 올리브 나무들 (Olive Trees at Collioure)>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콜리우르에는 '마티스 미술관' 대신 콜리우르 현대 미술관이 있으나 시간 관계상 들리지 못했다. 대신 콜리우르 생가나 골목을 걷다 보면 아주 흥미로운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위치 재현 복제품이다. 마티스와 드랭이 실제로 이젤을 펼치고 그림을 그렸던 바로 그 자리에 약 20여 개의 작품 복제품(디스플레이)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액자 프레임 구조물들이 마을 곳곳에 아무것도 없는 빈 액자 모양의 철제 구조물로 세워져 있다. 그 액자 틈으로 바다나 교회를 바라보면, 100년 전 마티스가 바라보았던 바로 그 구도와 풍경을 관람객이 직접 눈으로 담을 수 있게 해놓았다.
프랑스에서 앙리 마티스의 진품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콜리우르가 아닌 니스 마티스 미술관 (Musée Matisse, Nice)으로 가야하는데 이곳 역시 작품이 해외 대여 되면 문을 받는다.우리가 니스에 갔을 때도 문을 닫아서 진품 그림을 보는 데 실패를 했다. 대신 마티스가 설계한 마티스 성당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마티스 성당은 별도로 소개할 예정이다.
야수파(Fauvism)는 20세기 초(1905년~1908년 사이) 프랑스에서 일어난 짧지만 아주 강렬했던 현대 미술 운동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색채의 해방"을 외친 예술가들이다. 그동안 미술에서 색은 사물을 똑같이 그리기 위한 도구(예: 사과는 빨간색, 하늘은 파란색)였는데, 야수파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내 마음대로 색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을 빨갛게, 사람 얼굴을 파랗게 색칠하는 등 제멋대로 색을 썼다. 보통 사람들이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없다.
그렇다면 왜 이름이 '야수파'일까?
1905년 파리의 한 전시회(살롱 도톤느)에 이들의 작품이 처음 걸렸을 때, 당시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물의 실제 색과 전혀 다른 원색들이 캔버스 위에서 거칠게 부딪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를 본 미술 평론가 루이 복셀(Louis Vauxcelles)이 전시장 한가운데 있던 르네상스풍의 전통 조각상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야수(Les Fauves)들에게 둘러싸인 도나텔로(조각가) 같구나!"
이 비판 섞인 말에서 '야수파(Fauves)'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고, 화가들은 이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며 자신들의 예술적 정체성으로 삼았다.
야수파의 핵심 특징 3가지
1) 현실을 초월한 강렬한 색채: 야수파 화가들에게 나무는 빨간색일 수 있고, 사람의 얼굴은 초록색일 수 있었다. 색 자체의 아름다움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2) 거칠고 자유로운 붓질: 캔버스 위를 정밀하게 다듬지 않고, 마치 야수처럼 거칠고 두껍게 붓자국을 남겼다. 덕분에 그림에서 강한 생동감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3) 단순해진 형태와 원근법 무시: 사실적인 묘사나 입체감(음영), 전통적인 원근법을 과감히 생략하고 화면을 평면적으로 구성했다.
대표적인 화가들
1)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야수파의 절대적인 리더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며, 보색 관계(예: 빨강과 초록)를 활용해 화면에 엄청난 긴장감과 화려함을 불어넣었다.
2)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 고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물감을 튜브째 짜서 바르는 듯한 격렬하고 감정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3) 앙드레 드랭 (André Derain):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의 시작을 이끈 인물로, 런던의 풍경을 아주 화려하고 이국적인 색조로 그려냈다.
야수파가 남긴 유산
야수파 운동 자체는 약 3년 만에 화가들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짧게 끝났다. 하지만 이들이 열어젖힌 '자유로운 색채의 사용'은 이후 등장하는 표현주의와 현대 추상 미술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