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나전칠기, 한국나전칠기처럼 조개 껍데기를 다듬어
[자료의 근거]
olivier21 | 2006-04-17 15:59
멕시코 시 구경... 인류학 박물관 중 똘떼까 실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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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똘떼까 실
문화적 통일성의 중심에 서있던 대 도시 떼오띠와깐이 무너진 뒤 중앙 고원은 2세기 동안 혼란에 빠져들었고 9세기 말경부터 북방에서 야만족 치치메까(Chichimeca)족이 내려온다. 그러나 10세기 중반을 지나며 본래 수렵 또는 유랑민인 치치메까 족에서 갈라진 똘떼까 족은 높은 교양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 도회적인 지식인과 용맹스런 전사로 이 두 개의 이질적인 집단이 뒤섞여 멕시코 시에서 북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이달고 주의 뚤라를 수도로 정한다.
이후 떼오띠와깐을 전승한 새로운 정치 통일의 시대를 열어 중앙 고원의 강력한 통치자로 후고전기 시대를 이끌었다. 똘떼까라는 이름은 '예술가' 또는 '건축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우주의 멸망을 늦추기 위해 전쟁을 하고 포로를 잡아 피라미드 위에서 산 제물의 심장을 바치는 등 잔혹한 행위를 했던 똘떼까 족의 뚤라는 선진의 학예와 전사를 결합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그 영향은 떼오띠와깐의 멸망이 미치지 못한 변방 유까딴의 마야까지 흘러들었다.
1200년경 신흥 세력 아스떼까에 멸망한 뒤 지금의 뚤라 유적지에는 마치 아테네의 신전처럼 지붕은 온데간데없고 피라미드위에 거대한 현무암 전사 상을 부조한 네 개의 기둥들만 남아 있다. 여섯 번째 전시실인 '똘떼까(Tolteca)실'에 들어서면 전시장 한 가운데 높이 4.6m에 신전 지붕의 기둥으로서 네 개의 돌을 차례로 쌓아 올려 만든 전사의 상이 우뚝 서 있다.
긴 귀걸이, 훌륭한 깃털 머리 장식 그리고 나비 모양의 넓은 가슴장식을 달고 오른손에는 아뜰라뜰(Atlatl)이라는 투창을 들고 왼손에는 나무로 만든 꼬부라진 칼을 든 채 퀭한 눈매를 하고 있다. 이 커다란 전사 상은 원래 똘떼까 족의 수도 뚤라에 '금성의 신'인 뜰라위스깔빤떼꾸뜰리(Tlahuizcalpantecuhtli)라는 긴 이름의 주 신전(간단히 신전 B라 한다) 입구의 지붕을 받치고 있던 4개의 기둥 중 하나다.
현재 뚤라에서 볼 수 있는 4개의 기둥 중 왼쪽 끝의 약간 하얀색이 모조품이다.
바깥뜰에는 뚤라의 주 신전 벽에 장식된 꼬아떼빤뜰리(Coatepantli) 즉 '뱀의 벽'이 복원되어 있다. 3단의 장식 대와 아래위에 길게 새겨진 번개무늬 사이에 인간을 잡아먹는 뱀의 모습이 양각으로 부조된 벽이다.
다시 전시실에는 제단의 기둥으로 쓰인 양팔을 머리위로 올리고 서있는 귀족 전사인 작은 아뜰란떼(Atlante)가 있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아틀라스와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아스떼까의 신화에서도 하늘이 떨어져 내렸을 때 그것을 떠받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중미 문명에서 태양과 깊은 관계를 가진 신성한 동물인 금강 앵무 머리상과 우리 나라의 나전 칠기처럼 조개 껍데기를 다듬어 모자이크한 반짝반짝한 코요테 용사 두상 그리고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전령사인 똘떼까 특유의 착-몰(Chac-mool) 상이 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몸에 딱 붙이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비스듬하게 앉은 채 배 위에 제물을 담는 접시를 놓고 불편한 자세로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바라보는 착-몰 상은 보기에도 무척 불안해 보이는 자세다.
세계적인 조각가 헨리 무어가 멕시코를 방문하여 착-몰 상을 보고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편 신격 동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인간의 얼굴 조각이나 앙상한 해골을 뜯어먹는 독수리 그리고 인간의 심장을 움켜쥔 재규어 등 잔혹한 표현들의 석상들이 많다.
이 전시실에는 뚤라와 비슷한 시기의 문명인 소치깔꼬(Xochicalco), 떼오떼낭고(Teotenango), 떼나유까(Tenayuca)의 유물들도 있다. 사실 전사들의 집단인 똘떼까 족은 떼오띠와깐 시대에 고도의 문명을 전파한 자비로운 신 '께쌀꼬아뜰'의 평화주의에 반발하여 인신 공양을 금지하는 께쌀꼬아뜰과 신관 또삘찐을 추방한다.
그리고 대신 그 자리에 인간 제물을 요구하는 전쟁과 암흑의 신 '떼스까뜰리뽀까'를 주신으로 앉힌다. 께쌀꼬아뜰은 추방당하면서 갈대 해에 다시 돌아온다는 예언을 남기고 동쪽 바다로 떠나갔다. 이 예언은 이후 아스떼까 제국에 그대로 전승되어 중미 고대 문명의 파멸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나 농경과 문화의 신으로서 께쌀꼬아뜰의 존재도 중요하였으므로 떼스까뜰리뽀까와 함께 숭배하였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신앙은 똘떼까와 아스떼까가 지닌 근본적인 모순점이 되었다. 따라서 스페인 군이 당도하기도 전에 이미 불길한 전조로 불안에 떨었을 정도로 심리적인 패배를 가졌고 예언처럼 갈대해인 1519년 스페인 군이 떼노시띠뜰란에 입성했을 때 인신 공양을 중지하라는 스페인 군들을 귀환한 께쌀꼬아뜰로 오인하여 심한 동요와 두려움으로 파멸을 자초하였다.
그럼..아스떼까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똘떼까 실을 나서구요 내친 발걸음으로 인류학 박물관중 가장 눈길을 끄는 아스떼까 문명실로 들어갑니다. 아참! 마야 문명실과 함께 쌍벽을 이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