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머물렀던 낙양성은 어느 나라 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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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군(東君)이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다.
조호익(1545~1609)(명종~선조~광해군) 지음
봄 그대는 올 적에 어디로부터 왔고 / 君之來兮從何來
떠날 적엔 또다시 어디로 떠나가나 / 君之去兮亦何去
오고 감을 아무것도 없는 데로부터 하니 / 去來皆自無何有
아무것도 없는 그곳 어디인지 모르겠네 / 不知無何是何處
지난날에 그대를 꽃필 적에 보았는데 / 逢君昔日見花開
전송하는 이 아침엔 버들개지 흩날리네 / 送君今朝飛柳絮
쉬지 않고 가는 세월 물 흐르듯 흐르나니 / 滔滔歲月流如波
인간 사는 이 세상에 며칠이나 머무르리 / 人間幾日停神馭
낙양성 성중에서 구십 일을 머무르니 / 洛陽城中九十日
신묘한 공 번번이 시인 칭송 받았다네 / 神功每入詩人譽
공 다 이룬 오늘 아침 홀연히 돌아가니 / 功成此日忽然歸
한 주전자 향기로운 술 누구와 마시리오 / 一樽香醪爲誰醑
허공 타고 훌쩍하니 떠나 자취 없으매 / 乘空冉冉去無蹤
그댈 따라 가고프나 돌아올 길이 없네 / 欲往從之歸路阻
산에 올라 예전에 노닐던 곳 돌아보니 / 登高回首舊遊處
짙푸른 녹음 속에 꾀꼬리가 우는구나 / 緣樹陰陰黃鳥語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02
조호익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 아버지는 윤신(允愼)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5년(선조 8) 경상도도사 최황(崔滉)에 의해 검독(檢督)으로 임명되었으나 부모상복을 벗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듬해 최황에 의해 평안도 강동현으로 유배당했는데, 유배지에서 후진을 양성하여 관서지방에 학풍을 진작시켰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유성룡(柳成龍)이 그의 억울한 사정을 왕에게 고해 석방되고, 금오랑(金吾郞)으로 임명되어 행재소(行在所)로 갔다. 그뒤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아 중화·상원 등지에서 일본군을 많이 죽이는 등 공을 세우고 녹피(鹿皮)를 하사받았다. 뒤이어 형조정랑이 되고, 1593년 평양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그뒤 안주부사·정주목사 등을 지내다가 병으로 사직했다.
봄이라는 신이 머문 낙양성, 무려 90일간,,의 행적은 아무런 자취가 없다. 작가 조호익은 조선인으로 중국지역에 간적이 없는데, 그가 봄을 주제로 지은 시에서 보면, 중국 낙양을 토대로 봄의 행적을 논하고 있다. 낙양하면, 조선에서 서울이라고 부르는 조선3대 서울중의 하나이다. 일종의 동경이다.
여기서 낙양은 조선의 도시로 역대 왕족들도 나들이를 자주했던 곳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낙양은 외국의 도시가 아니라 언제든 조선의 문학에 등장하는 정다운 우리나라 조선의 도시인 것이다. 또다른 실예를 들면서 오늘은 이만..
- 러브 선 의 요즘 역사![]()
낙양이 조선이 도시임을 뜻하는 실예들..
1. 성주풀이에서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게 누구냐
운하춘풍 (雲霞春風)은 미백년 (未百年)
낙양성 : 중국의 하남성 북쪽에 있는 옛 도읍지. 여기서는 “서울”의 뜻으로 쓰였다.
2. 약천집에서
엿을 무는 것 다시 낙양궁에서 보게 되니 / 含飴復見洛陽宮
옥체가 만만년 강녕하시리라 / 玉體安寧萬歲中
이로부터 삼조에 여가가 있을 것이니 / 從此三朝應有暇
천한 신하 집희의 공부 깊이 기대하네 / 小臣深望緝熙功
[주D-001]엿을 …… 되니 : 엿을 문다는 것은 원래 엿을 물어 스스로 먹고 손자들을 희롱하여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이 많은 노인이 말년에 즐겁게 여생을 보냄을 이르며, 낙양궁(洛陽宮)은 낙양에 있는 궁궐로, 낙양은 오랫동안 도읍지가 되어 서울의 대명사로 불리운다. 여기서는 대왕대비가 쾌차하여 다시 엿을 물고 손자들의 재롱을 보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3. 간이집에서
간이집 제7권 > 송도(개성)록(松都錄) >북망(北邙)에서
옛날 성곽 동북쪽으로 꽉 들어찬 무덤들 / 古城東北塚纍纍
당시에 나라가 망하는 걸 누워서들 보았겠지 / 臥閱當年國祚移
송도, 개경의 성곽 동북쪽에 무덤들이 있었다. 바로 북망산 무덤군이다. 북망산은 중국 하남성 낙양 인근에 있다. 그곳이 개경의 동북이라면, 개경,개성,송도의 위치는 바로 북망산에서 서남에 있어야 한다. 그곳이 바로 개성이며, 고려의 수도가 있는 곳이다. 바로 대륙에서의 일이다. 낙양은 개성과 그리 먼곳에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4. 심청전에서
배가 고파 울음을 우니, 아가 우지말아, 내새끼야. 너의 모친 먼데 갔다.
낙양동촌(洛陽東村) 이화정(梨花亭)에, 숙낭자(淑娘子)를 보러 갔다.
죽상체루(竹上涕淚) 오신 혼백(魂魄), 이비부인(二妃夫人) 보러 갔다.
심청어미가 갔던 곳은 (조선의) 낙양성 동쪽 촌이다.
한반도 순천에 조성된 낙양읍성...이곳이 과연 조선의 서울로 일컬을 낙양이란 말인가? 낙양은 중국 하남성 낙양을 말하며, 조선의 궁궐이 있던 곳이다.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중국 하남성 낙양동쪽 북망산 인근 북망산묘지박물관.. 지금은 조선 선조들의 무덤이 모두 파헤쳐져 흔적이 없고, 다만, 박물관만 설치되어 있단다. 조선시대까지 존재해 있었던 개성 동북쪽 북망산 묘지터.. 끝.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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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태양해 작성시간 13.04.04 낙양이 동경으로 개성과 가까이 있다니 이해가 됩니다 이성계가 천도 할때 개성 파괴 했다는 소리 들은적 없지만 지금의 북한의 개성은 성터 흔적 찾아 보기가 힘든 이유는 뭔가 멀쩡하게 두고온 개성이 왜 사라지난 사라진 이유도 없이 이상하다 하였는데 대륙에 개성 있어군요 그러니 북한에서 개성궁궐 찾아 보아야 성터만 있지 궁궐은 없조 허구 반도설때문에 고생이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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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른바람 작성시간 13.04.12 중국 낙양성 사진도 좀 올리면 좋을텐테 멘날 말로만 믿어라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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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러브 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4.12 낙양성 사진은 인터넷상 구할 수 없습니다.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낙양성이 한반도 낙양과는 다른 잃어버린 우리나라 조선의 고도임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