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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사

대조선의 지구촌역사 2

작성자러브 선|작성시간08.12.20|조회수988 목록 댓글 0

  • 글쓴이: 지명선
  • 조회수 : 445
  • 08.09.0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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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구촌내의 대조선흔적

 

(1) 아메리카

 

1) 최근에 알려진 북미의 피라밋은 배달의 유적 (08.5.21)

미국 일리노이주 커호키아(Cahokia) 피라밋 발견 (BC 3000년추정)

 

 

 

 

 

2) 아나사지문명(Anasazi civilization)은 배달의 후예문명 (08.5.3)

100년 아나사지문명 애리조나 뉴멕시코,콜로라도 유타에서 발원하다. 아나사지는 나바호어로 옛날의 것이라는 뜻이다. Anasazi civilization에는 수렵과 야생식물 채취가 성행했고,

옥수수와 호박 경작을 통해 식량을 조달했다.

뛰어난 바구니 제조 기술을가지고 있었고, 동굴에 거주하거나 석조 기둥과 아도비 벽돌로 만든 가옥에 살았다 . 절벽 궁전 에는 장식주택 ,키바(북미 Pueblo 인디언의 지하실 큰 방)등이 있으며 서남지방의 유적에 해당된다.

 

 

 

 

 

3) 중남미의 피라밋은 배달의 유적

멕시코중남부의 아즈텍 피라밋.

 

 

 

 

4) 이씨족은 대조선의 이주민( 인디언 이시이족=李씨족 ,김재관저,08.4.8)

북미원주민에 이씨족이 있읍니다  대륙조선의 명확한 흔적이다.  이전까지 북미에서 조선의 흔적이 나타난것은 아나사지문명이 있었고, 피라밋의 발견이 있었고, 조선의 문화인 멧돌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몽고반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씨조선을 상징하는 이씨족 =이시이족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자를 썼던 것이다. 

이번에는 이씨와 더불어 한자사용, 한국인과  혈연관계의 일치, 짚신신기, 머리땋기, 한국말과 비슷한 말(토론토=토론하는 터, 아파치=아버지, 코시앵해=고생해, 웅주마티=곰이 많지등)이 많다.

 인디언 중에 '이시이' 족이라고 있다. 이 이시이 족이 쓰고 있는 깃발을 보면 갑골문자로 나무 목 자와 아들 자 자를 기록해 두었다. 나무 목(木) 자 밑에 아들 자(子) 자가 있으면 한자 말로 무엇입니까? '오얏 이(李)' 자 이씨(李氏) 가 '이시이'가 된 것이다.

 

5) 신라의 지명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 스크랩,08.5.19)

스페인의 지명에 Silla와 Sila가 있다. 또 이들 지명이 Corea란 지명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 참고 : 잃어버린역사,보이는 흔적

 

6) 갓쓴 조선인 (이어서 멘지스 홈피에 오른 기마 사울아비? 김환. 08.5.19)

1600년대 근세조선때 중남미 페루에서 조선의 고유영토임을 증거하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단지 중국의 것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그림의 갓을 보니 말탄 조선양반들임을 알 수 있다.

 

 

홈피의 설명-Horsemen (말탄사람)  "안토니오 델라 칼랑차"가 페루의 트루일로라는 곳에 도착했을때 발견한 중국아니면 일본인으로 보이는 그림의 사본이다."  

 

7)한자

청화백자, 벼농사, 성벽쌓기 등 캘리포니아의 흔적 외에 한자가 기록된 엽전이 발견되었다.

- 1421년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캐빈 멘지스지음, 조행복옮김.

 

8)나전칠기

대륙에서 4000년의 역사를 가졌고, 베트남(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도 성행했으며 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되었다.

 

9) 윷놀이 (멕시코가 조선인 증거 <윷놀이 문화> 08.5.23)

인디언과 한국인의 윷놀이 페스티발- 1893년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는 코리아 역사상 최초로 참가한 국제행사였다. 그 당시 한국전시관이었던 Corea Exhibit의 위치를 찾아내 한국의 연합뉴스 등에 크게 보도된 바 있는 1893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회장 김성규)가 이번에는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역사적으로 최초로 코리안 인디언 합동 윷놀이 축제를 개최했다.  

 

시카고 박람회 당시 서양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진 코리안 윷을 본 스튜어트 컬린은 그의 <한국의 놀이>(1895년 발행)에서 '코리안 윷놀이는 세계의 모든 윷종류의 원형'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을 복원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노력해온 본 기념사업회 회장으로서 필자는 지난해 2006년 2월 시카고 인근에서 코리안 윷과 거의 일치하는 인디언 윷과 윷말판을 발견하여 동포사회에 크고 보도된 바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0) 조선아메리카

조선인들이 남미를 경영했다는 언어상의 증거도 있다. 항해하는 선박은 콜롬비아로 참반인데 대륙조선어로는 삼판이며, 뗏목은 남미에서는 발사, 대륙조선에서는 팔소라고 하며, 브라질에서는 잔가다, 타밀에서는 지안가다라고 한다.

 

페루의 어느 산촌사람들은 19세기말까지 대륙조선어로 말했다. 난파선, 혈액형, 건축술, 그림, 관습, 언어, 의복, 기술, 공예품, 염료, 조선과 남미사이를 이동했던 식물과 동물등 산더미 같은 증거들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긴 태평양 연안과 내륙에 널리 퍼진 조선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 영향이 너무나 깊고 넓어 그 시기의 아메리카대륙은 "중국(조선) 아메리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이다. -- 1421년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캐빈 멘지스지음,

 

10-1) 신라의  개미핥기는 아메리카가 신라의  영역이었음을 뜻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라사 전에 보면 동물토우인형중 개미핥기, 원숭이가 있었다. 개미핥기는 주로 북아메리카의 멕시코, 남아메리카의 우르과이,북아르헨티나등 열대지방에 분포한다. 아메리카지역의 신라란 지명과 더불어 개미핥기의 표현은 신라인들의 발길이 아메리카에 빈번했다는 사실이고 그곳이 신라의 영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2) 호주

11)조선인의 흔적

근세조선 태종때 홍보제독의 함대중 일부가 난파되어 호주 빅토리아주부근에 있었는데, 그 지점에 살았던 양제리족사이에는 황인들(조선인)이 그들가운데 정착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족속의 피부빛에서 사실을 판단할 수 있으며 함대의 방사선 탄소 측정법으로 검사한 결과 조선태종때에 가까운 것으로 논증되었다고 한다. 

<중국인(조선인)의 호주발견>을 쓴 위취현교수는 난파된 자들이 머레이에서 쿡타운까지 갔다고 했고, 중국인(조선인)기병들이 부근의 강들을 답사했다고 한다. 조선인 홍보는 세계최초로 마젤란해협을 통과했고, 남극을 발견했으며, 호주남부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의 살아남은 배에는 비단 같은 보물이 가득차서 호주 서부해안에서 본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거래할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호주에 조선이 세운 관측대가 브리즈번에 있고, 원주민들이 그들을 보았다는 곳이 여섯군데나 되며,조선인이 세운 비석이 케언즈, 캔버라, 퍼스등지 지금도 있다고 한다. 

조선 보선단의 공예품들이 시드니,브리즈번, 다윈동쪽등지에 있고, 조선함대 난파선만 호주 사방에 8척정도 있다고 한다. 호주가 미개하고 문명이 뒤떨어졌다는  인류학자의 말은 믿을 수 없다.  -1421년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캐빈 멘지스지음,

 

 

(3) 아프리카

12)이집트의 피라밋은 배달의 유적 (BC3000년경)

 

13)백제내의 아프리카동물들 (08.8.8)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백제금동대향로에 보면 동물중 코끼리,사자,악어가 있었다. 이는 백제가 아프리카와 멀지 않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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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

 

(4) 아시아

14) 페르시아는 부여인가- ( 페르시아는 주몽이 탈출한 부여이다 08.6.21)

페르시아는 주몽의 모국 부여였고, 부여의 대소왕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이었다. 그리고  동부여가 위치했던 가섭원이라는 곳은 지금의 카스피해였다. 따라서 중동은 우리나라의 부여,고구려의 역사의 고향이다. 

북부여, 동부여는 카스피해의 서남쪽, 동남쪽에 이르는 오늘날 터키, 이란땅으로 밝혀지고 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의 부친인 캄비세스가 부여의 금와왕으로 보인다. 캄비세스의 cam은  금을 나타내며, 황금의 아이를 나은 자안패가 cowrie인데, 카우리는 고려, 가우구리이고, 이는 고구려, 개구리와 연관성이 있다. 

 금와왕은 아이때에 금빛 개구리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당시 부여왕 해부루에 의해서 양자로 들여와 태자가 되었다.

 

삼국사기 고려본기에 의하면 부여의 재상 아란불이 "요전날 천제께서 제게 내려와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 나라를 세우고자 하니 너희는 이곳을 피해가라. 동쪽바닷가에 가섭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져서 도읍할 만 곳이다."라고 하였고 부여 해부루왕에게 권해 그 곳에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 하였다. 

그곳 가섭원, 카스피해연안에는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예전부터 와서 도읍을 정해놓고 있었다고 한다. 해모수는 하백의 딸 유화를 정을 나눠 주몽을 낳고  어느날 사라진다. 부여의 금와왕이 아이를 밴 유화를 만나 후처로 기용을 하고, 유화는 주몽을 낳는다.

 

주몽은 성장하여 천재적인 소질로 인하여 금와왕의 아들 대소와 적대감을 이루다가 도주하여 해모수의 나라 메디아제국으로 들어간다. 주몽이 간곳은 메디아제국내 졸본부여이고, 졸본은 투르판이며 박트리아의 동쪽에 있다.  

지중해문화와 단군조선(박용숙저)에 보면 페르시아는 이란의 페르시스주에서 따왔고, 페르시, 파르스는 푸르, 부르,불이고 불(火)이 부여로 전음되었다고 했읍니다.  그래서 페르시아가 부여가 되는 것이다.

 

15) 중앙아시아 고구려성의 흔적 (중앙아시아의 성벽과 고구려 성벽.08.3.5)

고구려의 치성과 옹성은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중국보다 더 이른 시기에 독창적으로 창안한 축성법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고구려의 산성 축성법은 후대에도 계속 한국의 중요한 전통으로 내려왔다.

조선시대 유성룡의 산성론을 보면 이러한 방어체계는 한국의 전통으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을 알수 있다.  호레즘의 성곽에 치와 옹성이 너무도 잘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대략 2-6세기에 사용된 호레즘의 40여 성곽 가운데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토프라카라와 아요즈카라(카라는 곧 성이란 뜻)에 대한 슬라이드를 보았는데, 고구려의 옹문과 치와 너무도 유사했습니다.(김용만,고구려의 재발견)

 

16) 인도는 가야의 본국-( 가야의 파형동기가 맞나?.08.3.9)

시집온 공주(허황옥황후)는 이웃국 사람. 허황옥 황후는 아유타국공주로 인도 갠지스강 유역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와 한반도는 너무나 멀고 통신시설도 발달안된 상황에서 바로 도착해서 결혼했다는 것은 좀 이해가 안된다. 두 왕국은 가까워야 정답이다.

 

한반도 남부의 허황후의 릉이 사실인지 증명할 수 없다. 릉이 있다면 중원대륙남부나 인도에 있어야 한다.  허황후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 그 사서의 근거는 절대 한반도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부에 허황후 릉이 있으면 황릉도 같이 있어야 하는데 혼자 별개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실여부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17) 동남아, 서남아는 백제의 강역-( 東方의 로마帝國 百濟 2 .08.3.5)

동남아는 담로를 뜻하는 지명들이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백제유물에 駱駝낙타문양이 있음은 백제의 영토가 동남아를 비롯하여  인도 서북부지방, 그리고 대륙의 신장성, 초원,사막지대인 중앙아시아지역으로  뻗어 갔음을 의미한다. 아주 놀라운 사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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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백제의 담로지명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법왕(法王) 1년(599년) 7월에 백제에서 낙타 한 마리, 나귀 한 마리, 양 두 마리, 흰꿩 한 마리를보내왔다" 고 나오고, <살아있는 백제사(이도학지음)> 의 451쪽에 "백제땅에는 남방조류인 공작과 앵무새 그리고 건조지대에 서식하는 낙타, 초원의 목축인 양도 서식할수 있었다." 고 서술되어 있다.

 

18) 서안의 신라 진덕여왕 (황제)묘, (08.5.3)

다음블로그 향고도, 중국고지도,장안지에 수록된 장안지도에서 보면 섬서성 서안에 신라 진덕여왕(황제)묘가 표기된 것을 볼 수가 있다.

진덕여왕(황제)의 묘는 원나라,이호문이 편찬한 장안지도 중권의 능도, 당소릉도 하 편에 나온다.  그 그림중 왼쪽상단에 등?심사 옆에 있다. 장안지도 중권 소릉도설에는 진덕여왕(황제)가 신라낙랑군왕 김진덕으로 나오고 여황제를 포함하여 황제의 초형상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장안지도는 장안지에 있는데, 장안지는 북송 송민구(1019~1079)가 편찬했고 20권으로 되어 있다. 이중 부본3권이 있는데, 이중에 장안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장안지는 서안의 장안성,임동,보계,상원의 지리,건축,묘지등을 기록한 대륙(고려)의 사서이다.

 

섬서성 서안에 신라 진덕여왕(황제, 647~654)의 묘가 나온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신라가 중국에 신라방으로만 존재해 있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깬것이다. 신라는 대륙에 본거지로 있었고, 대륙에서 통일제국으로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예가 된다.

 

(5) 유럽

19) 동유럽은 배달의 땅-피라밋발견(보스니아 피라미드,이간, 08.5.17)

동유럽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북쪽으로 22KM지점. 비스코시에 있다.  모두 3개였는데 높은 곳은 220M이다.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에 이어 최초로 유럽에서 발견된 것이다.

 

 

 

 

20) 로마제국은 대진국이다. (대진(大秦)은 로마라는 확실한 증거 ,조용정,08.5.19)  

위키페디아에 다윈(Daqin)에 표기된 것으로 백인들이 직접 인정하는 내용이다.  로마의 중국식 이름이라고 언급해 놓았다. AD97년경 Gan Ying 이란 중국(고구려계)의 장군이 흑해까지 진출해서 로마를 세웠다고 하고 이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키가 크고 정직하다고 했다.

 

그들은 중앙 왕국(Middle Kingdom, 조정)의 사람들과 닮아서 대진(大秦, 큰 중국) 이라고 불린다. 위에서 나온 중국이 고구려라고 가정하고, 당시 고구려의 중앙조정, 중원이 중앙아시아 부근에 있었다면 사람들은 고구려의 중원과 로마의 국민들은 비슷한 생김새라고 보인다.로마는 금은보화가 많이 나오고, 로마(대진)의 다른 이름은 "Lijian" 과 "Kingdom of Haixi (바다의 서쪽)" 이다. 로마인들은 집을 모두 돌로 짓고, 왕은 영속적으로 집권하지 못하며 가장 뛰어난 자가 투표를 통해 선출되고 만약 국가에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이 나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며 그 결정에 이의를 갖지 않는다고 나온다.

 

21) 북유럽의 아틸라제국 고구려분국 (유럽대륙의 훈족은 고구려인이었다 08.3.5) 미국의 한윤수님의 글<전 世界의 언어는 동방문자를 주축으로 하는 고대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이 지난 1997년 미국의 Cable TV The Learning Chanell에서 Atilla the Hun 이라는 1시간 짜리 다큐멘타리로 방영되었다. 이 내용은 박대종님의 "전 세계의 언어는 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인들은 그들을 "훈(Huns)"이라고 불렀다. 본국 고려(Korea; 고구려의 준말) 땅에서 일어난 그들은 4세기 기간중에 로마 제국을 쳐들어왔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는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이라고 기록했으며 그뒤의 유럽인들은 그들을 몽골인이라고 불렀다. 4세기 초 무렵, 상당수의 반유목 종족은 오늘날 Korea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본토에서 만주 동부로 떠나게 되었다. 그 길을 따라 이민족들을 규합하면서 그들은 중앙아시아쪽으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종족 대부분은 서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당시는 고구려 광개토황제가 대륙에 집권하던 시기이다. 훈은 또다른 고구려세력으로 고구려계인 대진을 무너뜨린다. 

 

22) 스페인의 신라지명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 스크랩,08.5.19)

스페인의 지명에 Silla와 Sila가 있음을 알았다 이외에 Silla, Sila, Corea란 이들 지명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성姓씨로도 존재하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신라지명, sila나 silla, silah로 발음되는 지명이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소말리아에서 탄자니아에 이르는 아프리카 동부에서 신라란 단어가 쓰이고 인도양과 동남아시아엔 Sila, 또는 Sila-란 접두어가 포함된 지명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열거해 보면 스리랑카(3곳), 태국(2곳), 필리핀(6곳), 인도네시아(10여 곳) 등인데, 심지어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도 한곳이 존재한다.

 

23) 유럽엔 조선계가 있다. 조선계는 지중해연안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소이다. 그러나 그들이 먹는채소를 조선의 채소라 명명되어졌다.  이는 독일까지 조선의 땅이라 했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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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조선사의 부활

최초의 국가 환국이 유라시아에서 처음 태동하고,

이후 배달이 생기어 유라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다스렸으며 ,

삼국시대에는 유라시아에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유라시아에서,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영역을 다시 확대했고,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지구촌경영이 계속되었다.

이후 조선의 문화를 받아들여 산업혁명에 성공한 서구들의 등장으로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대조선의 지구촌역사2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의 천하도=지구촌이 조선의 통치권역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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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론

1) 본 연구를 통하여 대조선의 숨겨진 역사를 발견하여 증거했으며 조선은 지구촌의 강자이고 조선이 바로 지구자체임을 알 수 있었다.

2) 대조선은 1만년전부터 최초의 국가로 생긴이래 지구촌 곳곳에서 역사적으로 역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근세조선때에는 동시대에 유일무이한 대제국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본 연구는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4) 역사의 진실을 밝히므로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미래의 리스크에 대한 대처를 슬기롭게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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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네요. 그간 몇 번 정리하려 시도는 해봤지만 편집하면서 내팽개치곤 했는데.. 08.09.02 04:56

아묵리가 피라밋 말인데, 그레이트 서펜트 마운드 자료 2번째를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요새 사이트에 잠깐 들렀다 가는 정도입니다. 08.09.03 00:16

고맙습니다. 08.09.04 22:12

정말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08.09.0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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