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영토크기는 만리이다.
글쓴이: 지명선 조회수 : 773 08.05.20 00:50
** 고려의 영토크기는 아래와 같이 사서에 나온다.
1. 조선 세조 1년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梁誠之)가 상소하기를,
" 우리 동방 사람들은 대대로 요수(遼水) 동쪽에 살았으며, 만리지국(萬里之國)< 넓이가
만리 (약 4천 키로미터)되는 나라, 고조선에서부터 고려까지 >라 불렸습니다.”
2. 고려사 지리편에
“고려강토가 만리이다”라고 쓰여있다..
3. 고려사절요 원종1년 3월 에
“ 왕의 동생이 놀라고 기뻐서 말한다. <고려는 만리의 나라다.>”
4. 고려사절요에 고려 17대 인종 14년 동 10월, 송의 왕안석이 고려황제에게 충언함.
“고려는 만리의 나라이니 통치에 유의하소서”
5. 고려도경에서 송나라 서긍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중원이 고려라 생각하고, 남은 요해(복건성 및 남지나해), 서는 요수(천산산맥의
황하상류지역, 양자강 중류 한수의 지류?) , 북은 거란의 옛땅(몽골지역), 동은 거란
(하북),금(만주),일본,유구국(대만?),탐라국(산동성),흑수모인국등의 나라와 접한다.
고려의 서울동쪽은 회지방의 남인 절강성과 광동성의 두성이고 남으론 복건성으로
모두 갈수있다. 고려의 서북은 대요가 침략해 내원성(감숙성 무산현)을 쌓았는데.
압록강의 험하고 견고한곳에 의지하여 쌓았다.“
6. 몽골왕조실록에는
“고려왕(25대 충렬왕~공민왕)을 심양왕으로 지정했다. ”고 하여 심양(만주)지역이
고려 땅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7. 명사 320권,외국전,외국1. 조선원문에서
“국명은 고려이고, 송악에 도읍했으며. 북은 글안이고 , 서는 여직(여진)이며, 남은
일본이다.”
8. 왕건이 평양을 서경으로 바꿈. 원사지리지 264페이지에서
서경을 동녕부로 바꾸고(원나라, 지원8년 1264~1294) 동녕부를 동녕총관부로 승격함.
(원 지원 13년)
9. 高麗史와 대륙 정사서에 쓰여져 있는 고려는 대륙1만리 강역에서 황도는 개경으로
낙양(서긍의 고려도경에서 숭산남쪽에 개경이라함. 숭산은 현재 낙양에 있음)이고
서안이 서경어었다 <일설에는 개경이 개봉,서안,성도이라 함 > 고려 광종은 즉위 11
년(960)에 개경(開京:開封)을 황도라 함.
10. 993년에 요(遼)의 80만 대군이 고려에 침입하였을 때에 고려의 내사시랑(內史侍郞)
서희(徐熙)가 단신으로 적장 소손녕(蕭遜寧)을 만나 외교 담판을 벌인 자리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고구려의 옛 국도(國都)였던 서경(西京)(=평양,서안)이 고려
영토로 포함되어 있다. 고구려 땅의 경계로 따진다면 요나라의 동경(東京)도 그 경계
안에 있다."고 반박하여 오히려 강동 6주를 회복하기도 하였습니다
** 고려유적 추정지: 왕건묘
중국정부는 "전촉왕 왕건묘" 현지에서는 토속거주인은 "가우리(고려) 왕건묘" 라 부른
다. 청뚜 시내의 영릉로에 있는 전촉왕 왕건묘 영릉임. 10세기 초 혼란기에 성도를 중심으
로 전촉(前蜀:903~925)을 세운 왕건의 묘로 永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려태조 왕건
의 묘인지 불확실한 상태이다.
적사암으로 만든 묘실은 전실과 중실, 후실로 나뉘고, 전 길이 23.4㎝로 관좌양측에는
12위의 역사상(力士像)이 늘어서 있고, 동. 서. 남의 3방에는 24위의 각종 악기를 연
주하는 기생상이 새겨져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의 특징을 보면 각각의 그림이 각
기 다른 자태와 조형의 미를 보여주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왕건의 묘는 1942년에 발굴되었고 1961년 국무원에 의하여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는데 무덤의 길이는 80m정도에 15m높이로 묘실이 남아 있다
고려의 봉경이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지네요 08.04.13 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