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왕건의 10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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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 26년(943), 후진 출제(出帝) 잉칭(仍稱) 천복 8년ㆍ거란 회동 6년
1조는, 우리나라의 대업(大業)은 반드시 여러 부처님의 호위를 힘입었다. 그러므로 선종(禪宗)ㆍ교종(敎宗)의 사원을 창건하고 주지(住持)를 임명하여 분수(焚修)하여 각각 그 업(業)을 다스리도록 하였는데, 훗날 간특한 신하가 정권을 잡으면서 중의 청탁을 들어주어 사원(寺院)을 다투어 서로 바꾸고 빼앗으니 꼭 이를 금지할 것이다.
2조는, 모든 사원은 모두 도선(道詵)이 산수(山水)의 순역(順逆)의 형세를 추점(推占)하여 개창한 것이다. 도선이 말하기를, '내가 추점하여 정한 외에 함부로 더 창건하면 지덕(地德)을 손상시켜 왕업이 장구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으니, 짐이 생각건대, 후세의 국왕ㆍ공후(公侯)ㆍ후비(后妃)ㆍ조신(朝臣)들이 각기 원당(願堂)이라 일컬으면서 행여 더 창건할까 크게 근심스럽다. 신라의 말기에 사탑(寺塔)을 앞다투어 짓다가 지덕을 손상시켜 망하기까지 하였으니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3조는, 적자(嫡子)ㆍ적손(嫡孫)에게 나라를 전하고 집안을 전하는 것이 비록 상례(常禮)라 하지마는, 요의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하므로 요는 순에게 선위(禪位)했으니 실로 공심(公心)인 것이다. 무릇 원자(元子)가 불초하거든 그 차자(次子)에게 전하여 주고, 차자가 모두 불초하거든 그 형제 중에서 뭇 신하들이 추대하는 자에게 전하여 주어 대통(大統)을 계승하게 하라.
4조는, 우리 동방은 옛날부터 당(唐) 나라의 풍속을 본받아 문물과 예악이 모두 그 제도를 준수하여 왔으나, 나라가 다르면 사람의 성품도 다르니 반드시 구차히 같게 하려 하지 말라. 거란(契丹)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나라이므로 풍속이 같지 않고 언어 역시 다르니 부디 의관(衣冠) 제도를 본받지 말라.
5조는, 짐은 삼한 산천의 드러나지 않은 도움을 힘입어 대업을 성취하였다. 서경(西京) (평양,장안,서안?)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地脈)의 근본이 되니, 마땅히 사계절의 중월(仲月)에는 행차하여 백 날이 넘도록 머물러 나라의 안녕(安寧)을 이루도록 하라.
6조는, 연등(燃燈)은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고, 팔관(八關)은 천령(天靈)ㆍ오악(五嶽) (서악화산,중악숭산,동악태산, 북악항상,남악형산?)과 명산(名山)ㆍ대천(大川)과 용신(龍神)을 섬기는 것이다. 훗날 간특한 신하가 더하거나 줄이자고 건의하는 자가 있으면 꼭 그것을 금지해야 한다. 나 역시 처음부터 마음에 맹세하기를 법회일(法會日)은 국기일(國忌日)을 침범하지 않으며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기로 하였으니 공경스러이 이에 따라 행해야 한다.
7조는, 왕이 신하와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마음을 얻으려면, 간(諫)하는 말을 따르고 참소를 멀리하는 데 요점이 있을 뿐이니, 간하는 말을 따르면 성스럽게 되며, 꿀처럼 달디단 참소도 믿지 않으면 참소가 저절로 그치는 것이다. 또 백성을 시기에 맞추어 부리고 부역을 가볍게 하며, 납세를 적게 해 주고, 농사의 어려움을 알아 주면, 저절로 민심을 얻어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이 편안해질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고소한 미끼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고기가 낚시에 걸리고, 상을 중하게 주는 곳에는 반드시 훌륭한 장수가 있으며, 활을 당기는 앞에는 반드시 새가 피하고, 인덕(仁德)을 베푸는 곳에는 반드시 선량한 백성이 있다.'고 하였으니, 상벌이 정당하면 음양이 순조로울 것이다.
8조는, 차현(車峴 차령산맥(車嶺山脈)) 이남과 공주강(公州江) 밖은 산형(山形)과 지세가 모두 배역(背逆)하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의 주ㆍ군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ㆍ국척(國戚)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국가를 변란하게 하거나 백제가 통합당한 원망을 품고 임금의 거둥하는 길을 범하여 난리를 일으킬 것이며, 또 일찍이 관청의 노비와 진(津)ㆍ역(驛)의 잡척(雜尺)에 속했던 무리들이 권세 있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신역을 면하거나 왕후(王侯)나 궁원(宮院)에 붙어 말을 간사하고 교묘하게 하여 권세를 부리고 정치를 어지럽혀서 재변(災變)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그 선량한 백성일지라도 벼슬 자리에 두어 권세를 부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9조는, 모든 제후(諸侯)와 뭇 관료들의 녹은 나라의 크기에 따라 이미 제도가 정해져 있으니 늘이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 또 고전(古典)에, '공적(功績)에 따라 녹을 제정하고, 관작(官爵)은 사정(私情)으로 주지 않는다.' 하였으니, 만약 공이 없는 사람이거나 친척ㆍ사사로이 친한 사람들이 헛되이 국록을 받게 되면 백성이 원망하고 비방할 뿐만 아니라 그 본인들 역시 복록(福祿)을 길이 누리지 못할 것이니 꼭 이를 경계해야 한다. 또 강하고 악한 나라(거란(契丹)을 가리킴)가 이웃하고 있으니 편안한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병졸에게는 보호하고 구휼하며 부역을 참작하여 면제해 주어야 하며, 해마다 가을에는 용맹하고 날랜 인재를 사열(査閱)하여 그 중에서 뛰어난 자는 알맞게 계급을 올려 주어야 한다.
10조는, 나라나 가정을 가진 이는 근심이 없을 때에 경계를 하여야 하니, 널리 경사(經史)를 보아 옛 일을 거울삼아서 오늘날의 일을 경계하라. 대성인이신 주공(周公)도 무일(無逸) 한 편을 성왕(成王)에게 올려 경계하도록 하였으니, 마땅히 그림을 그려 벽에 걸어 두고 출입할 적에 보고 반성하여야 한다." 하였다.
10훈요의 끝마다 모두 '마음속에 이를 간직하라.[中心藏之]'는 네 글자로 끝맺었다. 이로부터 왕위를 이은 왕들이 서로 전하여 보배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