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사에서 14세기 중,후반(원말과 명초)역사를 치장하는 홍건적이자 홍두적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써서
생겨난 도적떼들의 호칭이다.그 시대에 도적이 아닌 놈들이 얼마나 되겠냐 만은, 아무튼 홍건적의 탄생은
흉년과 기근으로 부터 시작됐다.홍건적의 최초 발호는 원나라 지정 11년(1351년: 고려 공민왕 원년)으며 가장
큰 직접 원인은 1344년(지정4년)에 있었던 황하의 대범람으로 부터 시작된다.이때 황하의 중, 하류 유역과
인근(淮水의 상류)지역의 범람으로 인해 기존의 강줄기를 바꿔놓는 대홍수가 있었다.결과는 뻔한 것이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살아 있는자들 조차 생존이 위급한 처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때 황하의 물줄기는 그동안의 흐름은 '하남성 개봉 동쪽에서->산동의 조현을 거쳐 ->강소의 북부지방인
서주와 회음을 거친후 ->강소의 연수와 빈해를 경유해 ->지금의 강소 앞바다인 황해로 흘러가는 남방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범람으로 황하가 갑자기 흐름을 바꾸어 이때 부터는 하남에서 ->산동성 북부인
동명과 제남을 거쳐 ->빈주와 동영을 경유해 -> 북부의 발해로' 흘러 들어가게 된것이다.
이러자 기존의 황하가 흐르던 지역의 주민들은 홍수의 피해에 이은 가뭄과 강 흐름의 변동으로 하루 아침에
생활 터전을 잃게되는 크나 큰 망실이 있게된 것이다.이곳 범람 지역의 주민들과 인근지역 주민들은 마침내
살길을 모색 하는데 이럴때 자연스럽게 생겨 난것이 바로 홍건적(홍두적)같은 도적이다.사실 도적이 아닌자
와 도적인자를 구분 한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또 도적이나 강도가
되고 싶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환겨을 뒷 배경으로해 발생한 홍건적(홍두적)들의 흥기는 한말의 한국사
에서 찾는다면 수많은 민란들과 갑오농민들의 생존투쟁과 유사하다고 할수가 있다.단지 규모가 크고 작고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런 황하의 기본 물줄기 변동은 이후에도 수시로 이루워 지다가 청나라 함풍제 3년에서 5년(1853~1855년)
사이에 그동안 남쪽(강소성 서주 방향) 으로 흐르던 흐름을 또 홍수와 범람으로 인해 또 북(산동성 제남방향)
으로 바꾼후 지금까지 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유역의 대대적인 제방공사를 하기전의 황하는 수시로 범람을
했었던 전력이 있었다.장개석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북벌을 단행했을때 황하의 제방을 고의로 파괴해
유리함을 모색 하기도 했었다.
2, 옛날이나 지금이나 굶주림의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은 결국 한곳으로 모이게 마련이고 생존을 위해서 모색할수
있는 일이란 것도 결국 도둑질이나 뺏는 것(강도질) 이외는 할수 있는 것이 없는 것 아닌가.처지가 비슷한 사람들
이고 보니 단합도 아주 잘 됐었다.굶어 죽으나 잡혀 맞아 죽이나 매 일반 이니까.우선은 피햬가 극심했던 하남의
동부지방과 산동의 서부지역에서 백련교도 였던 한산동과 유복통이 최초로 거병 했으나 싸움에서 한산동이 패사
함으로서 1차적인 거병은 실패를 한다.
그러나 그 이듬해(1352년) 안휘 북부에서 곽자흥이 거병해 안휘의 호주(濠州:지금의 안휘성 봉양)를 점령 했을때
명(明)을 건국 했다는 강소성 패현 출신의 주원장도 도적떼인 홍건적의 곽자홍 무리에 가담을 한다.이때 장사성도
강소성의 태주(대풍과 염성)에서 거병해 고수(고수호가 있는 강도의 북쪽)를 점령한후 자칭 성왕으로 칭하고 국호를
대주(大周)로, 년호를 천우(天祐)로 하는 짧은 수명의 황제국을 건국한다.그리고는 장강을 넘어 소주지역 등으로
진격한다.이때 방국진은 절강의 온주와 태주, 임해와 천태 지역에서 막강한 지방 권력자로 독립적 국가를 자칭한다.
장사성이나 방국진의 공통점은 소금장사로 당시의 국가들을 능가하는 대부호 였다는 것이다.고려사에 의하면 이때의
장사성과 방국진은 고려로 조공물 바치기에 분주했었다고 쓰고있다.문제는 그 고려가 반도가 아닌 대륙의 고려
였다는 것이 문제다.
아무튼 황하일대와 그 남쪽지방과 회수유역 장강유역 모두가 먹거리를 찾아헤매는 크고 작은 도적떼들로 들끓고
있었던 혼란과 혼란이 겹쳐지는 카오스 시대였던 것이다.그런 와중에도 도적떼들은 황하유역의 굶주림을 극복해
보려고 마침내 물산이 풍부한 강남을 호시탐탐 점령하려 했다.이것을 마침내 실행으로 옮긴 홍건적이란 도적떼
들은 장강유역의 곳곳을 원정해 죽기 살기로 침공과 약탈을 했다.이때의 화중과 장강 유역은 도적패들의 세상으로
그 누구도 이런 혼란 상황을 평정할수가 없었다.도둑들끼리 싸우다 자쳐서 다 죽든가 아니면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겠다고 연합하기 전에는 수습이 전혀 불가능한 시대가 지속 되고 있었던 것이다.
3, 반란들은 지정15년(1355년)에는 홍건적중 한산동의 아들인 한림아가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소명제(小明帝)가
되고 국호를 송(宋)으로 쓰기도 했다. 이들은 안휘성 최 북서쪽의 박주를 도읍으로 정했으며 이때 곽자홍이 갑자기
죽어 같은 도둑이었던 주원장이 곽자홍을 대신해 홍건적 파벌의 수장으로 등극한다.지정 16년(1356년)에는 마침내
장사성이 남침해 강남의 소주 주변을 모두 점령하고 주왕(周王)으로 ,주원장은 대신 남경을 초토화 시키고는 스스로
오국공으로 칭한다.지정18년(1358)에는 유복통이 하남의 개봉(변량)을 점령한후 홍건적들의 도읍으로 삼을때 강동
소주의 장사성은 또 항주와 소흥을 점령해 초토화 시킨다.마침내 강남의 곳곳이 민란이고 전쟁의 한마당 이었다.
지정 21년(1361년)이 되면 주원장의 홍건적이 같은 홍건적의 진우량 군을 지금의 강남 강주(江州: 강서성 구강시)
에서 격파해 주도권을 장악하고,지정23년(1363년)에는 박주의 유복통이 패사를 한다. 진우량도 강서성 파양호
싸움에서 주원장에게 패하여 전사한다.장사성이 소주에서 스스로 오왕임을 칭하고 군림할때 주원장도 이듬해(1364년)
호북성 무창(武昌:무한)을 점령해 독립적 지도자로 등극한다.지정26년(1366년)이 되면 홍건적들의 난동이 서서히
평정되기 시작하는데,우선 한림아가 죽고 홍건적들의 본부 였던 호주(濠州:안휘성),숙주(宿州:안휘성),서주(徐州:강소성)
등 산동의 서부지역, 하남의 남동부,안휘의 북서부 지역들이 홍건적의 분파인 주원장에 의해 평정되기 시작한다고
역사는 쓰고 있다. 지정27년(1367년)에는 주원장이 소주를 점령하자 장사성은 자살을 하고, 방국진은 투항을 한다.
마침내 지정 28년(1368년)이 되면 홍건적의 주원장이 모든 홍건적을 평정한 두목 자격으로 지금의 남경에서 홍무제란
황제로 등극하고 국호를 명(明)으로 하면서 홍건적들의 소멸과 함께 역사의 명나라 건국 원 멸망 공식을 만들어 낸다.
* 여기 까지가 고려를 침공했다는 홍건적들의 탄생과 활동 소멸의 배경입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