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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석교수실

미국의 하와이와 사모아 먹기(침략->합병)...(1)....

작성자상선거사|작성시간15.10.16|조회수384 목록 댓글 6

1,미국(USA)은 건국 초기부터 팽창주의를 내세운 나라였다.그래서 세계의 많은 역사 학자들은 미국을 '강도귀족' 의

나라 라고 부른다.왜냐하면 팽창주의자들은 전쟁을 일으켜 남의 것을 '뺏거나,훔치거나, 폭력을 써서 헐값매수' 하는

수법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이다.해외에서 미국의 이런 전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19세기 전반부 미 백인들 중심으로

행해진 '서부개척(프런티어)' 이란 말이나 '언덕을 넘어(over the hill)' 와 같은 표현의 이면 그림은 '약탈,방화,살인,

추방,강도' 와 같은 행위가 전부였다.인본주의나 인권 중시는 아예 없었다.선주민인 인디언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그들

의 식량인 미국의 들소(버펄로)들을 몰살시키는 행위도 서슴없이 저질렀던 미국의 백인들 이었다.아이러니 한것은 

이들의 대부분은 약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기독교 경전을 끼고 다녔던 기독교도 였다는 사실이고,기독교

신의 이름을 늘 제창하며 선주민들을 추방하고,뺏고,살인했다는 사실이다.이게 미국의 팽창주의 진실이다.

 

2, 이런 과정을 거쳐 얻거나 뺏은 영토가 지금의 애팔래치아 산맥의 서쪽 지역인 '루지애나,플로리다,텍사스,오리건,캘리

포니아,오클라호마,미시시피,뉴멕시코,알라스카' 등이 포함된다.마침내 19세기 말 몇년을 앞두고는 이제 북미 대륙에서는

영토의 확장이나 팽창이 불가능해 졌다.바로 이때 '신팽창주의'로 전환을 모색해 미 대륙을 벗어난 지역으로 영토 획득을

나서게 된다.또 하나의 문제는 1893년 프런티어의 종식과 함께 경제불황이 미국을 덮쳤다는 것도 있다.따라서 급해졌다.

여기서 미국의 팽창론자들은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서 팽창주의에 대한 철학적 정당성을 찾았다.그들은 '국가나

종족(사람)도 생물학적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여 오직 강자(적자)만이 생존할수 있다' 고 주장

했다.즉 강국이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다윈의 이론)'과 일치하는 것으로 당연시 했고,산업가들은 다윈

이론을 사회와 세계지배에 이론으로 적극 활용했다.

 

3, 여기에 최초의 희생자가 북태평양 해역의 '하와이'고, 다음이 남태평양 해역의 '사모아' 다. 미국이 서부개척을 마치기

전에 이미 태평양 해역을 자기들 앞마당으로 두려고 했었고,거대한 제국주의 정책추진을 영국과 프랑스,독일과 제휴하고

있었다.미국은 1880년대 말과 1890년대 초가 되면 '잉여생산물' 소비시장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따라서 우선 중남미 지역

을 진무(침략) 점령해 미국의 지도하에 두고,1891년에는 태평양으로의 진출 교두보인 '하와이'를 미국에 편입 시켜야 한다

며 하와이에 백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전에도 조금씩은 이주 시켰다:본토에서 할일없는 룸펜 같은사람들 위주로).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때 알수없는 이유로 하와이 원주민으로 민족성이 강했던 여왕인'칼라카우가' 가 갑자기 사망을 한다.(목적을

이루기 위한 어느 세력들의 암살이나 독살 일수도 있는데 하와이 주민들의 기록은 없다).이어 ' 릴리우오 칼라니' 여왕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그러나 새여왕도 원주민으로 토속적 민족주의가 강한 인물로 미 백인들의 영향을 배제하려 했었다.

 

4, 그러자 본토에서 이주한 백인들은 하등의 아무런 이유없이 하와이 새여왕에게 대항 하면서 지금으로 말하면 소박한 하와이

원주민들의 민족주의를 없에고 자기들 것으로 만들려 했다(하와이 토속인들이나 여왕은 미 백인들에게 자유를 억압하거나

피해를 전혀 주지 않았는데도 그랬다),더하여 1893년에는 백인들이 이유없이 반란을 일으켰다(만들었다).그리고는 본토의

미해병대에 거류민단 보호요청을 근거로 파병을 요청한다.미해병대가 도착해 백인 반란군들을 돕자,무력(무기)의 큰차이로

여왕은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어쩔수 없이 강제로 권력(왕권)을 이양,합병될수 밖에 없었다.미국의 하와이 합병 과정을 보면

약자들을 괴롭히는 방식에 있어 제국주의자들은 어디서나 같았다.

 

5, 마치 미국과 영국의 적극적 지원을 받은 일본의 한국 합병방식과 많이 유사한 점을 발견 할수가 있다.미 백인들이 세운 임시

정부가 즉각 합병조약을 체결하여 1893년 2월에는 매파인 미국의 해리슨 대통령(1889~1893)이 합병 서명을 했다.그러나 합병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안 민주당의 미 상원이 비준을 거부했고,그 다음 대통령인 클리블랜드(1893~1897)도 합병조약

서명을 거부했다.이런 미국의 하와이 합병 논쟁은 1898년까지 계속되다가 매파인 공화당이 정권을 다시 잡자(매킨리) 마침내

합병조약을 승인 서명했다,유예기간을 거쳐 1900년에 거서야  마침내 하와이가 미국의 보호령이자 일부가 된다.한국이 일본의

보호령이 되기 4년전의 일이다.따라서 하와이가 미국의 영토가 된것은 역사가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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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상선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17 앞으로 50년은 갈것입니다.또 동이족에 대해 많은 미련을 가지지 마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작성자영취산 작성시간 15.10.16 인과응보! 물론 지금 저들의 조상들이지만요!
    우리생에 그 답이 보일지도 모르지요!
  • 답댓글 작성자상선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17 기대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 작성자러브선 작성시간 15.10.18 이유없는 강점이네요..
  • 답댓글 작성자상선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18 강탈에 의한 잉여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의 폭력,여기에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한
    자본가 세력들+파시즘 세력들의 융합.바로 그게 제국주의지요....한국도 이들의 타협에 의한 여정에
    포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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