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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천의 진실

[스크랩] 양자역학이란-뉴턴의 시대

작성자러브선|작성시간17.03.14|조회수481 목록 댓글 0

 

 

1. 뉴턴의 시대

■ 역사속의 사과

태양풍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지구 자기장은 남극점에서 11.3º벗어난 지자기(earth's magnetic field)남극과 지자기북극을 잇는 자기력선을 형성한다. 자기력선의 영향으로 북극하늘에 아름다운 오로라가 생성되기도 한다. 양극의 움푹 들어간 자기력선의 모양은 우리가 즐겨 먹는 사과와 비슷하다. 사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역사속의 다양한 사건들의 중심에 이 과일이 있음을 알게 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브는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사과)를 따서 아담과 함께 나눠 먹고 원죄를 범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아담과 이브는 비로소 이성에 눈을 뜨게 된다. 이브의 사과를 '사유의 사과', '이성의 사과'로 부르는 이유이다.

그리스신화에서도 황금사과가 등장한다 뮈르미돈의 왕 펠리우스와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결혼식 날, 우연한 실수로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를 초대하는 것을 잊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에리스가 결혼식 좌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이 쓰여진 황금사과를 하나 집어 던졌다. 그 자리에 있던 세명의 여신인 헤라,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 아테나는 자신이 가장 고귀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며 사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과의 주인을 판결해줄 인물을 찾다가 인간 세상에 있는 파리스라는 목동을 선택하여, 그에게 나타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게 된다. 파리스가 아테나를 선택하면 무적의 힘을 얻게 되고, 헤라는 소아시아 전체의 통치권,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아내를 얻게 되는 상황이었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택했고 가장 아름다운 헬레네를 아내로 맞게 되지만 트로이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파리스는 전쟁 중에 그리스 최고의 영웅인 아킬레우스를 죽이지만, 결국 자신도 그 전쟁에서 죽게 된다. 파리스의 황금사과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점에서 '불화의 사과'로 불린다.

중세시대에도 사과가 등장한다. 바로 스위스를 독립시킨 빌헬름 텔(Wilhelm Tell)로 우리나라의 김구선생님과 같은 인물이다. 당시 합스부르크왕가(오스트리아)에 지배를 받던 스위스는 헤르만 게슬러 총독의 통치하에 있었다. 어느 날 총독은 나무에 걸어둔 자신의 모자에 인사를 하라고 시민들에게 지시를 하였는데, 빌핼름은 인사를 거부하였다. 잡혀간 빌헬름에게 총독은 빌헬름의 아들 머리위에 사과를 놓고 맞추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빌헬름은 두 개의 화살을 준비하여 아들 머리위의 사과를 제대로 맞춘다. 나머지 하나의 화살은 아들을 맞춰 실패할 경우 총독을 죽이려고 준비한 것을 알게 된 총독은 다시 빌헬름을 체포한다. 그러나 탈출에 성공한 빌헬름은 군대를 이끌고 왕가에 저항하여 스위스를 독립시키게 된다 빌헬름 텔의 사과는 '저항의 사과'라고 칭할 수 있다.
희망을 뜻하는 사과도 등장한다. 세상의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은 신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창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과이다. 긍정적인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요절하였으며, 누이와는 재산상속 문제로 소송을 하게 되어 승소를 했지만 누이에게 재산을 모두 넘기고 본인은 마흔 중반에 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희망을 위해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삼았던 그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남김으로서,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 실천가능한 일을 행하라는 명언을 후대에 남겨주었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희망의 사과'로 부르는 이유이다.

이외에도 죽음에 이르게도 했지만 그로인해 왕자를 얻게 되는 '사랑의 사과'인 백설공주의 사과도 있다.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먹고 자살한 영국의 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을 기리기 위해, 회사의 로고를 베어 먹은 사과로 창안한 애플사의 '혁신의 사과' 등 사과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처럼 사과만 가지고도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한 가지 빠진 사과 이야기가 있다. 다들 가장 먼저 떠올렸을 지도 모를 뉴턴의 사과이다.
영국에 페스트가 창궐하던 1665년경, 당시 대학들이 일시 폐쇄되어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고향인 울스소프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사유의 시간을 보낼 즈음, 뉴턴 머리위
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한 것은 1670년대 말로 사과 낙하의 관찰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기 보다는 나중에 법칙을 완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687년 7월에 뉴턴은 프린키피아(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출간하였다. 1권인 '물체의 운동에 관하여'에서는 운동의 3법칙과 함께 힘의 다양한 법칙에 관하여 정리하였다. 1권과 같은 제목인 2권은 유체역학과 관련된 운동을 논하였으며, 3권인 '우주의 조직에 대해서'는 만유인력과 함께 행성의 운동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기술하였다. 캠브리지 대학의 한 교수였던 뉴턴은 출판과 함께 전 유럽 과학계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과가 엄청난 과학적인 발견의 시초였기에 뉴턴의 사과는 '과학적 발견의 사과'가 되었다.

 

■ 과학혁명의 구조

19세기 말까지 고전물리학은 현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deterministic)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뉴톤 역학뿐만 아니라 열역학, 전자기학, 파동학 등이 물리학의 주를 이루었으며, 20세기 초 현대물

리학의 근간이 된 확률론적(probabilistic) 입장이 대두되기 전까지 고전물리학의 기틀을 잡고 있었다. 확률론적 입장은 현재를 알아도 정확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지칭하며,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등장에 발단하고 있다. 상대성이론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며, 양자론은 미시적 관점의 자연현상은 아날로그(연속)가 아닌 디지털(불연속)임을 설명한다. 양자론, 양자역학, 양자물리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학문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으나 사고에 집중하는 양자론(quantum theory)과 수학적 표현으로 기술되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으로 나눌 수 있다. 과학현상을 바라보는 시점의 변화는 과학사적으로도 과학의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의 '과학혁명의 구조'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과학의 발전은 누적된 지식의 축적(cumulative)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비축적적인(noncumulative), 즉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어떠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17세기 뉴턴의 영향을 받아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빛은 입자다'라는 패러다임이 20세기 초에는 어떻게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지닌다'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과학혁명을 통해서 설명된다. 즉 뉴턴시대에는 뉴턴 패러다임으로 과학현상을 풀이했지만, 더 이상 뉴턴 패러다임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비정상과학 문제들이 등장하였다. 이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패러다임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쿤의 주장은 뉴턴 패러다임에서 아인슈타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연속적이지 않고 단속적이라는 데 있다. 즉 과학혁명은 기존 과학이론의 위기에 대한 변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비정상현상은 정상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지만 또다시 새로운 비정상현상이 나타나면 패러다임에 위기가 닥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과학이 발전한다고 보았다.
일상생활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한 제품의 진화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음악 저장 매체인 LP, CD, DVD(650 nm색 레이저를 이용하여 기록),  BD(Blue-ray Disk, 405 nm의 청자색 레이저 이용)의 발전에서도 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BD가 나오게 된 근간인 LP를 이해함으로서 기록매체의 기술적 진화를 이해할 수 있듯이, 물리학의 패러다임의 변화 또한 전통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설명가능하다.

 

■ 뉴턴의 과학적 사고

고전물리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뉴턴 역학은 3가지 운동법칙으로 대변된다. 버스가 급정거하면 서있던 승객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은 관성의 법칙으로 설명되며, 버스에 승객이 많이 탈수록 같은 속도를 내기위해서는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가속도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버스가 아스팔트 위를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1법칙은 물체에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거나 작용하는 힘의 합이 0일 때,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 운동하는 있는 물체는 계속 등속 직선 운동을 한다는 관성의 법칙이다. 2법칙은 물체에 힘이 작용하면 물체에 힘의 방향으로 가속도가 생기며, 가속도의 크기는 힘의 크기에 비례하고 질량에는 반비례한다는 가속도의 법칙이다. 법3칙은 두 물체가 있을 때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면 그 물체도 상대편 물체에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힘이 작용한다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뉴턴은 기본적인 3가지 운동법칙을 토대로 중력, 관성력, 구심력, 원심력, 부력, 파동의 전파, 행성운동 등 다양한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였다. 고전물리학을 뉴턴역학이라고 부를 정도로 뉴턴은 현상적인 물리학을 수식화하고 종합화하려고 노력하였다.

과학발전에 있어 뉴턴이 기여한 것은 많은 선행연구를 수학적 공식으로 종합했다는 사실보다는 그의 과학적
사고의 진행절차와 사고 방식이었다. 뉴턴은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연역적인 회의를 활용하면서도 실험적 방법을 통한 경험과 사실에 의존하는 과학적 실험법을 도출하였다. 여러 사실로부터 기본원리를 도출하고 논리적으로 예상되는 결과가 일어나는지 증명하는 실험법을 제시하였다. 즉 추상적 이론과 경험적 증거를 동시에 만족시켰으며, 이 과학적 탐구법은 이후 과학연구의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뉴턴의 과학적 사고의 혁명은 당시 정치적 혁명보다 인류역사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론-실험-증명이라는 과정을 통해 뉴턴이 갖게 된 패러다임은,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와 같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이었으며 이후 400여년간 현대문명의 바탕이 되었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데카르트의 사상을 이어받은 기계론적 세계관은 과학 만능주의와 함
께 물질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 뉴턴의 근대적 과학관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무한한 이해와 발전 가능성을 심어주었고, 뉴턴은 이 세계관을 바탕에 두고 모든 자연현상을 수학적 법칙으로 환원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환경파괴 등으로 인한 전지구적 문제가 대두되면서 가이아 이론과 함께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과학혁명의 틀을 만들었던 뉴턴의 패러다임은 19세기 말 맥스웰(James Maxwell, 1831-1879)의 전자기학,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Wemer Heisenberg, 1901-1976)의 양자역 학 등에 의해 수정되었다.

■ 빛

양자는 라틴어 ‘quantus'에서 온 말로 'how much', 양, 수량을 뜻한다. 양자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독일의 물리학자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는 에너지의 불연속성에 관한 양자가설을 주장하였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양자는 독일어 quantum을 번역한 말로서 어떤 물리량이 연속값을 취하지 않고 어떤 단위량의 정수배(양자수)로 나타나는 비연속값을 취할 경우, 그 단위량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다. 즉 양자 개념은 연속적인 흐름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전자기장의 양자는 광자(photon)이며, π중간자(pion)는 핵력장의 양자, 중력자(graviton)는 중력장의 양자이다. 다양한 힘이 미치는 장(field)내에 존재하는 불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최소단위라고 할 수 있다. 전자, 양성자, 광자, 소립자 등이 이에 해당하며, 너무 작아서 눈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우리가 빛에 둘러 싸여 살고 있기에 양자중에서도 광자가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물을 본다는 것은 빛, 광자를 직접 본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빛의 반사, 굴절, 회절 등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을 망막에서 인식하여 본다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동물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양, 색깔들이 다를 수 있다. 가시광이 없는 암실에서는 물체 파악이 힘들지만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하면 열을 발생하는 물체를 가시광 없이도 관찰 가능한 것도 감각 수용체(망막, CCD, 적외선 색센서)의 차이 때문이다 .
고전물리학에서는 빛의 간섭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빛의 파동설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이는 영(Thomas Young, 1773-1829)의 이중슬릿 실험에서도 현상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러나 뉴턴은 양자론적 해석은 아니었지만, 암실내 바늘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의 직진성에서 '빛이 입자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에 뉴턴의 명성에 힘입어 한동안 빛의 입자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현대물리학에서는 빛을 입자성과 파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동시에 입자성과 파동성을 지니지는 않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즉 빛의 입자성을 보고자 하는 관찰법에서는 빛의 입자성을 관찰할 수 있고, 파동성을 관찰하는 실험에서는 당연히 빛의 성질중 파동성만 관찰된다고 하고 있다. 양자 개념을 이용한 빛의 입자성에 관한 설명은 광양자설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에 의해 전개되었다. 광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추후 전자의 개념과 양성자의 개념까지 발전되어 나간다. 파동으로 설명되던 빛의 특성들은 파동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정상현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유지 되었으며, 파동의 전달 매질인 에테르라는 개념의 도입으로 더욱 확고히 되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입자로 간주되던 전자의 행동양식과 빛(광자)의 행동양식이 일치하는 비정상현상이 관찰되면서 '빛은 파동이다' 라는 개념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에테르

바다에서 파도가 치기 위해서는 물이라는 매질을 필요로 하고 소리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공기라는 매질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이 에테르(aether, ether)라는 개념은 파동인 빛이 진행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믿어졌던 광파동의 매질에 해당한다. 떨어진 상태에서 힘이 미치는 만유인력, 열의 복사, 전자기의 전파 등과 관련한 여러현상을 물리적으로 용이하게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는 밤하늘의 빈 공 간이 에테르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천구상의 물체들이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운행한다고 보았다. 이것을 제 5원소(quintessence)라고 불렀으며, 투명하고 무게가 없으며 일종의 천상의 안개라 칭하며 다소 감성적인 설명을 하였다. 에테르는 모든 공간과 물질 속에 펴져나가는 극히 가벼운 물질로 동시에 완전 탄성체이며 빛과 같은 속도를 지닌 횡파로 전파된다고 생각되었다. 고전물리학에서 역학과 전자기학은 서로 무관한 학문으로 간주되었으나 에테르를 도입하면서 전자기현상과 역학현상을 하나로 통일 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뉴턴도 에테르를 확고히 믿었던 것으로 보이며, 모든 물질과 물체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가장 큰 이유가 에테르의 진동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역학에서도 절대기준이 필요하듯이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인 빛의 문제에서 절대공간 역할을 하는 에테르가 필요했고, 물리학자들은 에테르의 존재를 찾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였다.
고전물리학의 파동성과 뉴턴의 입자성 개념이 혼재할 즈음, 광파의 매질인 에테르를 직접 확인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빛이 진공에서도 전파되는 것으로 보아 물질이 텅 빈 진공에서도 충만된 무엇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이는 물체의 운동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았다. 빛의 파동성을 주장한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 단단하며 탄성이 있는 작은 입자의 집합체를 빛을 실어 나르는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이에 마이켈슨(Albert Michelson, 1852-1931)과 몰리(Edward Morley, 1838-1923)는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장치를 고안하였다. 우주가 에테르로 가득차 있고 지구가 그 안에서 공전하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에테르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달리기를 할 때 공기라는 매질로 인해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듯이 에테르의 흐름속에서 유동하는 물체도 그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둘의 아이디어는 간단한것으로 강물이 좌에서 우로 흐르고 있을 때, 강 흐름의 수직 방향으로 왕복하는
경우와 나란한 방향으로 왕복하여 같은 거리를 다녀올때, 흐름의 간섭을 받아 배의 도착시간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즉 강의 흐름이 에테르의 흐름 방향으로 볼 수 있으며, 두 방향의 왕복에는 시간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간단한 계산에 의하면 수직 방향으로 왕복하는 경우가 더 빠를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실험은 공전하고 있는 지구와 에테르의 상대운동에 따른 광파의 간섭을 검출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둘의 실험은 수차례 반복해 보아도 두 방향으로 왕복하는 빛의 도달 속도는 서로 같다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빛이 에테르 같은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파동이었다면 검출되었어야 할 간섭현상이 검출되지 않는 결과로 끝맺게 되었다. 즉 도저히 에테르의 흐름을 찾을 수 없었다.
에테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시작되었던 그 둘의 실험은 결과적으로는 에테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입자성을 설명하면서 에테르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였지만, 추후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에테르의 형상과 밀도를 매우 정확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현재 에테르는 우주 중력의 실체로 보고 있으며 우주의 임계밀도를 충족시키는 암흑물질로 간주되고 있다.

 

■ 뉴턴의 프리즘

뉴턴의 3대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만유인력, 미적분학, 빛의 입자설은 모두 천체의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과업이었지만, 색분해 실험과 같은 광학에 관한 그의 관심은 기존 고전물리학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한 색분해 실험을 통해 고전물리학에서 주장하는 빛의 파동성에서 벗어난 입자설을 제안하게 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양자론적 해석은 아니었으며, 에테르 매질내 빛 입자의 운동으로 설명하였다. 1704년 광학 이라는 저서를 출판하면서 빛의 본체는 물체에서 사출되는 미립자라고 정의하면서, 호이겐스의 파동설에 대응하였다. 사실 뉴턴은 자신이 오랫동안 연구해온 얇은 비누막에서 생기는 무지개 색깔의 근원을 빛의 파동설로 설명하였기에 파동설의 타당성을 알고 있었지만, 좁은 틈을 지나는 빛의 직진성 때문에 파동설을 부인하였다. 당시 회절현상이 관측되지 않았고 뉴턴의 권위로 인해 입자설이 근 100년간 지배적이었다.
뉴턴은 빛의 반사 및 굴절 현상을 입자설로 설명하였으며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빛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굴절되는 것을 속도벡터로 해석하였으며, 성분벡터인 x, y벡터로 둘러싸인 면적이 같도록 계산하여 입사속도벡터보다 굴절속도벡터가 더 크다고 계산되었다. 즉 물에서 빛의 속도가 공기에서 보다 빨라진다는 결론을 얻게된다. 1849년 피조(Armand Fizeau, 1819-1896)는 회전하는 톱니바퀴를 이용한 광속 측정 실험을 시도하였고, 1851년 물속에서 그 속도가 늦어짐을 관찰하였다. 이로서 뉴턴의 입자설 해석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흐르는 물속에서의 광속 측정실험(간섭실험)은 후에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으로 이어졌다 .
뉴턴의 입자설이 옳건 그르건 프리즘은 빛의 본성을 알려준 결정적인 도구라는 것은 사실이다.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하여 백색광은 색깔을 지닌 입자들의 혼합광이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백색광이 무지개 색으로 나뉘는 것을 관찰하고, 분리된 단색광중 하나를 또다시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더 이상 색분해가 이루어지지 않

음을 보였다. 단색광을 분리하지않고 무지개색의 스펙트럼을 모두 두 번째 스펙트럼에 연결하면 하나의 색깔(백색광)로 환원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를 통해 색깔을 지닌 개개의 입자(광자)가 우리 눈의 망막에 부딪쳐서 다양한 색을 구분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현상은 프리즘이 없이도 관찰할 수 있다. 컴팩트 디스크(CD)에 백색광의 손전등을 비추면 무지개색이 비치지만, 레이저 포인트에서 나온 단색광은 하나의 파장대의 빛만 그대로 반사되어 보인다. 그러나 빨간색의 입자보다 왜 보라색의 입자가 더 많이 굴절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였다. 또한 두 줄기의 빛이 서로 충돌할때 입자라면 부딪쳐서 두 빛의 진행에 영향을 주어야 하지만 충돌영향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였다. 뉴턴의 프리즘이 한일은 단색광이라고 여겨졌던 가시광선이 혼합광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 스펙트럼

뉴턴의 프리즘을 통해 관찰된 스펙트럼은 연속상을 지니며 이를 연속 스펙트럼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무지개색은 '빨주노초파남보'와 같이 7색이 아닌 무수히 많은 색으로 분리가 가능하다. 미국은 '빨주노초파보' 6색을, 아프리카 쇼너어족은 3색으로 무지개를 표현한다. 현재 이와 같이 무지개색을 7색으로 보고 있는 이유로, 1704년 데카르트의 무지개실험 이후로 고정되었다는 설과 화성학의 7음계의 영향, 당시에 관측된 7개의 별(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영향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7일이라는 수를 신성시하는 성경의 말씀처럼 연속 스펙트럼의 색깔도 별이나 신을 나타내는 7과 관련 지은것이 아닌지 유추할 수 있다. 연속 스펙트럼이 발생하는 이유는 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빛의 진동수에 따라서 휘는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다양한 색분리가 발생하는데 이유가 있다.


저온의 가스에 빛을 조사했을 때, 해당 가스 분자와 상호작용하여 들뜬 상태로 있다가 바닥 상태로 되돌아올 때 전자기파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이때는 연속 스펙트럼이 아닌 몇 개의 선 형태인 휘선 스펙트럼을 보인다. 연속 스펙트럼과 휘선 스펙트럼의 차이는 흡수 스펙트럼으로 관찰된다. 휘선 스펙트럼은 대상 물질마다 고유한 에너지 값을 보여서 임의의 물질 분석에 사용된다.
맥스웰의 등장으로 전기장과 자기장을 하나로 집대성 되면서 빛도 일종의 전자기파이며 둘의 속도가 일치한다고 보았다. 가시광선은 400~700 nm 파장을 지닌 전자기파이며, 700 nm보다 큰 파장대는 적외선, 라디오파, 마이크로파가 있으며, 400 nm보다 작은 영역은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이 있다. 파장이 길수록 역으로 진동수가 짧아지며, 진동수가 짧을수록 해당 전자기파는 더 적은 에너지를 지니게 된다. 즉 심장이 빨리 뛰면(진동수가 크다) 한번 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고(파장이 짧다) 심장 박동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적외선 보다는 자외선이 더 빠른 진동수를 지니게 되고 더 큰 에너지를 지니게 된다. 이는 해변가에서 물놀이를하면 살이 타지만 난로에 불을 쪼이고 있어서 살이 타지 않는 원인이다. 즉 진동수가 크고 에너지가 많은 자외선은 피부를 태우지만, 반대인 적외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스펙트럼에서 나타나는 전자기파의 연속성은 파의 진동수에 다양한 활용 분야를 갖게 된다.
뉴턴의 시대는 고전역학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로서 빛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 빛의 여러 가지 성질인 반사, 굴절, 회절 등의 현상과 고전역학의 한계에서 벗어나 현대물리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관하여 살펴보겠다.

 

출처 / cheric|교육|사이버강의

http://www.cheric.org/ippage/e/ipdata/2010/01/file/e201001-1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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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김앤장 과학전문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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