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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행각 VS 왕의 행각

작성자유아레스토스|작성시간12.10.03|조회수459 목록 댓글 0

솔로몬 행각 VS 왕의 행각

 

 

성전 바깥을 따라 둘러싼 동쪽의 솔로몬 행각과 남쪽의 왕의 행각은 모두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러나 두 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의 성향은 확연하게 달랐다. 솔로몬 행각은 로마에 적대적인 유대민족주의자와 종교주의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반면 왕의 행각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방화 된 친 로마파 유대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사회도 세속적 유대인들과 종교적 유대인들은 서로 섞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극히 종교적인 도시인 예루살렘, 그것도 성전을 둘러싼 행각에 이방화된 친 로마파 유대인들의 장소가 있었다는 것은 사뭇 충격적이다.

 

갈릴리와 유대 지방 중에 어느 곳이 더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이었을까? 의외로 갈릴리지역이다.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갈릴리에 대해 오해할만한 내용들이 나온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1:46)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2:7)

 

이런 표현들은 분명히 당시 갈릴리 지역 사람들을 무시하는 풍토에서 나온 말들이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갈릴리 지역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셋에 의해 정복된 후 알렉산더에 의해 재정복되기까지(기원전 103) 오랫동안 제국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별명도 이방의 갈릴리다(9:1). 그러나 이곳을 정복한 마케베오 왕조의 알렉산더는 이방화 된 갈릴리 지역에 유대 지역 출신의 유대인들을 강제 이주하는 정책을 폈다. 이때 갈릴리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종교적 성향이 강한 유대민족이 주류를 이루었다. 아마도 이때 유대 베들레헴 출신의 요셉 집안도 갈릴리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높다(2:4-5).

 

갈릴리는 오랫동안 이방화 되었다가 예수님이 오시기 100년 전쯤에 열렬한 유대주의자들이 유입되면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특히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 성향에서만 본다면 예루살렘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기원후 1세기를 전후해서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에 반대하여 다섯 차례나 봉기를 일으켰는데 항상 그 선봉에 섰던 지역이 갈릴리였다. 로마에 반대하는 열심당의 본거지도 갈릴리였다.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던 예루살렘과 달리 갈릴리는 유대교와 관련된 교육수준이나 권위 있는 랍비의 숫에서나 유대 지방을 훨씬 능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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