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히브리서 5장 1~10절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라 !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取)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히5:1~10)
대제사장의 직임에 있어서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가 다르다. 사람에게 대제사장직을 수여하기 위해서는 사람 가운데서 취하여야 했지만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으로 지명하여 칭하신 직임이다.
대제사장직은 하나님께 속한 일을 수행하는 직임이다. 곧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연약함으로 세상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것을 훤히 아시면서도 사람의 속성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2계명을 주셨다.
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2.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은 아담에게 금해야 할 일과 범했을 때의 결과를 알려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명 선악과를 먹어 버리고 말았다. 불복종했다는 말이다. 이를 죄(罪)라고 말하는 것이다. 곧 불순종의 죄(罪)말이다. 이일로 말미암아 천지창조 이후 세상은 “죄”가 존재하게 되었다.(롬5:12,13)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고 살아 왔을 뿐이다.
“죄”의 정체는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밝혀진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살인을 해도 그것이 살인죄인지 도적질해도 그것이 절도죄인지 법도 모르고 죄도 모르는 한마디로 무법천지 속에서 살아왔었다.
지금의 세대는 더욱 심각하다. 왜냐 하면 죄를 깨달을 때는 형벌이 두려웠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지식이 높아지고 문화생활에 익숙하다보니 죄로 인한 형벌이 두렵기는커녕 어떤 죄가 어느 정도의 죄질에 해당되고 그에 대한 대가가 어느 정도이고 어떤 형태인지 스스로가 모두 판단하고 법망을 피하고 설령 피하지 못하더라도 형벌과정을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받을 형벌에 대해서까지도 감당할 만한 준비를 하고 범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범법자나 법을 집행하는 집행관까지도 뇌물로 판단이 흐려지는 것이다. 롬1:32절에서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하느니라.”고 밝힌 것처럼 율법이 없어 죄를 깨달을 수 없었던 시대는 그렇다고 쳐도 이제는 율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니 얼마나 심각한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일에 무식하고 세상문화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멀리하므로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를 맺고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죄인을 살리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죽기까지 복종케 하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은혜는 온 천지를 모두 드려도 부족할 것이다. 사람은 죄와 허물로 이미 죽은 존재이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하심으로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사는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명실공히 인정함을 받으시고 이 사실을 믿는 자마다 죄에서 구원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영생을 보장받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보장보험이 있는데 혜택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영생보험만 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된 보좌와 이름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여 거저 된 것이 아니라 복종과 순종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신령하신 성품이 절대적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에 앞서 항상 습관을 좇아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셔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 내용은 “사람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으므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다고 표현했을까?(눅22:44) 아벨이 그 형 가인에 의해서 죽었으나 오히려 그가 살아서 그의 핏 소리가 하나님께 호소했다. 이러한 정황을 보아 기도는 분명 생명을 다하여 해야 함이 마땅하다.
마귀의 궤계는 늑대와 같고 사람들의 연약함은 어린 양과 같아 목자를 잃으면 양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방황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거나 가시에 걸려 피를 흘리다 죽거나 이리나 맹수에게 잡어 먹힐 것이 자명하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오죽 하셨을까? 이렇게 연약한 어린 양들을 두고 반드시 십자가의 죽음을 하여야 하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꼭 죽어야 합니까? 그냥 이대로 이들을 지키며 양육하면 안 되는가? 예수님의 마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고민으로 가득 찼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았느니라.”(히5:8~10)
세상에서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에 성경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낳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은 사람이 고난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다. 이 고난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하면 우리 삶 속에서 공존은 하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적절 하면 우리 스스로가 고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번민하며 고통당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고난”은 우리와 항상 공존하고 있다. 문제는 대처 방안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상태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고난”은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피하려다가 더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고난”은 말 그대로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발전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이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고난”은 “축복의 씨앗”이다. 고난으로 심고 복으로 열매를 얻는다. 썩을 것으로 심고 불가불 썩지 않을 것으로 열매를 거두는 말씀과 그 이론이 같다. 야고보 사도는 이를 더욱 강하게 언급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이에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1:7)고 시험을 이기는 믿음의 결과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을 입은 존귀한 자로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대제사장의 존귀는 아론과 같이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칭함을 받았다.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세우고 그 믿음으로 고난도 극복하고 고난 후에 얻어지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소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