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아래
황중하
은빛 빗줄기 속에
보랏빛 나팔꽃이 피어 있다.
두 마리 다람쥐가
고운 꽃잎 우산을 작은 손에 꼭 쥔 채
서로의 온기에 기대고 있다.
후드득, 후드득—
빗줄기 거세질수록
둘의 몸짓은 더 가까워지고
꽃잎 우산이 살짝 당겨진다.
흔들리는 나팔꽃잎 위로
맑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토록 작고 연약한 존재들도
서로에게 작은 우산이 되어줄 수 있구나.
다람쥐는 꽃잎 아래에서
서로의 숨을 맞대며 한 시절을 건너간다.
다람쥐와 꽃잎
그리고 보랏빛 나팔꽃이 서로의 세계를 비춘다.
맑고 투명한 빗방울이
꽃잎 우산 위로
툭
떨어진다.
시집 『불가능의 온도』 2026.4
황중하|1982년 경기 화성 출생.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13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아직 나는 당신을 처리 중입니다』『불가능의 온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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