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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정수자의 「소년의 긴 손가락이」 감상 / 이은화

작성자손진숙|작성시간26.06.12|조회수13 목록 댓글 0

정수자의 소년의 긴 손가락이」 감상 이은화

 

 

소년의 긴 손가락이

 

  정수자

 

 

신전의 부조들을 아다지오로 쓸다 말고

하늘을 훅 그으니 별들이 쏟아졌다

 

나일강 만파를 고르듯

파피루스 잎을 타듯

 

피아노를 타고 놀던 파리한 손가락이

별 사이를 촉진하자 은파랑이 튀었다

 

콤옴보 신화를 토할 듯

열주들이 울렁였다

 

불러 봐 너의 별을은파 만파 지휘하듯

반달 깃든 손톱이 뱃전을 두드릴 때

 

누천년 사막 능선 켜온

달도 뺨을 붉혔다

 

 

   손가락은 몸의 가장 먼 곳에 있어요심장에서 멀리 있는 파리한 손가락 하나가 이집트 신전의 부조를 쓸고 나일강의 만파를 고르며 마침내 하늘을 그어 별을 쏟아내지요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손가락을 움직이며 화면을 밀어 올리거나 키보드를 두드립니다이때 쏟아지는 것은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요하지만 소년의 긴 손가락은 하늘을 훅 그으니 별들이 쏟아졌다.” 단 한 행으로 우리의 감각을 사로잡습니다.

   수천 년 묵묵히 서 있던 열주들과 이 모습을 비추는 달의 시간소년은 이 침묵의 선율을 시어로 고르지요신전의 부조를 쓸듯 부드럽게요피라미드가 세워지는 것과 나일강이 범람하는 일 그리고 전쟁과 사랑이 반복되는 모든 시간을 비추어온 달시인은 이런 달이 뺨을 붉혔다라며 고요한 절정을 보여줍니다이는 달의 관조가 음악이 되는 순간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시인은 소년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그는 여전히 파리하고, “반달 깃든 손톱으로 뱃전을 두드릴 뿐생각해 보면 그 손가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키보드를 연주하듯 두드리는 손누군가는 새벽까지 SNS 스크롤은 넘기거나 꺼진 채팅창의 친구 목록을 보며 관계의 잔향을 확인하지요이 순간 우리 손가락의 두드림은 어떤 언어를 만지고 있을까요몸의 가장 먼 언어가 우주의 언어가 되는 순간떨림을 촉진하는 시인의 아다지오를 듣습니다.

 

  이은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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