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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바실리스크 / 이현승

작성자손진숙|작성시간26.06.14|조회수10 목록 댓글 0

바실리스크

 

   이현승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헤엄치는 법을 배웠지

나는 가라앉으면서 늪을 깨닫는 사람

내 스승은

삶이란 물웅덩이 같은 것이라서

한 발이 빠지기 전에

빨리 다음 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다보면

어느새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 생이었다.

그의 좌우명이자 내면에 새겨진 이름은

물 건너는 자

우아하게 휘청이는 꼬리의 반동을 타고

날렵한 걸음걸이로 물을 건너는 그에게

하나의 영광은 늘 다음 영광을 위한

디딤돌이었고 머중물이었다.

하나의 영광이 다음 영광의 디딤돌이라면

하나의 실패는요한쪽 발을 들어올리는 동안

디딤 발이 더욱 더 깊숙이 빠지는 자에게

하나의 실패는 완전한 침몰의 시작이 아닐까요?

하지만 스승은 어떤 실패든 그건

결국 하나의 발자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지.

우리의 하루가 일만 걸음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한다면

실패란 얼마나 적은가실패는 하난데

두려움과 집착이 아흔아홉은 아닌가.

위대한 스승의 발바닥에 붙은 티눈 같은 나는

물에 잘 빠지는 사람

가라앉으면서 늪을 깨닫는 사람

 

내게 제일 건너기 힘든 늪은 바로 스승이었네.

 

 

 계간 문학동네》 2026 여름호

 

이현승2002년 문예중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친애하는 사물들』『생활이라는 생각』『대답이고 부탁인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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