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 인생의 知音(지음)
知音이란 한자 그대로 ‘음악의 곡조를 잘 앎’. 또는 ‘잘 아는 음악의 곡조’라는 뜻이다. 다른 뜻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말’이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을 잘 이해해 준 종자기(鐘子期)가 죽은 후, 거문고 소리를 아는(知音) 자가 없다 하여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렸다는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순수한 우리 말로는 단짝, 불X친구 등이 知音에 해당할 것이다.
비슷한 뜻의 道伴(도반)이란 단어도 있다. 함께 佛道(불도)를 닦는 벗이라는 뜻이나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나 뜻이 맞는 친구라는 뜻도 갖고 있다. 공자는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라고 했다. 世上事(세상사)는 관계가 얽히고설킨 것이므로 어찌 마음에 맞는 친구들 하고만 걸어갈 수 있겠는가?
正面敎師(정면교사)가 되었든 反面敎師(반면교사)가 되었든 3명이 걸어가면 분명히 선생님이 계시다 했으니 현실과 가장 가까운 인용 구절이 아닌가 한다. 하다못해 동물하고 같이 길을 떠나도 배울 것이 있는데 사람하고 걸어간다면 필히 배울 것이 있다. 찾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하니 안보일 뿐이다.
요즈음은 스승이면서 친구라는 뜻의 師友(사우)라는 단어도 사용한다. 스승이자 친구라는 뜻이니 知音, 道伴보다 더 성숙한 단계 또는 三人行必有我師까지 합쳐진 가운데 장점만 취한 뜻이 師友라는 단어가 아닌가 한다. 마음과 뜻이 통하고 장점을 본받을만한 관계가 師友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 미물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으니 만나고 부딪치는 모든 인연이 我師.(아사)이자 師友(사우)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산다는 것은 만남과 관계의 연속이다. 어쩌면 만남이 삶일 수도 있다. 만남과 관계 속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며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친구들이다. 부모의 품을 떠난 이후부터는 친구, 선후배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또한, 가족간이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집이 몇이나 될까? 천륜이라 해도 매일 얼굴을 맞대는 사이이며 서열과 애증으로 복잡하게 얽힌 관계다. 어쩌면 단순한 관계인 친구들과 속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 편할 수도 있다
만나고 헤어지며 걸러져 이제는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손을 꼽는다. 고교 동창들이 50년 된 지음들이다.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훤하게 알기에 가족 간에는 말 못 할 고민거리도 고교 동창들에게는 털어놓기 좋다.
직장 생활하면서 만난 지음들도 여럿이다. 직장에서는 거의 철저하게 본인의 이익에 따라 친분을 만들게 된다. 또한 자연스럽게 모임과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며 선배로부터 이어지는 계보에 따라 자연스럽게 Line의 일원이 되기도 하며 시간이 흐르면 보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퇴직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관계가 축소되며 정리된다. 아직까지 만나는 직장 친구들이란 드물게 본인의 이익이 아닌 인간적인 매력으로 만나는 친구들이라 할 수 있다. 현직에 있을 때도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던 분들은 퇴직 후에도 도움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따라 하려고 곁눈질로 많이 보고 배운다.
그러나 인생의 최고의 지음은 뭐니 뭐니 해도 아내다. 어느 누구보다 속마음을 잘 알고 있고, 허물을 가려주며 이해해 주는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한 아내는 쿵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을 앞광대라 하고 무대, 미술, 조명, 음향을 담당하는 사람을 뒷광대라 칭한다. 김홍신 작가는 자신의 저서 “인생견문록”에서 아내를 뒷광대에 비유했는데 매우 정확하고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었다.
은퇴하고 나서야 새삼 알게 되었다. 평생직장을 무탈하게 퇴직하도록 뒷바라지해줬고, 아이들 건강하게 잘 키웠으며, 노후에 배곯지 않도록 재산을 건사해 준 것은 전적으로 뒷광대인 아내 덕이었다는 것을.
수십 년 전 결혼식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빼고는 앞광대를 해본 적이 없는 아내 대신, 이제부터 뒷광대 노릇을 하겠다고 자처한다면, 아내 그늘에 숨어 지내려 한다고 비난받으려나...
이런 의문점들이 생기면 세상을 몇 년 더 앞서 살아가고 있는 知音이나 師友들께 자문을 구해봐야 한다.
2026.06.11 임순형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