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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동행 (이정아著, 선우미디어刊)

작성자shrhim|작성시간26.06.21|조회수8 목록 댓글 0

1194. 동행 (이정아著, 선우미디어刊)

 

 누나의 7번째 책이 발간되었다. 구원선화백이 표지를 그리고, 누나의 멘토이자 부친역할을 해주시는 나태주시인께서 해설해 주셨다. 쉼 없이 글 쓰는 누나를 보고 글을 쓰게 되었으니, 내게 글쓰기 스승은 누나인 셈이다. 몸이 아픈데도 꾸준하게 글쓰기를 하고 있는 누나가 존경스럽다.


 오래전 남편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받았다. 남편의 콩팥을 바로 옆 수술실에서 전달받아 목숨을 건진 일이 이젠 추억이 되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벌써 10년, 당시의 심정으론 일 년만 더 살아도 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덤으로 산 세월이 10년이라니 기적 같다. 그걸 기념하여 남편이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을 다녀왔다.

 이식수술을 받고 나선 투석을 받지 않게 되어 삶이 무척 간단해졌지만, 기운도 없고 면역력도 없는 상태로 하루 한 움큼씩 약을 먹는 평생 환자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감사한 일이다. 이승과 저승이 어찌 비교할 수 있는 곳이겠나 말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좋다는 이승에 살고 있으니.

 매일매일 사는 것이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긴 해도 죽음을 예상하거나 기대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나도 이런 큰 수술이 없었다면 막연하게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았을 것이다. 게으른 내게 정신 번쩍 들게 한 사건이었고, 남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 ‘덤을 기념한 여행’ 중에서 -

 

 어릴 적 꿈이 택시 운전사였던 남편은 운전을 무척 좋아한다. 그 좋아하던 운전을 요즘엔 잘 못한다. 허리에서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저릿하고 통증이 있다고 한다.

 주치의 상담을 거쳐 류머티즘 의사를 만나고, MRI를 찍고 통증전문의 상담 후 재활의학과 치료를 받기까지 한 달여 걸렸다. 병명은 척추관협착증, 치료차 맞은 주사는 마취해야 해서 보호자가 함께 와야 한단다. 허구한 날 내 간병인 역할을 했던 남편의 보호자로 따라갔다.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격이다. 주사 맞은 후의 운전은 보호자가 꼭 해야 한다고 한다.

 보호자로 처지가 바뀌니 책임감에 잔소리도 하게 되고 보양식도 먹여야겠다는 의무감도 불끈 생긴다. 나는 싫어서 안 먹는 염소탕을 진상하고 홍산 공진단도 억지로 먹게 했다.

 처음 맞은 통증 주사가 별 효과가 없어 2주 후에 한 번 더 맞았다. 주사 맞고 대기실에서 15분 쉰 후 나오는데 환자가 약간 어지럽다고 한다. 평소 무쇠 같은 남편으로 내 의지처였던 사람이 아프다니 가슴이 덜컹한다. 나보단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할 사람이다.

 내게 신장 하나를 떼어주고도 건강했던 사람인데 나이 드니 건강도 장담을 못 하는가 보다. 통증은 심했다가 덜했다가 간헐적이고 속 시원히 낫질 않는다. 아프다면서 회사 일도 하고 교회도 가고 늘 하던 수영도 꾸준히 했다. 남편이 아픈 것이 내 탓인듯해 미안했다.

 지난 토요일엔 협착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선배님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아침에 나가서 함흥차사. 비행기 타러 나간 날은 하루 종일 불안하다. 특히 86세 선배님을 모시고 갔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세스나는 장난감처럼 부실해 보여 나는 잘 안 탄다. 선배님들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또 타고 싶다 하셨다며, 경비행기 운행 중엔 다리 통증이 없었다고 한다.

거참 신기하기도 하다. 놀 때는 안 아프다니 말이다. 그러더니 이번엔 맘모스 스키장에 스노보드를 타러 갔다. 안 아팠단다. 그야말로 내 맘대로 통증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통증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 ‘선택적 통증’ 중에서 -


이정아 선생의 부친이 바로 서울신문에 오래 재직하면서 일하던 언론인이었다. 성함은 임진수 시인, 내가 알기로 임진수시인은 참 맑고도 고운 시인이었다.

 

 자신의 신장을 기꺼이 아내에게 이식해 준 남편분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이 눈물겨웠다. 수술실에서 신장 적출 수술에 들어가면서 의료진이  어떤 신장을 때어야 하느냐 물었을 때, 자신이 오른손 잡이니까 건강한 오른쪽 신장을 떼어 아내에게 주겠다고 말했다니 세상에 그런 남편이 어찌 흔하겠는가!

 

 오늘날 이정아 선생의 글쓰기는 당신 혼자만의 글쓰기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보고 배운 글쓰기이다. 그러니 그 글쓰기는 흐지부지 겉멋의 글쓰기도 아니고 餘技(여기)로서의 글쓰기도 아니다. 죽을 둥 살 둥 글쓰기요 오직 하나, 온리 원의 글쓰기인 것이다.

 

 

 이정아 선생의 글은 당신의 성격이나 인간처럼 솔직하고 담백하고 당당하다. 그래서 직선적으로 다가가 따끔한 충고의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그로 하여 거짓된 우리의 삶을 거침없이 벗겨주면서 반성적 삶을 요청한다. 이러한 글 쓰기는 천성에서 오는 것이고 일단의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 '나태주 시인의 해설' 중에서 -

 

 

2026.06.21 임순형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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