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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작품방

아래 글에 댓글을 주신 "영진"선생님께 드립니다.

작성자정임표|작성시간26.06.22|조회수24 목록 댓글 2

저는 2006년에 아래 수필 "지천역"을 썼습니다. 그리고 작고하신 정혜옥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대구 수필 문단에 얼굴을 내 밀게 됩니다. 우리의 지난 아픔을 승화시키는 글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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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역/수필가 정임표

 

                                        

가난은 문둥이 보다 서럽다며 동네 꼴머슴으로 살다가 군에 간 상호 형이 월남을 갔다. 돈 많이 벌어 온다며 해랑개 산모롱이를 돌아 장가리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 지천 역에서 꽥-꽥- 신음하는 증기열차를 타고 갔다. 월남이 어딘지도 모르는 마을 어른들은 피난 시절이 떠올라 걱정을 하였지만 애비가 머슴인데 자기까지 머슴으로 살 수는 없다했다. 상호 형이 살아 왔다. 지천 역으로 왔다. 논도 몇 마지기 사고 삼간집도 샀다. 한번만 더 다녀온다더니 세 번째는 돌아오지 않았다며 포연 같은 풍년초 담배 연기를 내쉬며 큰 머슴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보리밭 이랑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어지럽던 또순이 누나는 호미를 놓고 종다리 나는 하늘만 쳐다보더니만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 쓴 부모님 전상서 한 장 남기고는 속옷 보따리 달랑 들고 새벽기차를 타고 갔다. 지천 역에서 떠났다. 첫눈이 오자, 별이 빛나는 밤을 맞으며 딸각딸각 홀치기 하던 중학교가 그렇게 가고 싶던 동순이 마저 구로동으로 가 버렸다. 가시나가 객지에 나돌면 집안 망신이라던 영도 형은 역 광장에서 머리채가 다 빠지도록 누이를 패더니만 기름 값이 물 값보다 싸다는 사우디로 갔다. 모두들 기적소리에 실려 갔다.

 

아들이라고 장남이라고 형제들 중에서 머리가 좀 났다고 선택받은 떠꺼머리들을 지천 역은 통학열차로 실어 날랐다. 상호 형이 보내준 돈으로, 또순이 누나가 준 돈으로 데드론 교복까지 입혀 실어 날랐다. 박실, 달래, 오실, 납실, 백계의 코스모스 꽃보다 많은 젊음을 지천 역은 그렇게 한동안 실어 날랐다.

 

상호형도 떠나고 또순이 누나도 떠나고 동순이 마저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는 역을 중년의 사내가 찾았다. 늦은 밤 재를 넘다 늑대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던 상호형의 무용담이 듣고 싶다. 제미니 미싱 앞에서 옷도 깁고 손가락도 기웠지만 마음씨 좋은 사장님 밑에서 잘 지내고 있다며 부모님께 송아지를 사주고간 또순이 누나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 세상의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은 못 배운 설움이라던 중학생 교복 입은 동순이의 환한 얼굴도 보고 싶다.

 

떠나보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 줄 게 없었던 지천 역을 KTX가 바람으로 달린다. 가난이 한으로 맺혔는지 기적소리조차 없다. 역장도 없고 역보도 없는 철길에 메마른 코스모스가 듬성하니 피어 있다. 가녀린 줄기는 동순이의 핏기 없는 하얀 목덜미 같고 붉은 꽃은 또순이 누나의 입술 같은데 철길의 쇠 녹이 튀어 피처럼 얼룩진 꽃봉오리는 상호형의 우수에 젖은 눈매를 닮았다. 물이라도 주려 돌아보지만 얻을 곳조차 없다.

 

지천 역은 이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닫힌 역인데 나 홀로 진 빚을 무거워하며 그리움으로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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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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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영진 | 작성시간 26.06.24 고맙습니다. 정임표작가님.
    저희 세대가 자랄 때 형들은 월남으로 가고, 누이들은 도회지 공장으로 가서 돈 벌어 어려운 살림을 보탰지요.
  • 작성자영진 | 작성시간 26.06.24 그 시절이 생각나면서 작가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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