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작(寡作)과 다작(多作)의 문인들
여성들 중에도 임신조절을 하지 않는 이상 다산부도 있을 것이고 소산부도 있으며 또 아니면 평균 수준도 있을 것이다. 수확에도 풍년이 있고 흉년이 있으며 평년작도 있다. 이는 우리 문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작 내지 과산의 문인, 다작 내지 다산의 문인 아니면 평균작의 문인이란 분류가 바로 그런 경우다. 또 어느 문인에게서건 어느 일정기간을 두고 보면 풍작의 시기, 흉작의 시기 아니면 절필의 시기도 있을 수 있다.
이에는 획일적으론 말할 순 없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다. 많이 생산하다 보면 별볼일 없는태작이 끼일 수 있는가 하면, 명품도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적게 생산하다 보면 태작은 적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명품이 나올 확률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이도 저도 아닌 평균작의 경우라면 태작도 명품도 나오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요는 많건 적건 또는 평균치가 되었건 명품이 나올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이는 우리 문인 모두의 바람 사항이지만 세상만사가 뜻대로 잘 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산이지만 명품이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소산이지만 명품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고 또 평균량인데도 상당한 명품이 있는 경우도 있다. 요는 양에서 질이 나오건 질이 양을 압도하건 명품만 생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여기서 꼭 이런 것을 따져 과작이나 다작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과연 우리 문단에서 과작의 문인은 누구이며, 다작의 문인은 누구인가 만을 자료적 측면에서 참고 삼아 알아볼까 한다.
사실 여기서 과작이나 다작의 기준을 말한다는 것은 제법 애매모호한 면이 없지는 않다. 시,수필,소설, 평론 등 장르별로 평균치를 대충 기준 삼아 그 이상인가 그 이하인가를 말하는 도리 밖에 없다. 같은 일정 기간일지라도 장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대체로 연구서 아닌 순수평론집이 10권이라고 가정해 보면 시집은 훨씬 더 많아야 할 것이고, 그 다음 이 시집류 보다 적은 순이 수필집, 소설창작집이 될 것이다. 물론 많은 양의 장편소설일 때는 아주 예외일 것이다.
가령 어느 누가 문필 경력이 30년이라고 치자. 기본적으로 시집의 경우 평균 2년 꼴로 15권 이상이나 6년 꼴로 5권 미만, 수필집의 경우 3년 꼴로 10권 이상이나 약 7년꼴로 4권 미만, 소설 창작집의 경우 약 4년꼴로 8권 이상이나 약 7년꼴로 4권 미만 그리고 순수 평론집의 경우 5년 꼴로 6권 이상이나 10년 꼴로 3권 미만을 냈다고 가정하면 각 장르 별로는 다작,과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렇다면 평균작은 말하나마나 앞에서 말했듯 자연 몇 권 이상과 몇 권 미만의 그 어느 중간 쯤이 될 것이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편의주의적 발상의 가정이다.
그렇다면 이런 도식적인 막연한 기준이라도 참고 삼아 과작의 시인부터 알아본다.문단년조로 보아 제법 많은 시집이 있을 법 한데 이외로 상대적으로 극히 적은 분들이 더러 있다.설령 다른 장르 쪽의 저작이 있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열외로 하고 해당 장르에만 국한해 본다.
김종길은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니 얼마 있지 않으면 시력이 곧 70년이 된다. 그런데도 고작 5권에 불과해 과작 시인 중의 과작 시인이다.'성탄제'(69), '하회에서'(77),'황사현상'(86),'달맞이꽃'(97), '해가 많이 짧아졌다'(04)가 바로 그 목록이다. 다산의 시인에 비하면 불과 10여 년간의 생산량이다. 데뷔하고 22년 만에 첫시집이 나온 후 거의 10여 년 전후 간격으로 과산인 .
이수복(1924~1986)은 55년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57년도에는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70년대 이후 그의 데뷔작 '봄비'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긴 했지만 시력 30여년만에 단 1권의 시집 '봄비'가 있을 뿐이다. 평소에도 말을 아끼었다는 성품을 닮아서인지 시집량도 인색중 왕인색이다.
박용래(1925~1980)는 56년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는데, 문단생활 25여 년 동안에 '싸락눈'(69), '강아지풀'(75),'백발의 꽃대궁'(79) 3권을 남겼다.
황명(193 ~1998)은 55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인데 40년이 훨신 넘은 경력에 유고 시집 한 권을 합쳐 고작 3권이다. 일부의 과작 시인과는 달리 다른 그 어떤 저작도 없다.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사람을 좋아하고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또 거기에다 문단정치를 좋아했던 결과로 본다.
허만하는 57년도에 '문학예술'로 등단했는데 첫시집 '해조(海藻)'를 69년에 내고 그 다음 97년 부산 고신대 의대 교수직을 은퇴한 후 99년 칠순의 나이에야 비로소 30년 만에 두번째 시집을 냈다. 세번째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를 2002년에 내고 그 후 2권을 더 내 도합 5권이다. 전업 시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각자의 직업은 있기 마련이겠지만 그 사이 산문집 3권을 낸 것을 보아 시인으로서 외도(外道)를 좀 하는 과정에서 등한도 했지 않았나 싶다.
신경림은 현재 시력 60년 가까운 점을 감안해 보아 물론 평론집과 수필집 등이 이외로 10여 권은 되지만 오로지 시집 쪽만 보면 과작이다. 첫시집 '농무'(73), 장시집 '남한강'(87), 기행시집 '길'(90)등 모두 합쳐 10여 권이다.평균작은 못되는 것 같고 과작보다는 좀 나은 준과작 쯤이라고나 할까.
권용태는 과작 중의 과작 시인이다. 58년에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후 시력 55여 년인데도 시선집 '바람에게'를 제외하면 불과 3권일 뿐이다. '아침의 반가(反歌)'(68), '남풍에게'(80), '북풍에게'(98)가 전부다. 시를 완전 포기하고 있지 않은 점과 다른 장르의 저작도 없는 점을 보아 체질적으로 과작인 셈이다.
천양희는 65년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니 시력이 근 50년이다. 등단 18년 만인 83년도에 첫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을 낸 이후 한두 권의 다른 저작을 제외하면 '사람 그리운 도시'(88), '하루치의 희망'(92), '마음의 수수밭'(94), '오래된 골목'(98)정도다.
서정춘은 68년에 등단했으니 시력이 45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4권이다. '죽편'(96), '봄, 파르티잔'(01), '귀'(05)가 있다. 각 권이 35편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합해 100여 편을 조금 넘고, 시의 길이도 10행을 넘지 않은 짧은 시다. 보통 평균해서 한 권의 시집에 최소 60여 편, 최대 100여 편이 실린다고 보면 3권을 모두 합쳐야 두꺼운 시집 한권 분량이다. 등단 30여 만에 첫시집을 낸 것도 기록 중의 하나일 수 있다. 그리고 등단 42년 만인 2011년에 제 4시집 '물방울이 즐겁다'를 냈다.
정희성은 70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력이 40년이 넘었지만 시집이 5권인 것은 분명 과작에 속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굵직한 상은 서너번 받았다. '답청(踏靑)'(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91), '돌아다 보면 문득'(2008), '그리운 나무'(2013)가 그 명세다.
끝으로 시조집와 시집을 낸 유재영도 있다. 문단년조 40년에 시조집 '햇빛시간'(01), '절반의 고요'(09)가 두권 합해야 63편이니 다른 분의 시조집에 비하면 한권 분량이다. 여기에 시집 3권을 합해 모두 5권이다.그런데도 두서개의 상은 받았다.
이제부터는 다작의 시인 경우를 언급해 볼 차례다. 뭐니 뭐니 해도 제1 순위로 조병화와 고은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조병화는 49년도에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낸 후 시력 54년 동안에 무려 52권의 시집을 냈는데. 85년도에는 한해에 3권을 내기도 했다. 시력과 시집 수를 대조해 보면 평균 1년에 한권 꼴이라 최다 시집 보유자란 기록을 갖게 되었다. 너무 시를 쉽게 쓴다는 비난도 들었지만 그나름의 체질이며 노하우다. 이런 신작 시집 외에도 시선집과 수필집등을 모두 합해 보면 160권이 넘는다니 정말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고은도 조병화와 우선 양이 비슷하다. 58년 등단 이후 약 55여 년 기간에 시,소설, 평론,동화 등에 관해 160여 권을 펴냈다. 이는 일정한 직업 없이 집필에만 집중한 결과인데 여기에는 많은 시집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만인보'는 인물로 본 백과사전이랄 정도로 수많은 실명인물이 등장하는 대하 연작시집이라 그 양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황금찬은 시집만 따져 40여권이다. 전규태는시와 시조집 그리고 수필집과 여행기를 합쳐보면 50여 권이 훨씬넘는다.
그리고 문단년조를 따져 연조가 비슷한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아 상대적으로 다작에 속하는 시인도 제법 있다. 20여 권을 낸 신동집(1924~2003)과 김남조를 비롯해 문병란(30여 권),채규판(20여 권)김석규(30여 권),김지향(26권),박경석(20여 권),이창환(30여 권), 채수영(15권), 이동순(24권), 박덕은(22권),임병호(16권)등을 들 수 있다.특히 이들 중에서 채수영은 시집 15권에 20권이 넘는 평론집이 있다.마침 2014년도에 전집 전 20권이 출간되었는데 여기에 총 580명의 시 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처럼 많은 시집 해설을 쓴 사람은 달리 없다. 박덕은은 시집 22권에다 연구서, 평론집,소설집,동화집을 합해 보면 그 권수가 대단하다. 미상불 이 두 사람은 매우 왕성한 필력의 다작 문인임은 사실이다.
다음은 산문 장르 쪽을 살짝만 넘겨다 본다. 소설가 쪽을 보면 대하소설류의 권수를 따져서가 아니라 우선 유주현, 이병주,한승원,조정래,이문열 등이 떠오른다.그리고 이은집은 45년여의 경력에 방송작가로서 활동하면서도 26권의 소설집을 냈다.또 평론과 수필류를 합쳐서는 이어령, 평론 쪽에는 김윤식이 있다.김윤식은 평론집 외에도 다른 저서와 공저까지 합치면 백여 권이 훨씬 넘는다니 가히 한국판 기네스북 기록감이다.여성으로서 다작급의 작가로는 김지연이 있고, 평론가로서는 정영자가 평론집과 시집을 합해 보면 연조를 감안해 보아 다산급에 속한다.또 수필가 겸 평론가로서 한상렬은 수필집 15권에다 평론집 21권과 수필창작서 10권 도합 45여 권을 쉼없이 내놓아 수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또 평론가요 시인인 이시환은 문단년조 25여 년에 비해 다작이다. 평론집,시집, 수필및 에세이류를 합쳐 25여 권이다.그리고 윤재천도 수필과 평론을 아우러 다작급에 속한다. 정목일은 수필 경력 40여 년에 선집까지 합해 보면 무려 30여 권을 내어 현역 수필가 중에서는 가장 왕성한 다산가이다.김학도 비슷한 연조의 수필가에 비해 다산급이다.수필집 13권에다 수필평론집이 2권이다.말이 나온 김에 '떡본 김에 제사'라고 사족으로 나의 경우를 밝혀보면 평론집과 수필집에다 이것 저것 합쳐 30여 권은 되니 다작도 과작도 아닌 평균작은 좀 넘어서리라 본다.물론 앞으로 2-3년 내로 수필집과 평론집을 합해 3-4권이 더 추가 될 것이다. 사실 문학서 중 일반 평론집이 아닌 순수평론집 출간만은 쓰기의 까다로움과 책의 면수 문제에 따른 부담감 때문에 상당한 기간을 요하기에 자연 다산가가 드물 수 밖에 없다.
참고로 과작이건 다작이건 내가 지금껏 언급한 문인들은 내가 아는 범위내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서 뽑아본 것인 만큼 이들 외에도 그 어느 급에 속하건 상당수 많은 분들이 있으리라 본다.
아무튼 과작이건 다작이건 어차피 그런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거기에 따르는 남모르는 갈등도 있었을 것이고, 힘도 들었을 것이다. 다작의 경우라면 그 열정이나 노력의 열의 만은 알아주어야 하리라 본다.또 많은 양 속에 비례적으로 옥석이 섞혀 있을 가능성도 높아 그나름으로 명품을 골라 내기가 힘은 들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자리에 분명 명품은 들어 있으리라 본다. 과작의 경우라면 힘은 덜 들었지만 갈등은 물론 고민도 많았으리라 본다. 상상해 보건데 과작에는 각자에게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원인이나 이유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체질상의 과작, 자기 능력의 한계에서 느낄 수 있는 스스로의 실망감이니 자책감, 글쓰기의 의욕 상실이나 흥미 잃음, 지병이나 신상문제 그리고 가정사정 등에서 올 수 있는 정신적 공황 등이 곧 각자나름의 원인이나 이유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이유나 원인이 그 무엇이 되었던 간에 마치 진주조개가 진주를 남기듯 명작의 명품만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보상이요 성공이 아니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