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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의 사경실

금강경

작성자금강경|작성시간26.06.10|조회수30 목록 댓글 1

경흥을 깨우쳐 준 문수보살

신문왕 대의 대덕 경흥(憬興)은 성이 수 씨(水氏)이고 웅천주(熊川州) 사람이다. 나이 18세에 출가하여 경, 율, 논 삼장에 통달하여 명망이 높았다. 681년 문무왕이 승하하면서 신문왕에게 유언으로 “경흥 법사는 국사가 될 만하니 짐의 명을 잊지 말아라.” 할 정도로 도력이 높았다. 그 말을 들은 신문왕은 즉위하자 경흥을 국사로 책봉하고 삼랑사(三郎寺)에 주석하게 하였다.

국사로 있던 경흥이 갑자기 병이 나서 한 달 넘게 고생하였다. 한 비구니가 와서 그를 문안하고 《화엄경》 가운데 착한 친구가 병을 고친 이야기를 전하면서, “지금 법사의 병은 근심이 이른 바이니 즐겁게 웃으면 나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열한 가지의 모습을 만들고 각각 광대와 같은 춤을 추니 뾰족하기도 하고 깎은 듯하기도 하여 변하는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행동이 너무 우스워 턱이 빠질 것 같았다. 한바탕 웃고 나니 법사의 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완쾌되었다. 행동을 마친 비구니는 문을 나가서 삼랑사 남쪽에 있는 남항사(南巷寺)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비구니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는 십일면원통상(十一面圓通像) 탱화 앞에 있었다. 십일면관음이 현현하여 국사의 병을 낫게 한 것이다.

경흥이 왕궁에 들어가려 하여 시종이 먼저 동문 밖에서 채비하였다. 안장과 말이 매우 화려하여 행인들이 그것을 피하였다. 그런데 행색이 남루하고 손에 지팡이를 짚고 등에 광주리를 이고 있는 한 스님이 하마대(下馬臺) 위에서 쉬고 있었다. 광주리 안을 보니 마른 생선이 있었다. 시종이 그를 꾸짖어 “당신은 스님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 어찌 더러운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이냐?”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살아 있는 고기를 양 넓적다리 사이에 끼고 있는 것과 거리에서 마른 생선을 등에 지는 것 가운데 무엇이 나쁘냐?” 하였다. 말을 마치고는 일어나 가버렸다. 경흥이 문으로 나오다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쫓아가게 하였다. 남산 문수사(文殊寺) 문밖에 이르자 광주리를 버리고 사라졌다. 지팡이는 문수보살상 앞에 놓여 있었고 광주리 안에 마른 생선은 없고 소나무 껍질만 있었다. 사자가 와서 고하니, 경흥은 그것을 듣고 한탄하여 “대성(大聖)이 와서 내가 짐승을 타는 것을 경계하였구나.” 하면서 그 이후 죽을 때까지 다시 말을 타지 않았다.

610 건강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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