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김홍은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중년의 여류 수필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집 앞으로 11시까지 나오란다. 늦지 않게 천천히 길가로 나섰다. 얼마 후, 승용차에 탑승하고 오랜만의 만남으로 인사를 나누며 어디론가 향하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봄꽃들이 화사하다. 집 근처만 오고 가는 바람에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차는 무심천 제방길을 서서히 달리고 있었다.
벚꽃이다. 무심천의 벚꽃이 눈앞에서 구름처럼 피어났다. 사람도 차도 모두가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이다. 와-아, 와-아 입에서는 연신 탄성뿐이었다, 꽃 멀미가 날 지경이다. 차창으로 밀려드는 꽃향기가 젊음의 마음으로 되돌려놓고 있다. 여류 수필가도 싱글벙글 즐거운 모습이다. 이 감정이 바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면 누가 믿어줄까?
청주에는 무심천 둑에 오래된 벚나무 숲길이 있다. 봄이 오면
무심천의 벚꽃이 온통 구름처럼 피어난다 해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평생 나무와 벗 삼아온 나에게는 오늘의 이 길은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였다. 벚나무 줄기의 거친 수피는 보지 않고 오직 꽃에만 정신을 쏟는다. 아름드리로 자란 벚나무는 인고의 세월이 묻어난다. 우리 인생의 삶도 저와 같이 아름답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벚나무는 무언으로 전하는 듯하다. 이토록 깊은 사유의 언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 벚나무는 마치 철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천의 무심(無心)히 흐르는 물결 위에 유심(有心)한 배려의 벚꽃길은, 세대를 잇는 분홍빛 마음을 피워 올렸다. 인산인해를 이룬 둑길을 채운 남녀노소가 젊은 날의 추억을 남기며 모두가 즐거운 벚나무들 같다. 나도 덩달아 온몸은 청춘 그대로인 듯, 아직 한참 피어나지 않은 벚나무꽃망울로 맺어가고 있었다.
꽃길을 때로는 앞서 걷거나 때로는 보폭을 맞춰주는 여류 수필가의 온기는, 봄볕보다 더 따스하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의 느릿한 발걸음이 혹여 뒤처질까, 부축하며 앞서 꽃바람의 세기를 가늠하여 꽃길을 따르며 그림자의 각도를 맞춘다. 한 시대를 넘어, 오랜 정으로 이어져 내려온 정리를 벚꽃 경관을 경이롭게 살가운 인사로 전한다.
따스한 작가의 손길이 닿은 내 소매 끝에서 파릇한 생기가 돋는 듯했다. 나보다 먼저 봄을 맞이하고 그 봄을 기꺼이 내어주는 그 마음씨는, 무심천 벚꽃만큼이나 내 가슴속에 만개하였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꽃비 속에서 나누는 문학적 교감은 꽃구름 속으로, 우리는 두 사람 사이에서 무수한 음표(音標)가 되었다.
평생을 나무의 생애를 연구해온 자신은, 글을 쓰는 중년의 작가가 이제 막 피워내기 시작한 인생의 열망이 그 꽃길 위에서 교차하였다. 우리는 스승과 제자, 혹은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는 사라지고, 오직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두 영혼의 울림으로 벚꽃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나무의 나이테를 읽고, 그는 나무의 내일을 생각하며, 꽃비 내리는 무심천은 우리에게는 거대한 원고지였고, 우리의 발자국은 그 위에 새겨지는 정갈한 활자였다.
사랑보다 더 뜨거움으로 베푸는 정성은 벚꽃보다 더 고운 눈부신 인생의 애틋함으로 스며들었다. 거기다가 푸짐한 대접까지 곁들였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받는 마음보다 주는 마음이 더 고울 때가 있다. 중년의 제자가 황혼에 이른 스승에게 건넨 것은 단순히 벚꽃 구경이 아니라, 고독한 시간을 잊게 하고, 젊음을 되찾아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타인에게 젖어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봄날에 부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럽고도 고귀한 정일 것이다.
스승에게 배려하는 제자의 마음이 벚꽃같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정이란 것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지만, 무심천의 흐르는 물마저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와 정신을 황홀케 적셨다. 그 고마운 정에 취해 걷다 보니, 내 삶의 해 질 녘도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았다는 위안이 들었다.
벚나무 꽃은 아무리 화사하다 해도, 한때 미움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의 국화라는 이유로 조경수종에서 밀려나기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훗날 우리나라의 자생수종임이 밝혀지면서 더 많은 애착을 갖으며 사랑받는 나무가 되었다.
봄날이 가는 고독한 길목에서 무심천 벚나무는 인생의 살아가는 법도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