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떠나기엔 늦었다 李恩榮 세월 따라 같은 장소를 여행하는 느낌도 틀려진다. 인생이 길고 긴 여행이요 우리가 나그네인 것을 그래도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제주도를 찾게 된 것은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맨 처음은 여고시절 수학여행 때이고, 두 번째는 신혼여행 때이며, 이번이 세 번째이다. 결혼 20주년을 맞아 다시 가보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알고 남편이 미리 예약을 하게 되었다. 이번만큼은 제주도라도 꼭 함께 다녀와야 할 것이며 어려웠을 때 팔아서 생활비로 보탠 나의 결혼반지를 다시 해 달라고 숙제를 주었었다. 반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한가지 소원만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했다. 기다려지던 남편의 추석 휴가, 그러나 예약을 하고 나니 수해가 나서 수재민의 처지가 마음에 부담을 주고, 고3짜리 딸애도 마음에 걸렸으며, 성묘를 못함도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함도 죄스럽기만 했다. 설레는 기쁨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잡다한 주위의 모든 것을 다 떨쳐 버리고 오로지 내 소중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여고 시절의 처음 제주도 여행은 긴 시간 배를 타고 뱃멀미를 했지만 멀미에 얽힌 사연까지도 즐거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죄없는 총각선생님을 괴롭히던 일들이 최고의 흥밋거리였다. 시인이며 국어선생님이었던 총각선생님은 대학 졸업 후 첫 부임지인 우리 여학교에 오셔서 학생들의 등쌀에 시달림을 많이 받으셨다. 지금은 지척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멀고 먼 옛날의 사람으로 남는다. 그 후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구름 위를 날으던 나의 꿈. 남편의 마음은 귤 내음처럼 새콤달콤했고, 단 며칠 간의 여유로움과 행복이 영원까지 계속될 것처럼 자신만만했었다. 단 둘이서 어느 곳에 남겨진다해도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그래서 행복할 것 같았는데 모든 것은 상상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 와 나의 집을 갖기까지 열일곱번의 이사를 했다. 가난이 방문으로 스며 오면 나의 사랑은 창문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다고 했고 가난 속에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힘든 절망에 부딪칠 때마다 팔자라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꼭 타인의 길에 잘못 끼여들어 선 기분으로 살아왔다.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는 결혼하고 곧 바로 떠나지 못했음을 후회했고, 아이가 둘 되었을 때는 하나였을 때 떠나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용기가 없어 부부라는 끈을 자르고 가정이라는 둥지의 밖을 떠난다는 것은 아찔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남편이 놔주지 않아서 떠나지 못한 것처럼 핑계를 대었다. 나무꾼과 선녀도 아니며 날개옷을 숨겨 둔 것도 아닌데 허구헌 날 마음속에는 떠나고 싶어 보따리를 꾸리고 있었다. 부부란 이렇게 원망하면서도 서로가 없으면 아쉽고, 놓칠까봐 쫓아가며 긴 여로를 같이 가는 길동무이다. 어쩌면 서로가 부족하고 외롭기 때문에 채워 주고 감싸주기 위해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 해보면 같이 나누던 고생과 짐이 한결 가벼웠었고 같이 고생했기에 더 정이 들어가는 것 같다. 부모가 이십년 이상을 키워 주셨지만 부모의 길과 우리가 가야 할 길도 틀렸으며 어머니의 한 모태에서 태어난 형제도 각자 갈 길이 틀려 있었다. 쌀통이 텅 비어도 누구에겐들 고백할 수 없었지만 남편과는 같이 굶고, 죽을 먹게 되면 같이 죽을 먹어야 하는 그런 운명으로 얽혀 있었다. 이십년 동안을 미운 모습, 나의 결점까지도 다 참아 주고 오늘까지 살아 왔으니 보통의 인연은 결코 아니다. 부모보다 같이 살아야 할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질 것 같으니 피보다 진한 우리의 운명이 아닌가. 모든 것을 같이 극복해 내었기에 떳떳한 오늘이 나에게 있다. 신혼 여행장소에 다시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날아가 버린 사랑을 다시 찾아오자는 것이었다. 마음을 헤아린 듯 남편은 내 기분을 최대한 기쁘게 해 주고 싶다는 눈치였다. 간사한 마음은 괴로웠던 일과 섭섭했던 모든 것을 잊고 부풀어올랐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듯이 제주도는 자연적인 곳에서 관광지의 상업적인 냄새가 나도록 많이 변해 있었다. 잊었던 순간들을 기억해내며 신혼의 분위기를 다시 느껴 보려 했으나, 그가 피곤이 안개처럼 서려 있는 중년이며 머리칼이 히끗히끗한 것이 새삼스럽게 확대되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풀을 보며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처럼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날들은 얼마나 남아있는 것일까. 지금껏 너무 이기주의자가 되어 위로하기 보다 위로 받기만을 고집해 온 것을 후회했다. 결혼했던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느낌인데 살아 온 만큼 살다 보면 늙어 회갑도 되겠지. 내가 누리고 느껴야 할 행복의 순간들이 초조하도록 짧은 것 같아서 찰나가 아깝고 감사하기만 하다. 제주도에서 새롭게 기억에 남는 곳은 삼성혈이다. 고씨, 양씨, 부씨가 나왔다는 움푹 파여진 그 곳에는 비가 와도 고이지 않고 눈이 와도 쌓이지 않는다 했다.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은 모두 땅을 기듯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일제히 중앙의 혈 쪽을 향하여 뻗어 있었다. 나무들이 삼성혈을 향해 경배를 하고 있노라고 무속 신앙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곳은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있어 나뭇가지가 그 곳을 향하여 뻗어 있노라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모든 나무의 가지는 태양을 향해 자란다고 믿었는데 태양보다 강한 힘이 혈의 온기라는 것일까. 그 기이한 현상은 나에게서도 찾아낼 수 있었다. 태양 같은 남편보다 혈의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 어버이 쪽으로만 머리 디밀고 살아온 나이기에 남들은 그냥 스쳐 가는 자리였는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자가 아버지였고 매사에 남편이 아버지와 닮아 주기만 바랬던 나의 잘못됨을 굳이 용서받고 싶지는 않다. 부부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도 서로 덮어 주며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 인연인 것을........ 나의 남편이라는 생각보다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생각을 하니 내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아버지 쪽으로 나의 마음이 열리고 사랑하고 싶어진다. 사랑은 날아가 버린 것이 아니었고 어쩌면 우리 곁에 웅크리고 우리를 지켜보며 감싸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행의 여장을 풀며 마음에 오랫동안 쌓아 두었던 해묵은 보따리도 같이 풀어 제자리에 정리해본다. 이제 떠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나는 이 자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이 자리가 가장 편한 것 같다. 어디를 가도 다시 돌아와야 할 나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흐뭇한 안락을 주었다. 어쩌면 영원까지 내가 앉아 지켜야 할 이 자리에 조용히 정좌해 본다.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