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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단 내려서다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15|조회수9 목록 댓글 0
                                        한 계단 내려서다
                                                                                이희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흙이 뒤덮인 자그마한 연못 바닥을 마구 휘젓는다. 은어와 피라미가 펄쩍 뛰며 화를 낸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을 흐린다며 야단법석이다. 어지간히 흐린 물에서도 끄떡없는 붕어들은 소 닭 보듯 한다. 사람들은 미꾸라지한테 모진 화살을 겨눈다.
  연못 바닥에 진흙이라곤 없고 모래나 자갈만 깔려있다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니라 떼거리가 휘젓는들 흙탕물이 일어날까. 바다에선 거센 파도가 섬과 해변을 끊임없이 할퀴어도 흙탕물이 일지 않는다. 몽돌만 깔려있는 맑디맑은 연못에 미꾸라지가 살아 휘젓고 다닐 일 없다.
  사람들은 자꾸 미꾸라지만 나무란다. 미꾸라지가 죽은 체하고 있어야 할 이치는 없다. 미꾸라지는 멀쩡해뵈는 사람들이 개흙 속에 묻어버린 온갖 때꼽재기를  먹고 살 뿐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찌꺼기가 개흙이 되어 켜켜이 쌓인 연못에 미꾸라지가 살아야 한다는 걸 애써 부정하려든다. 흙탕물이 일지 않는 ‘유리알 연못’을 헛되이 꿈꾼다.
  인신매매가 횡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을 사고파는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며 나는 분개했다. 나는 영계들만 불러대는 이 땅의 ‘아저씨들’을 세치 혀로 난도질하며 정의를 부르짖었다.  알코올에 의지하여 끈적거리는 손길로 한 가닥 양심마저 유린하는 그들은 개돼지만도 못하다. 그러나 내가 아랑주에 혼을 팔아넘겼을 때에 퇴기 월매의 얼굴이 어른거리자 종업원을 불러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한 더러운 나는 어찌하여 핏발선  눈으로  '순결한 백합화'를 탐내고 있는가. 그 꽃은 뉘집 뜨락에 피어있던 꽃인가.
  주차위반 딱지를 떼인 건장한 청년이 벌겋게 독이 올라 단속반하고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적반하장인 그 자를 나는 뻔뻔스럽다 비웃었다.
  내가 걸렸다. 나는 단속반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나는 충분히 ‘역지사지’하며 산다고 믿어왔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게 바로 내 습관이자 강점이라고 떠벌여왔다. 가증한 구두선이다.

  나는 뒤늦게 위선의 탈바가지를 벗어던졌다. 썩어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는 데  꼬박 두 해를 보냈다. 내 인생에서 두 해는 세월이 흐를수록 값진 진주처럼 더욱 빛날 것이다.
  나는 눈높이 맞추기도 그만두었다. 한 계단 더 내려서서 그를 올려다본다. 나는 그보다 낮은 곳에 있어 늘 겸손을 배우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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