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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림자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21|조회수7 목록 댓글 0
                                           산 그림자 

                                                                                             이혜숙

백두산이 주저 앉는다. 반죽을 되게 해라. 여기 차령산맥도 좀 높이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나라의 5만분의 1 지도 위에 종이 끓인 것으로 산과 산맥을 붙이고 있었다. 길고 구부정한 태백산맥과 그 옆으로 생선뼈같이 붙은 산맥을 이어 붙이느라고 해가 기우는 줄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채운산을 보니 이미 긴 그림자가 집들을 덮고 내 발목에는 젖은 풀잎만이 스치고 있었다.
너른 대지 속에 아주 작은 우주를 만들며 우리의 아성을 쌓아 가던 시절, 산은 우리의 서툰 솜씨로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모형지도상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그러나 맑은 날 보랏빛으로 보이는 먼 산맥 너머로는 어떤 동경을 보내기도 했다.
10리나 떨어진 D산으로 소풍가던 날, 사모관대를 하고 말 탄 신랑 일행이 의젓하게 산길을 지나는 것을 봤다. 펑퍼짐한 데를 골라 앉아 고수레를 하고 밥을 먹는데 이번엔 꽃상여가 지나갔다. 노랑나비가 팔랑거리던 풀밭에서 뒹굴다가 떼를 잘 입힌 무덤 앞에서 할미꽃을 봤을 때는 우리가 있는 산의 그림자가 저 밑 논까지 덮고 난 뒤였다. 산밑을 내려다보니 초록 보리밭과 자운영이 핀 붉은 논 사이의 좁은 길로 신랑 일행도 상여도 까마득히 사라져 갔고, 산 아래 어느 동네에서는 아련히 개 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국어시간에 배운 할미꽃 전설, 나쁜 마음씨의 큰손녀 집에서 쫓겨난 할머니가 산 너머 작은손녀 집을 찾아가다가 숨진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할미꽃의 슬픈 얘기를 생각하며 산에서 내려올 때 내 귀에는 아련히 들리는 산밑 동네의 소리처럼 이름 모를 인간들의 곤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치마 뒤에 배어든 풀물처럼 내 가슴에도 슬픔의 연한 빛깔이 배어들고 길게 늘어진 산그림자에서 느끼던 적막감, 그것은 어쩌면 뒤에 올 6·25의 어떤 예감이 아니었을까? 아침의 산그늘이 반소매 옷 속으로 썰렁하게 스미던 6월 25일 아침, 소름끼치는 전쟁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며칠 뒤 소풍갔던 산길로 피난을 가며 먼 곳에서 들려오는 폭격소리에 가슴을 졸였다.
김동인(金東仁)의 소설 {붉은 산} 주인공이 조국 해방을 기다리며 만주에서 고국의 붉은 산을 그리워하다 숨지는 소설 얘기를 채 잊기도 전에 다른 붉은 산을 봐야 했다. 건너편 산이 폭탄을 맞아서 붉게 타오르는 것이었다.
바로 우리가 즐거운 얘기를 하며 종이로 만들던 지도 위 산맥에 피의 골짜기가 이뤄지고 한줌의 흙, 한 그루 나무에도 원한이 배어 초동의 피리소리나 산새소리가 끊어진 산이 된 것이다. 석 달 전에 우리는 38선으로 막힌 북쪽 지도 위에도 산을 붙이면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피맺히도록 오르내렸다는 김정호(金正浩) 선생의 위대한 발자국을 되새겨 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평양의 부벽루에 올라 절경을 묘사할 시상(詩想)이 안 떠올라 울며 사라진 김황원(金黃元)을 얘기하면서 광복 때 월남한 친구는 통일을 바랐었다.
바로 석 달 전의 일이 옛날 얘기처럼 되어버렸던 9·28수복 후 우리 가족은 강경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외가로 임시 이사를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서 나는 산과 좀더 친숙할 수 있었다. 능선을 드러내고 한쪽엔 기품을 지닌 산을 문만 열면 올려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산을 보며 때로는 귀를 막아야 했다. 산 속에서 어느 외침과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6·25 때 가족을 전부 잃은 사람이 실성해서 산에 가서 외치는 소리라 했다. 그 사람은 산의 자락 자락에 피맺힌 한을 목이 쉬도록 부르고 다녔다. 나는 그 외침이 사라진 뒤 뻐꾸기소리가 은은하게 마을까지 울려오던 봄에 그곳을 떠났다.
중학교 때는 어머니의 가슴같이 편안하면서도 다정한 봉황산이 있는 공주읍에 살았다. 산중턱에 있던 교회의 뒤꼍 솔바람은 할머니의 동백기름 냄새를 실어 오는 것 같아서 타향에 살던 내 사춘기의 설움을 달래 주기도 했다.
커다란 산 그림자 속에 내 작은 그림자가 묻히는 것처럼 큰 비극이나 작은 실망도 감수해야 할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나는 산과 마주 서서 이룩해 보려는 패기나 투지가 없다.
나날이 잊어 가는 아름다움, 빛이 있는 것을 큰 산이 골짜기를 거느리듯이 지니고 싶을 따름이다. 거대한 산과 마주 서서 절망과 고난을 딛고 만든 의지의 창조물을 감동스럽게 보고 싶다. 커다란 산의 웅장함보다는 계곡의 샘물 같은 신선한 감각을 지니면서….
꽃과 노래는 곁에서 마음의 빈자리를 메워 주지만 산은 먼 곳에서 거대하고 무한한 것을 지닌 침묵의 그림자만 던져 주지 않는가?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야 다 가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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