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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어머니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15|조회수35 목록 댓글 0

                        작은어머니

                                                               엄금순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사과들이 파란 가을 하늘과 참 잘

어울린다 충주 사과나무 가로수 길을 얼마만큼 지나자 산

비탈에 외딴 작은어머니 댁이 보인다. 유목민처럼 자주 이

딸처럼 대해 주셨다.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작

은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반기시며 옷장을 열어 보라고

하셨다. 'MOON'이라는 파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

는 연분홍 고운 티가 걸려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분홍색

옷을 사보기는 처음이라면서 내가 그 옷을 입는 걸 보고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그런데, 처음에는 잘 대해 주시던 작은어머니가 언제부

터인가 자꾸 잔소리를 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하셨다. 특히

도시락을 가지고 신경을 쓰게 하였다. 가져온 빈 도시락은

꼭 설거지 물통에 담가 놓으라고 했는데 내가 가끔씩 그걸

잊어버리고, 심지어 아침에 내놓는 날도 있었으니. 그런

날 아침이면 으레 작은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지고 작은아

버지와 난 서로 눈짓을 하며 빨리 그 집을 빠져나왔다. 심

한 잔소리를 듣는 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내 기분을

풀어 주려는지 작은아버지는 그럴 때 꼭 용돈을 주셨으니

까.

일 이 년이 멀다하고 이사를 다니시던 작은아버지는 원

주에서 삼년을 사셨다. 내 입학과 동시에 오셔서 졸업과

동시에 다른 곳으로 가셨다.

작은어머니 환갑엔 가까운 친척들만 모였는데도 시끌벅

적 제대로 잔칫집 분위기가 난다 작은어머니는 원래 성격

셨는지, 옛날 내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씩씩

해 보이는 작은어머니가 여태껏 한 번도 안 하시던 말씀을

하신다. “내 나이가 그 때 서른이었는데 열일곱, 열여덟 저

파릇파릇한 것 보면 여자로서 샘이 났었지." 하시며 웃으

신다 여자로서 샘이 났었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모두들 웃었다. 내가 하얀 교복을 입고 작은아버지한테

착 달라붙어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학교 가는 모습에 매일같

이 샘이 나고 질투가 나서 나를 미워했다고도 하신다. 그

래서 애꿎은 도시락만 가지고 내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동네 목욕탕에도 데리고 가며 날 예뻐하던 작은어머니가

자꾸 날 미워하며 쌀쌀하게 대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

던가 그러고 보니 작은아버지가 분홍빛 옷을 사다 준 이

후였나. 그동안 못 맞추고 있던 퍼즐을 완성한 기분이다.

"그 때엔 쟤도 철이 없었고, 나도 철이 없었지. 지금 생각

하면 정말 미안하다." 고도 하신다.

사실 미안하고 고마운 건 오히려 나다 딸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예민하고 철이 없는 여고생 조카를 데리고 있

던 작은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저절로 짐

작이 간다 멀쩡히 하루 학교를 안 가면서 연탄가스 때문

에 못 간다고 선생님께 거짓말을 해달라고 시키질 않나,

크리스마스 전날 아무 연락도 없이 친구들이랑 밤 새워 놀

다 오지를 않나 내가 속 썩여 드린 것에 비하면 작은어머

니가 애꿎은 도시락으로 날 미워한 건 일도 아니건만, 그

마저도 여태 미안하다 말 못하신 걸 마음에 걸려하시고 계

셨는지.......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 대신 이제 나를 엄

마라고 생각해. 나는 딸이 없으니 앞으로 진짜 딸처럼 생

각할 테니." 하시며 작은어머니는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남

편 손을 잡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작은어머

니는 누가 봐도 친정어머니 같다. 나도 이젠 철이 들어 작

은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지만, 고마움을 갚는

것 보다 아직도 오히려 받는 게 더 많다. 작은어머니는 새

로 지은 그 집으로 이사를 가신 후 해마다 봄이면 손수

따신 두릅을 보내오신다 두릅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서

친정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사과 향으로도 어디쯤 지나는지

를 알 수 있다 무더위 땡볕과 유난히 질기게도 내렸던 올

여름비를 견뎌내고 알차게 익어가는 저 사과들처럼 작은어

머니와 나의 정도 맛있게 영글어 갈 것이다.

2011/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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